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전경 [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워 환자가 직접 해외에서 들여오던 의약품 10개가 정부의 공적 공급체계로 넘어간다. 제약사의 품목 취하나 공급 중단·감소로 의료현장에서 구하기 어려워진 의약품 4개도 새로 긴급도입 대상에 포함됐다.
의약품 긴급도입 제도는 국내에 허가되지 않은 해외 의약품 가운데 의료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다른 약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을 정부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직접 공급하는 제도다.
그동안 환자 개인의 해외 구매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필수의약품 공급에 정부가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오는 11월에는 국가필수의약품 등의 긴급도입과 주문 제조에 대한 법적 근거도 시행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4일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환자 치료에 필요하지만 민간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의약품에 대한 긴급도입 공적 공급체계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환자가 직접 구하던 10개 의약품, 정부가 공급
이번에 긴급도입 의약품으로 전환되는 품목은 모두 10개다. 이전에는 환자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자가치료용으로 해외에서 구매해 반입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센터를 통해 직접 공급한다.
대표적인 품목이 경구 투여가 어려운 중증 결핵 환자에게 사용하는 리팜피신(리팜핀) 주사제다. 시스틴뇨증 환자의 결석 형성을 막는 티오프로닌 정제, 시안화물 중독 치료제 히드록소코발라민 주사제, 조혈모세포 이식 전처치에 사용하는 트레오설판 주사제도 포함됐다.
임신성 고혈압 등에 사용하는 라베타롤 정제와 중증 갑상선기능저하로 발생하는 점액수종혼수를 치료하는 레보티록신 주사제, 크롬친화세포종 등에 사용하는 펜톨아민 주사제, 장내 아메바증 치료제 파로모마이신도 공적 공급으로 전환된다.
이밖에 안드로스타놀론 겔제와 녹농균에 감염된 낭포성 섬유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토브라마이신 흡입제가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수입 주체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내 시장 규모가 작거나 상업성이 낮아 정식 허가·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의약품을 환자 개인이 직접 찾아야 했던 부담을 정부가 넘겨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공급 끊긴 마취제·폐동맥고혈압 치료제도 긴급도입
환자가 직접 들여오던 약뿐 아니라 국내에서 공급 공백이 발생한 의약품도 정부가 긴급도입한다.
새로 추가된 품목은 시스아트라쿠륨 주사제, 악사틸리맙 주사제, 에포프로스테놀 주사제, 히드로코르티손 주사제 등 4개다. 식약처는 제약사의 품목 취하나 공급 중단 등으로 의료현장 공급이 어려워진 의약품에 대해 의료계와 약업계, 전문학회 등의 요청을 받아 긴급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아트라쿠륨은 전신마취나 중환자 진정 시 골격근을 이완시키고 기관 내 삽관과 기계적 환기를 돕는 약물이다. 특히 이 약은 공급 불안정 문제로 지난 6월 다카르바진·독소루비신 주사제와 함께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새로 지정된 바 있다. 국가필수의약품은 당시 488개에서 491개로 늘었다.
악사틸리맙은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치료제다. 에포프로스테놀은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운동능력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며 현재 공급을 위한 실무협의가 진행 중이다. 히드로코르티손 주사제는 부신피질 기능부전 등 내분비질환의 급성 상태에 사용하는 약으로, 제약사의 공급량 감소에 따라 긴급도입 대상이 됐다.
희귀질환 치료제뿐 아니라 마취·중환자 치료와 내분비질환 등 일상적인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의약품까지 공급 불안이 발생하면 정부가 직접 해외 조달에 나서는 구조다.
11월부터 정부의 필수약 공급 개입 제도화
정부의 필수의약품 공급 개입은 오는 11월 한 단계 더 제도화된다.
오는 11월 12일 시행되는 개정 약사법에는 국가필수의약품 등의 긴급도입과 주문 제조에 관한 조항이 신설됐다. 공급이 불안정한 국가필수의약품 등에 대해 생산·수입 확대를 요청하고, 필요한 경우 공적 공급을 추진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정부의 주문 제조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식약처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그동안 공공생산·유통사업을 통해 민간 제약사에 필수의약품 생산을 지원해 왔다. 올해 6월 기준 6개 제약사가 8개 국가필수의약품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다카르바진 주사제 등 공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에 주문 제조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오는 11월 시행되는 약사법은 이러한 공적 공급 정책의 법적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성격이 강하다.
결국 국내에서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가 생산·수입을 중단하거나, 국내 허가 제품 자체가 없어 환자가 직접 해외에서 구해야 했던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공급자로 개입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셈이다.
식약처는 공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의 긴급도입과 주문 제조 등을 통해 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필수의약품 공급 공백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해외도 필수약 공급에 정부 개입 확대
의약품 공급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핵심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을 제안해 핵심의약품의 생산 기반 강화와 공동조달, 공공조달을 통한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회원국들이 단독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의약품을 공동 구매하고, 특정 국가나 공급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골자다.
영국은 정부가 의료제품 비축물자를 직접 운영하는 동시에, 일부 병원용 의약품에 대해 8주분 완충재고를 확보하도록 하는 계약 체계를 두고 있다. 공급 부족이 심각해질 경우에는 'Serious Shortage Protocol'을 가동해 약사가 처방 변경 없이 대체 품목이나 다른 용량·제형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도 최근 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국가 차원의 산업·안보 문제로 다루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공급이 특히 중요한 의약품을 별도로 지정해 제조·원료 확보를 지원하고 있으며, 항균제의 원료 국산화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공급망 취약성을 이유로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을 경제안보상 '특정중요물자'에 추가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자가치료용 의약품 긴급도입 전환 목록 10개 품목>
연번
성분‧제형
자가치료용 제품명
효능효과(적응증)
1
리팜피신 주사제
Eremfat
결핵치료 (타 화학요법제 병용)
2
티오프로닌 정제
Thiola 100mg
시스틴뇨증 환자의 시스틴 결석형성 예방 (타 요법 병행)
3
히드록소코발라민 주사제
Cyanokit
시안화물 중독 확진(의심) 환자 치료
4
트레오설판 주사제
Trecondi 1g, 5g
조혈모세포 이식 이전 전처치 요법
5
라베타롤 정제
Labetalol HCl 100mg
고혈압, 협심증을 수반한 고혈압, 임신성고혈압
6
레보티록신 주사제
Levothyroxine inj
점액수종 혼수의 치료
7
펜톨아민 메실산염 주사제
Regitin
① 크롬친화세포종 환자 수술전·중 고혈압
② 크롬친화세포종 진단
③ 노르에피네프린의 정맥·정맥주위 투여(유출) 후 피부괴사 예방
8
파로모마이신 캡슐제
Humatin 250mg
장내 아메바증(급·만성), 간성혼수 관리 보조요법
* 감수성 있는 세균감염 치료·예방에만 사용
9
안드로스타놀론 겔제
Andractim
남경화성 태선, 여성형 유방증,
기질성‧기능성 성선기능저하증(전신성)
여외음부 경화성 태선
10
토브라마이신 흡입제
Tobramycin inhalation solution
Pseudomonas aeruginosa에 감염된 낭포성 섬유증
성인 및 6세 이상의 소아환자 치료
<긴급도입 추가(신규) 의약품 목록 4개 품목>
연번
성분‧제형
효능효과(적응증)
1
시스아트라쿠륨 주사제
전신마취 시 또는 중환자의 진정 시 골격근 이완
기관 내 삽관 및 기계적 환기 용이하게 하기 위한 보조
2
악사틸리맙 주사제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치료
* 조혈모세포 이식 후 수혈 림프구로 인한 자가면역질환
3
에포프로스테놀 주사제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신체적 운동능력 개선 위한 치료
* 현재 공급관련 실무협의 진행 중
4
히드로코르티손 주사제
내분비 질환, 부신피질 기능부전 등 질환의 급성상태 치료
* 제약사 공급량 감소에 따른 긴급도입 의약품 공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