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그동안 해외 진출의 지름길로 활용해 온 현지 파트너사 협업 체제에서 벗어나 자체 유통망과 법인을 앞세운 '직접판매(직판)' 체제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유통망 부재를 보완하기 위해 취했던 기술수출 및 판권 위탁 모델이 현지 인프라 구축과 규제 경험 축적을 거치며 독자 노선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보령은 최근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로부터 오리지널 항암제 '탁소텔'의 글로벌 비즈니스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전 세계 19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직접판매에 돌입했다. 최종 거래 규모는 약 1억 7000만 유로(한화 약 2796억 원)에 달한다.
보령의 이번 행보는 특정 품목의 지역 판권을 넘겨받는 데 그치지 않고, 유통권·허가권·생산권·상표권을 일괄 인수해 본사가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하는 구조다. 기존에 확보한 '젬자', '알림타'에 이어 탁소텔까지 편입하면서 해외 세포독성항암제 시장에서 자체 공급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럽 시장의 판권 회수 및 직판 확대를 본격화했다. 회사는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사였던 바이오젠으로부터 안과질환 치료제 '바이우비즈'의 유럽 상업화 권리를 반환받아 올해부터 자체 유통망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안과질환 치료제인 '오퓨비즈'까지 유럽 현지 직판 목록에 올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희귀질환 치료제 '에피스클리'를 시작으로 골질환 치료제 2종(오보덴스, 엑스브릭)과 바이우비즈, 오퓨비즈를 잇따라 직판으로 전환하며 유럽 내 자체 판매 포트폴리오를 5종까지 늘렸다.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보유한 휴젤은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현지 파트너사 위탁 구조를 '하이브리드(직판+간접판매)' 방식으로 뜯어고쳤다. 그 일환으로 미국 현지에 직판 및 현장 의료 부서(Field-based Medical Affairs) 전담 조직을 신설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휴젤은 대형 메디컬 스파와 클리닉 등 매출 비중이 높은 80여 개 핵심 전략 계정은 본사 직판 조직이 직접 영업과 학술 지원을 전담하고, 일반 유통 채널만 기존 파트너사인 베네브(BENEV)에 맡기는 이원화 구조를 마련했다. 글로벌 에스테틱 분야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 직후 현지 직판 인프라를 대폭 보강하며 처방권 통제력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대웅제약은 중국 양쯔강의약그룹과 체결했던 3845억 원 규모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펙수클루' 수출 공급 계약을 해지하고 현지 자회사를 통한 독자 상업화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계약 상대방의 인허가 추진 지연 등에 따른 후속 조치다. 대웅제약은 기존 계약에 얽매이기보다 중국 북경 법인을 활용해 품목허가와 유통을 직접 맡기로 방침을 세웠다. 파트너사의 역량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직접 인허가와 출시 일정을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초기 투자 감수한 직판 행보 … 수익성 극대화·주도권 확보 노림수
국내 제약사들이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과 실패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글로벌 직판망을 구축하는 1차적 배경은 단연 '수익성 극대화'다.
전통적인 파트너십 구조에서는 현지 파트너사가 유통 마진과 마케팅 수수료 명목으로 현지 매출의 20~30%, 시장 상황이나 제품에 따라서는 매출의 30~50%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체 직판망을 통하면 유통 수수료를 온전히 자사 수익으로 흡수할 수 있어 의약품 처방액이 실질적인 영업이익으로 직결된다.
지역별 약가 제도와 입찰 시장의 구조적 특성도 직판 확대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국가별·병원별 입찰(Tender) 방식으로 의약품을 대량 구매하는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전문 입찰·약가 협상 조직만으로도 주요 병원 및 국가 단위 공급권을 따낼 수 있다. 고정비 부담을 낮추면서 약가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규제기관이 사후 관리 기준을 강화한 것도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직판 선회 원인으로 꼽힌다. 현지 허가권과 약물감시 체계를 본사가 직접 관리하지 못하면, 파트너사의 귀책 사유로 인한 행정처분이나 품목허가 취소 등 위기 상황 발생 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후속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진입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규모의 경제' 포석도 깔려 있다. 단일 품목 직판은 고정비 부담이 커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지만, 3~4개 이상의 복수 품목이 동일한 유통망을 공유하게 되면 품목당 판관비 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선행 제품을 통해 뚫어놓은 병원 유통망, 도매상 네트워크, 보험사 등재 채널에 후속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를 순차적으로 얹는 방식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다만 현지 법인 유지와 마케팅 조직 가동에 따른 초기 고정비 부담을 상쇄할 만큼의 지속적인 처방 실적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은 여전한 과제다.
해외 파트너사에 주도권을 맡기던 '안전제일주의'를 넘어 독자 노선을 택한 K-제약바이오의 직판 승부수가 실질적인 수익성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