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초기 임상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항암제가 대규모 3상에서 오히려 대조군보다 낮은 치료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발사는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임상 단계가 올라가면서 커진 '생산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초기 임상에 사용한 약과 3상에 사용한 약에서 미세한 구조 차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같은 바이오의약품이라도 생산 규모와 제조공정이 달라지면 단백질에 붙는 당의 구조 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원인 분석 결과가 주목된다.
호주 생명공학기업 이뮤텝(Immutep)은 11일(현지시간)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에프틸라지모드 알파(eftilagimod alfa, efti)'의 비소세포폐암(NSCLC) 3상 'TACTI-004' 중단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3상에 사용한 약물과 이전 임상에 사용한 약물 사이에 구조적 차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차이는 단백질에 붙어 있는 당 구조인 'N-당쇄(N-glycan)'에서 발견됐다.
이뮤텝은 아직 이 차이가 3상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다. 회사는 임상·약리·제조 측면을 함께 살펴보는 원인 분석을 계속하고 있으며, 분석이 끝나는 대로 추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TACTI-004서 치료군 반응률이 오히려 낮아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는 면역세포 표면 단백질인 LAG-3를 이용해 항원제시세포를 활성화하는 면역항암제다. 항원제시세포가 암을 인식해 T세포 등에 신호를 보내도록 자극함으로써 항암 면역반응을 높이는 방식이다.
TACTI-004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를 평가한 글로벌 3상이다.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와 항암화학요법에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를 추가한 군과, 키트루다·항암화학요법에 위약을 추가한 군을 비교했다.
시험은 지난 3월 예정된 중간 무용성 분석에서 독립적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DMC)가 중단을 권고하면서 조기 종료됐다. 치료 효과를 입증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7월 이뮤텝이 공개한 173명 중간분석에서 에프틸라지모드 알파군의 객관적반응률(ORR)은 42.9%였다. 대조군은 55.1%로 오히려 더 높았다. 종양세포의 PD-L1 발현 수준에 따라 나눠도 에프틸라지모드 알파군이 우월한 환자군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이전 임상 결과와 크게 다른 것이다.
같은 키트루다·항암화학요법 조합에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를 추가했던 1상 'INSIGHT-003'에서는 객관적반응률이 62.7%였다. 대부분의 환자가 PD-L1 발현이 낮은 편이었는데도 비교적 높은 반응률을 보였다.
이뮤텝은 TACTI-004 환자에서 나타난 면역 활성 양상도 이전 임상과 뚜렷하게 달랐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에 따라 임상 설계와 환자 특성, 시험 운영, 약물 제조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성공한 초기 임상은 200L, 실패한 3상은 2000L
원인 분석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이 생산 규모였다.
이뮤텝에 따르면 과거 TACTI-mel, TACTI-002, INSIGHT-003 등 1·2상에서 사용한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는 200L 규모로 생산됐다. 이 규모에서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에 따라 모두 10개 배치가 생산됐고, 이들 물량이 앞선 초기 임상에 사용됐다.
이뮤텝은 초기 임상에 사용한 200L 생산분과 비소세포폐암 3상 TACTI-004에 사용한 2000L 생산분 사이에서 N-당쇄를 포함한 구조적 차이를 확인했다. 회사는 이 차이가 예상 밖 임상 결과와 관련됐는지 분석하고 있다. [AI 생성이미지]반면 실패한 TACTI-004 3상에서는 생산 규모를 10배 키운 2000L 제조분만 사용했다.
현재까지 회사 분석에서는 임상시험 설계, 환자군 특성, 무작위배정, 시험 운영, 새로운 안전성 신호 등에서 TACTI-004의 예상 밖 결과를 설명할 만한 뚜렷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회사가 두 생산분을 비교한 결과 미세한 분석적·구조적 차이가 확인됐고, 그 가운데 하나가 N-당쇄 구조 차이였다. 이뮤텝은 이 차이가 TACTI-004에서 나타난 다른 면역 활성 양상과 예상 밖 임상 결과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이뮤텝은 이에 따라 향후 임상에 사용할 에프틸라지모드 알파를 다시 200L 규모로 생산하기로 하고 새로운 제조 배치를 계약했다.
왜 중요한가…바이오의약품은 제조공정 변화에 민감
이번 사례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이오의약품의 특성 때문이다.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일반적인 저분자 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해 복잡한 단백질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배양 조건이나 제조공정이 달라지면 단백질에 붙는 당의 종류와 구조 같은 특성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단백질에 당이 붙는 '당화(glycosylation)'를 치료용 단백질에서 중요하게 관리해야 할 품질 특성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당쇄 구조의 차이가 약물의 효과와 체내 지속시간, 안정성, 안전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따라서 초기 임상에서 후기 임상으로 넘어가면서 생산량을 크게 늘릴 때는 단순히 같은 성분을 더 많이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임상에 사용한 약물과 품질 특성이 충분히 비슷하게 유지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에프틸라지모드 알파의 경우 200L 생산분을 사용한 여러 초기 임상에서는 항암활성이 확인됐지만, 2000L 생산분만 사용한 3상에서는 예상 밖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두 생산분 사이의 N-당쇄 구조 차이까지 확인되면서 제조 변화가 임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2000L 생산이 3상 실패를 초래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뮤텝 역시 제조 규모와 N-당쇄 차이를 실패의 잠재적 관련 요인으로 보고 있을 뿐, 인과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향후 원인 분석에서 제조 차이와 임상 효과의 연관성이 확인된다면, 초기 임상에서 효과를 보인 바이오의약품을 후기 임상과 상업 생산 규모로 확대할 때 제조공정의 일관성을 얼마나 정밀하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폐암 3상은 접고 두경부암·연조직육종에 집중
앞서 이뮤텝은 지난 3월 독립적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DMC)의 무용성 판단에 따라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3상 TACTI-004의 환자 모집을 중단하고 시험 종료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회사는 이번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에프틸라지모드 알파의 개발 전략을 다시 짜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고 에프틸라지모드 알파 개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앞으로 허가를 목표로 하는 후기 개발을 PD-L1 음성(CPS 1 미만) 두경부 편평세포암과 연조직육종 수술 전 치료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두경부암에서는 2021년 4월 FDA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고, 연조직육종에서는 올해 4월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연조직육종 2상에서는 앞서 설정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했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후속 임상을 준비하고 있으며, 제조 일정과 FDA 협의, 임상 설계, 파트너십 및 자금 상황 등을 살펴 2027년 하반기 시험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 닥터레디스(Dr. Reddy's Laboratories)는 에프틸라지모드 알파의 일부 지역 상업화 권리를 보유한 파트너다. 이뮤텝은 닥터레디스도 이번 개발 방향에 동의했으며, 다른 업체들과도 향후 개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