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바이오기업의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 원의 선급금을 지급하는 대형 기술도입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임상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신약만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초기 후보물질과 이를 만들어내는 플랫폼까지 선점하는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노바티스는 2일 중국 아보젠 바이오사이언스(Abogen Biosciences)와 mRNA 기반 치료제에 대한 라이선스·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노바티스는 아보젠의 'ABO2203'에 대한 전 세계 독점권을 확보하고, 아보젠의 RNA 플랫폼에서 개발되는 차세대 후보물질들을 추가로 도입할 수 있는 독점 옵션을 갖는다.
아보젠이 계약 체결과 함께 받는 선급금은 5억 7500만 달러, 우리 돈 약 7758억 원이다.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옵션이 행사되고 개발·허가·상업화 목표를 달성하면 약 72억 달러(한화 약 9조 7000억 원)의 마일스톤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전체 잠재 계약규모는 약 77억 7500만 달러(한화 약 10조 4900억 원)이다. 향후 제품 판매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5억 7500만 달러의 선급금이다. 개발 성공 여부에 따라 지급되는 마일스톤과 달리 계약 초기에 지급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노바티스가 아보젠의 기술에 매긴 현재 가치를 보여준다.
불과 사흘 전인 지난달 29일 노보노디스크가 중국 헝루이제약에서 도입한 비만 치료제 계약과 비교해도 규모가 크다.
노보노디스크는 헝루이의 주 1회 경구용 GLP-1/GIP 이중 수용체 작용제 'HRS-1596'의 중국 본토·홍콩·마카오·대만을 제외한 글로벌 권리를 확보하면서 선급금 3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개발·허가·상업화 마일스톤을 포함한 최대 계약규모는 26억 달러다. 'HRS-1596'은 임상 1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초기 단계 후보물질이다.
아보젠이 노바티스에서 받는 선급금은 헝루이가 노보노디스크에서 받는 금액의 약 1.9배다.
최대 152억 달러 계약까지 등장
올해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CSPC제약그룹과 체결한 비만·당뇨병 신약 공동개발 계약은 더 크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1월 8개 프로그램과 AI 기반 분자설계 기술, 월 1회 투여를 목표로 하는 약물전달 플랫폼을 확보하면서 선급금 12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개발·허가 마일스톤만 최대 35억 달러이며 상업화·판매 마일스톤과 로열티는 별도로 붙는다.
지난 5월에는 중국 바이오기업과 글로벌 빅파마 사이에서 100억 달러가 넘는 대형 거래가 잇달아 나왔다. BMS는 헝루이제약과 항암·면역·심혈관 등 13개 초기 신약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선급금 6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모든 옵션이 행사되고 개발·허가·상업화 단계별 목표를 달성할 경우 전체 계약규모는 최대 152억 달러에 달한다.
화이자도 같은 달 중국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와 최대 10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화이자는 ADC와 다중특이항체를 포함한 12개 초기 항암 프로그램에 대한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면서 선급금 6억 5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중국 바이오기업으로 향하는 자금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다. JP모건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 바이오기업과 체결한 선급금 5000만 달러 이상 기술도입 거래에서 선급금과 지분투자 규모는 26억 4500만 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빅파마 기술도입 자금 가운데 중국 바이오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75%였다.
최근 거래를 나란히 놓고 보면 중국 바이오기업의 초기 후보물질과 플랫폼에 글로벌 제약사가 거액의 선급금을 지급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후보물질의 임상 성공 이후 권리를 확보하기보다 초기 단계에서 유망 자산과 후속 파이프라인을 함께 묶어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2026년 10월 2일 현재 중국 바이오기업 주요 기술 거래 현황. [AI 생성이미지] ABO2203은 어떤 약?
노바티스가 이번 계약의 핵심 자산으로 확보한 'ABO2203'은 mRNA로, CD19×CD3 T세포 인게이저(T-cell engager)를 환자의 체내에서 만들어내도록 설계한 RNA 치료제다.
CD19는 B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단백질이고 CD3는 T세포에 존재한다. CD19×CD3 T세포 인게이저는 두 세포를 연결해 T세포가 B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B세포를 제거해 면역체계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 치료 목표다.
기존 T세포 인게이저는 외부에서 제조한 단백질 의약품을 환자에게 투여한다. 'ABO2203'은 mRNA를 이용해 환자의 세포가 체내에서 T세포 인게이저를 만들도록 한다는 점에서 접근법이 다르다.
아보젠에 따르면 'ABO2203'은 자가면역질환을 대상으로 임상평가에 들어간 최초의 mRNA-encoded T세포 인게이저다. 회사는 재발·불응성 B세포 비호지킨림프종을 대상으로도 이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노바티스 바이오메디컬리서치의 피오나 H. 마셜(Fiona H. Marshall) 사장은 "여러 자가면역질환에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면역 재설정은 중요한 치료 목표"라며 "mRNA 기반 T세포 인게이저는 체내에서 치료 분자를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치료방식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아보젠은 2019년 설립된 중국 RNA 치료제 전문 바이오기업이다. 자체 mRNA·지질나노입자(LNP) 플랫폼을 기반으로 종양과 자가면역질환, 감염병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mRNA 대상포진 백신 'ABO1108'은 현재 중국에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아보젠은 국내 바이오기업과도 인연이 있다. 애스톤사이언스는 2023년 아보젠과 항암백신 후보물질 발굴을 위한 독점 연구협력·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애스톤사이언스의 'Th-Vac' 플랫폼으로 항원결정기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아보젠의 mRNA-LNP 기술을 결합해 암 치료백신을 개발하는 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