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오랫동안 '기업들의 무덤'으로 불리던 중추신경계(CNS) 암 치료제 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치료제 개발의 최대 난관으로 꼽혀온 혈액뇌장벽(BBB·Blood-Brain Barrier)을 극복할 다양한 플랫폼 기술이 등장하면서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중추신경계 암인 교모세포종(GBM)은 치료제 개발 난도가 가장 높은 암종 가운데 하나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 화학항암제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고 있지만 치료 성적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신약 개발은 다보 상태에 놓여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혈액뇌장벽(BBB)이다. BBB는 외부 유해물질이 뇌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생물학적 방어막으로, 항암제 역시 충분히 통과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CNS 치료제 개발의 최대 난제로 꼽혀 왔다. 약물 투여량을 늘리면 전신 독성이 커지고, 약물 구조를 바꾸는 방식도 기술적 한계가 있어 글로벌 제약사들은 오랜 기간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BBB를 보다 효과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잇달아 개발되면서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주요 암종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중추신경계 암이 차세대 성장 시장으로 다시 주목받는 배경이다.
BBB 극복 기술 잇따라 등장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초음파 기반 BBB 개방 기술 ▲나노캐리어 기반 약물 전달 시스템 ▲면역 증강 백신 등이다.
초음파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 소노버드(Sonobird)의 '소노클라우드(SonoCloud)'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기술은 이식 가능한 초음파 발생 장치를 통해 뇌의 특정 부위에 저강도 초음파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초음파가 미세 거품(Micro bubble)을 진동시켜 BBB의 밀착 연접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기존의 항암제가 뇌 내부로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수 있게 한다. 약물의 투여량을 극단적으로 높이지 않고도 뇌 내 전달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노캐리어 기반 약물 전달 시스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기술은 항암제를 나노 입자 내부에 봉입하여 BBB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표면을 개선하거나, 특정 수용체를 타깃하는 물질을 부착해 BBB가 이를 영양분으로 착각해 안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Mount Sinai)의 'MK16 BLNP'가 대표적이다. 'MK16 BLNP'는 뇌혈관 세포에 친화적인 나노 크기의 지질을 통해 BBB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면역 증강 백신은 우리 몸 속의 면역세포인 T세포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본래 T세포는 물리적인 크기가 작아 이론적으로는 BBB를 통과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BBB가 면역 반응으로 인한 뇌 손상을 막기 위해 특정한 단백질을 발현하여 T세포가 BBB에 달라붙는 것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면역 증강 백신은 이 같은 기능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백신을 투약하면 T세포가 BBB에 달라붙을 수 있는 특수 단백질을 다량으로 발현하고 이를 통해 T세포가 BBB를 넘어 종양을 공격하도록 설계했다.
면역 증강 백신, 임상서 가능성 확인
면역 증강 백신 분야에서는 최근 의미 있는 임상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2026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미국 MSD(Merck)는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와 개인 맞춤형 암 백신 '네오백스(NeoVax)' 병용요법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병용요법을 받은 환자의 전체 생존기간(OS)은 36개월로, 대조군(23.5개월)보다 1년 이상 연장됐다. BBB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임상적으로도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네오백스'는 환자의 암세포에서 추출한 신생항원(Neoantigen)을 활용한 맞춤형 치료제다. 환자의 종양에서 가장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할 것으로 예측되는 최대 20개의 신생항원을 선별해 합성 펩타이드 형태의 백신으로 제조한다. 여기에 면역 증강제(Poly-ICLC)를 결합해 투여하면 면역계를 강력하게 활성화하고, T세포가 BBB를 넘어 종양을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미개척 시장에서 차세대 성장축으로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글로벌 CNS 암 치료제 시장이 오는 2030년 약 200억 달러(약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중추신경계 암은 환자마다 종양의 특성이 다르고, 뇌라는 기관의 특성상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 위험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업계는 CNS 암을 차세대 성장 분야로 주목하고 있다. 혈액뇌장벽을 극복할 기술들이 하나둘 현실화되면서 중추신경계 암이 더 이상 '기업들의 무덤'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이 기대되는 미개척 시장으로 재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임상 성과가 축적될수록 CNS 암은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