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임상 시험 무대를 중국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지만,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미국인 임상 데이터'가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FDA가 신약 승인을 위해 임상 시험 대상자의 최소 20%를 미국 현지 환자로 구성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어서다.[헬스코리아뉴스 / 이시우]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임상 시험 무대를 중국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지만,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미국인 임상 데이터'가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미국 환자 참여가 부족한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한 신약 승인을 잇따라 거절하고 있어 국내외 기업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바이오 전문지 바이오스페이스(BioSpace)와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임상 연구 지역으로 부상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중국 내 R&D 조직 강화와 신약 개발을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으며, 이는 세포치료제와 방사성 리간드 등 첨단 분야를 망라한다. 중국은 촘촘한 위탁연구기관(CRO, 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생태계를 바탕으로 초기 신약 발굴부터 임상시험 신청(IND)까지의 시간을 최대 70%까지 단축하며 2023년 기준 글로벌 임상 연구 점유율 39%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발 속도전'은 미국 시장의 높은 벽에 부딪히고 있다. FDA는 신약 승인을 위해 임상 시험 대상자의 최소 20%를 미국 현지 환자로 구성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으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들은 속속 승인 거절(CRL, Complete Response Letter) 통보를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일라이 릴리(Eli Lilly)와 이노벤트(Innovent)가 공동 개발한 PD-1 억제제 '신틸리맙(Sintilimab)'은 중국 단일 국가 임상 데이터만을 근거로 승인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어 2025년 7월에는 로슈(Roche)의 '컬럼비(Columvi, 성분명 : 글로피타맙·Glofitamab)'가 적응증 확대를 위한 신청 과정에서 미국 환자 참여 부족을 이유로 승인이 거부되는 등 규제의 불확실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에 '중국 단일 임상'이 위험 요소로 부상함에 따라, 한국과 호주, 인도 등 주변국들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국가는 중국의 속도에 맞설 수 있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며 글로벌 임상시험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호주는 임상 1상 단계에서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알림만으로 연구 착수가 가능한 제도를 운용 중이며,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역시 바이오기술법(Biotech Act)을 통해 다국적 임상 승인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있다. 한국 또한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분야의 우수한 병원 인프라를 앞세워 고난도 임상시험 유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상미 과장은 이날 이슈브리핑으로 통해 "중국은 개발 속도면에서 매력적이지만, 글로벌 상업화를 목표로 한다면 FDA의 다양성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임상 설계 단계부터 지역별 안배를 포함한 정교한 다지역 임상(MRCT) 전략을 세워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대안 국가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신약 개발 기업들에 중국 임상은 개발 속도를 높이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미국 환자 데이터를 포함한 임상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상업화 최종 단계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분석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