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치료에 사용하는 메틸페니데이트가 이른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며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관심을 모은 지 오래다. 집중력을 높이는 약인 만큼 ADHD가 없는 사람이 복용해도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8일 교육부, 성평등가족부와 함께 "공부 잘하는 약은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메틸페니데이트 오남용 예방 홍보에 나섰다.
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은 메틸페니데이트의 불법 유통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식약처는 올해 5월과 8월 두 차례 특별점검을 실시해 메틸페니데이트 관련 온라인 불법 판매·알선 게시물 1733건을 적발하고 사이트 차단 등을 요청했다. 오는 10월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다시 특별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메틸페니데이트는 실제 공부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일까.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를 살펴보면 결과는 다소 엇갈린다. ADHD가 없는 건강한 사람에서도 주의력이나 기억력 같은 일부 인지기능이 개선됐다는 연구가 있는 반면, 이런 효과가 실제 시험성적이나 전반적인 학업성취도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실제 시험성적이나 장기적인 학업성취도 향상에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는 "공부 잘하는 약은 없다"며 메틸페니데이트의 무분별한 오남용 문제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AI 생성이미지]건강한 사람도 일부 인지기능 개선
메틸페니데이트는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중추신경계 자극제다. ADHD 환자의 주의력을 높이고 충동성과 과잉행동을 줄이는 데 사용한다.
건강한 사람이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평가한 연구도 적지 않다.
2020년 국제학술지 European Neuropsychopharmacology에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수면이 부족하지 않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모다피닐, 덱스트로암페타민의 인지기능 개선 효과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메틸페니데이트 분석에는 24개 연구의 47개 효과크기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메틸페니데이트의 전체 인지기능 개선 효과는 표준화 평균차(SMD) 0.21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영역별로는 회상 능력이 0.43, 지속적 주의력이 0.42, 억제조절 능력이 0.27 개선됐다.
SMD는 서로 다른 검사로 측정한 연구 결과를 하나의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다. 일반적으로 0.2 정도는 작은 효과, 0.5 정도는 중간 정도의 효과를 말한다. 따라서 전체 인지기능 개선 효과는 작았고, 회상 능력과 지속적 주의력에서는 이보다 다소 큰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연구진은 "특정 인지영역에서는 개선이 확인됐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광범위한 인지기능 향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건강한 성인 25명을 대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10mg과 위약을 비교한 무작위 이중맹검 교차시험에서는 숫자 작업기억 과제의 오류가 줄고 정확도가 높아졌다. 반면 다른 인지기능과 시각정보 탐색 능력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기존 단회투여 연구들을 종합한 문헌고찰에서도 작업기억과 정보처리속도 등 일부 영역에서는 개선이 관찰됐지만 주의력, 추론·문제해결 등에서는 효과가 나타난 연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구마다 투여량과 평가방법에 따라 결과 차이도 컸다.
건강한 대학생 실제 시험 치르게 했더니
인지검사에서 나타난 변화가 실제 시험성적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올해 3월 국제학술지 Psychopharmacology에는 제목부터 흥미로운 무작위 대조시험이 실렸다. 연구 제목은 '메틸페니데이트(리탈린)는 실험환경에서 시험성적을 향상시키지 않는다'였다.
연구진은 ADHD가 없는 건강한 대학생들에게 메틸페니데이트 또는 위약을 투여한 뒤 실제 시험과 비슷한 조건에서 문제를 풀게 했다.
그 결과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했다고 해서 시험성적이 유의하게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지기능의 일부 요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과 여러 종류의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실제 시험 수행능력은 일치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처방 각성제를 사용하는 건강한 사람들을 분석한 기존 연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됐다. 48개 연구, 1409명을 분석한 메타분석에서는 억제조절과 단기 일화기억 등에서 작지만 유의한 개선이 나타났다. 지연 일화기억에서는 중간 정도의 효과도 관찰됐다.
그러나 작업기억과 장기기억 결과에는 출판편향 가능성이 확인됐고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의 전반적인 인지기능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ADHD 환자 학업효과 연구마다 제각각
ADHD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했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2018년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은 ADHD 환자의 실제 학습 수행을 평가한 34개 연구를 분석했다.
메틸페니데이트 치료 후 수학 문제 처리량은 치료 전 또는 대조군에 비해 7.8% 증가했고 수학 문제의 정확도도 3.0% 높아졌다. 읽기 속도 역시 유의하게 개선됐다.
그러나 읽기 정확도에서는 유의한 개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반적인 학업능력 개선 정도 역시 ADHD 증상 자체가 좋아지는 정도보다 작았다.
장기간 학교생활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결과가 더 엇갈렸다. 2022년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은 6~18세 ADHD 아동·청소년 1만 2269명이 포함된 9개 실제 진료환경 연구를 분석했다. 치료기간은 2.6개월에서 4.25년이었다.
9개 연구 가운데 5개에서는 메틸페니데이트가 학업수행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편향 위험이 가장 낮은 4개 연구 가운데 3개에서는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장기간 사용을 평가한 5개 연구에서도 4개는 학교생활에서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연구진은 "일부 연구에서 단기간 학업성과가 개선됐지만, 현재까지의 근거만으로 메틸페니데이트가 ADHD 학생의 실제 학업성취를 개선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보다 장기간 ADHD 약물치료와 학업성취를 살펴본 또 다른 문헌고찰에서는 표준화 학업성취도 검사 점수가 좋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개선 폭은 작았다. 실제 학교 성적이나 유급 감소 효과에 대한 근거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식약처가 28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통해 "공부 잘하는 약은 없다"고 밝힌 것은 위와 같은 다수의 국내외 연구사례를 종합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으로 보인다. 약물 오남용에 따른 위험성도 이번 조치의 배경이다.
미국 젊은층도 '처방 각성제' 오남용
한편 메틸페니데이트를 비롯한 처방 각성제를 학업이나 업무 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청(SAMHSA)의 '2025년 약물사용 및 건강에 관한 전국조사(NSDUH)'에 따르면 지난해 처방 각성제를 오남용한 18~25세 미국인은 97만 8000명으로 해당 연령층의 2.7%에 달했다.
12~17세 청소년은 21만 6000명(0.8%), 26세 이상 성인은 약 270만 명(1.2%)이었다. 이 통계는 메틸페니데이트만 집계한 것이 아니라 암페타민 등을 포함한 처방 각성제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처방 각성제의 오남용 문제가 이어지자 2023년 관련 약물 전체에 대해 오남용·중독·과다복용 위험에 관한 박스경고를 강화했다.
FDA가 2006~2020년 관련 연구를 검토한 결과 비의료적 목적으로 처방 각성제를 사용한 사람의 56~80%가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약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처방약을 잘못 사용한 경우는 10~20%, 판매상이나 모르는 사람을 통해 입수한 경우는 4~7%였다. 인터넷을 통한 입수는 1~2%였다.
FDA "업무·학업 능력 높이려는 목적"
FDA는 비의료적 사용의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업무 또는 학업 능력을 높이려는 목적을 지목하면서 처방 각성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말고, 의료진도 치료 과정에서 오남용과 중독 징후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도록 권고했다.
한국 식약처 역시 메틸페니데이트는 ADHD 등 질병 치료를 위해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환이 없는 사람이 복용하면 두통과 불안, 심한 경우 환각 등이 나타날 수 있고, 처방 없이 SNS 등에서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약을 복용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