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SK바이오팜이 두 번째 글로벌 블록버스터 후보로 낙점한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Opakalim, BHV-7000)'의 미국 임상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특정 대사체의 비임상 독성 소견에 대한 추가 근거자료를 요구하며 임상 2/3상 'RISE2·RISE3'에 부분 임상 보류(Partial Clinical Hold) 조치를 내린 것이다.
현재 투약 중인 환자는 치료를 계속할 수 있지만 신규 환자 등록은 일시 중단된다. RISE3는 환자 등록이 이미 완료돼 SK바이오팜은 현재까지 올해 하반기 톱라인 결과 발표 일정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오파칼림이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안전성과 내약성'을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받던 자산이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달 26일 미국 바이오헤이븐(Biohaven)으로부터 오파칼림을 포함한 Kv7 신약개발 플랫폼의 글로벌 권리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선급금과 마일스톤 등을 포함해 최대 7억 9500만 달러로, 당시 약 1조 1000억 원에 달했다.
바이오헤이븐은 오파칼림을 하루 한 번 복용하는 차세대 Kv7.2·Kv7.3 활성제로 소개하면서 중추신경계 이상반응 부담이 낮은 후보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SK바이오팜 역시 후발주자인 오파칼림이 같은 계열 경쟁약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으로 내약성과 안전성을 내세웠다.
유창호 SK바이오팜 전략부문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파칼림의 차별점으로 내약성과 안전성을 꼽았다. 공개연장시험(OLE)의 전환율과 유지율, 중단 사유, 비임상 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었다.
SK바이오팜이 26일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 도입 발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2026.08.26. [사진=이창용 기자]증권사들 잇달아 목표주가 올려…주가도 즉각 반응
증권가의 평가는 더 낙관적이었다.
다올투자증권은 계약 다음 날인 지난달 27일 오파칼림의 신약가치를 7175억 원으로 평가하고 SK바이오팜 목표주가를 15만 원에서 16만 원으로 상향했다. 이지수 연구원은 오파칼림이 "안전성과 내약성을 앞세워 초기 환자군까지 공략이 가능하다"고 평가하고, 경쟁약 아제투칼너와 비교해 "우수한 안전성과 내약성 측면에서 차별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하나증권은 같은 날 오파칼림을 엑스코프리 이후 SK바이오팜의 차기 성장동력으로 평가하며 목표주가를 15만 원에서 16만 원으로 높였다.
메리츠증권도 목표주가를 16만 원으로 올리면서 오파칼림의 신약가치를 9847억 원으로 새로 반영했다. 당시 목표주가는 계약 발표 전날 종가 대비 70%가 넘는 상승여력을 전제로 한 수준이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계약 발표 이후 SK바이오팜 주가는 오파칼림 도입 기대감에 약 8% 급등하며 9만 원대를 회복했다. 증권사들의 잇따른 목표주가 상향과 함께 오파칼림이 '포스트 엑스코프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빠르게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불과 2주 만에 FDA가 특정 대사체의 비임상 독성 소견과 관련해 추가 자료를 요구하며 부분 임상 보류 조치를 내리면서 증권가의 낙관론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FDA가 지적한 문제는 '인체 이상반응' 아닌 비임상 독성
FDA가 문제 삼은 것은 사람에게서 확인된 이상반응이 아니다.
SK바이오팜에 따르면 오파칼림의 특정 대사체를 설치류(Rat)에 투여한 비임상 독성시험에서 독성 소견이 관찰됐고, FDA는 이 현상이 설치류에 국한된 종특이적 소견인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비임상 근거자료를 요구했다.
SK바이오팜은 계약 체결 전 실사 과정에서 해당 소견을 이미 확인했다고 밝혔다. 독성학 전문가와 FDA 약리·독성 심사 경력이 있는 외부 전문가들의 검토도 거쳤으며, 기존 자료를 토대로 해당 독성이 설치류에서 나타나는 종특이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고 사람에게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했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 오파칼림 임상에 1200명 이상의 시험대상자가 참여했지만 이번 비임상 독성 소견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상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부분 임상 보류를 오파칼림의 인체 안전성 문제가 확인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르다. FDA 역시 현재 투약 중인 환자의 치료는 계속하도록 허용했다.
다만 SK바이오팜의 판단과 FDA의 규제 판단 사이에는 아직 넘어야 할 간극이 있다. 회사와 외부 전문가들은 해당 독성이 설치류 특이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지만, FDA는 이를 뒷받침할 추가 근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바이오헤이븐은 FDA와 협의해 특정 대사체에 대한 추가 비임상시험 자료를 제출하고 부분 임상 보류 해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SK바이오팜도 바이오헤이븐과 FDA 요청사항을 검토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RISE3는 이미 환자 모집이 완료돼 현재로서는 올해 하반기 톱라인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반면 신규 환자 등록이 필요한 RISE2는 부분 임상 보류가 장기화될 경우 개발 일정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안전성 승부수' 성급했나…시간은 경쟁약물 편
경쟁 상황을 고려하면 시간은 결코 오파칼림의 편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약물에 유리한 형국이다.
같은 Kv7 계열에서 가장 앞선 제논 파마슈티컬스(Xenon Pharmaceuticals)의 '아제투칼너(azetukalner)'는 이미 성인 초점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X-TOLE2'에서 유효성을 입증했다. 반면 오파칼림은 아직 RISE2·RISE3의 전체 무작위 비교 결과도 공개되지 않았다.
SK바이오팜과 바이오헤이븐이 오파칼림의 경쟁력으로 내약성과 안전성을 내세운 것이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오헤이븐은 올해 5월까지 공개된 자료에서도 오파칼림이 여러 뇌전증 환자군에서 낮은 중추신경계 이상반응 발생률과 양호한 내약성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개연장시험에서 확인된 낮은 이상반응 발생률만으로 경쟁약보다 안전성이 우수하다고 단정하기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공개연장시험은 무작위배정·이중눈가림·위약대조 시험과 환자 구성과 설계가 다르고, 특정 대사체의 비임상 독성 위험까지 설명하는 자료도 아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번 FDA 조치는 바로 그 빈틈을 드러냈다. 기존 임상에서 뚜렷한 안전성 신호가 없었다는 사실과 특정 대사체의 비임상 독성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후자는 바이오헤이븐과 SK바이오팜이 추가 자료를 통해 FDA에 입증해야 할 문제다.
계약이 아직 거래 종결(Deal Closing) 전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바이오헤이븐은 계약 발표 당시 거래 종결 이후 SK바이오팜이 오파칼림의 글로벌 개발과 FDA 허가를 공동으로 추진하게 된다고 밝혔다. SK바이오팜도 현재 계약이 거래 종결 전 단계라고 확인하면서, 양사 경영진이 이번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고 부분 임상 보류 해제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 장밋빛 평가 신중히 접근해야
이번 사안은 개발단계 신약의 가치평가가 얼마나 많은 변수를 안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후기 임상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공개된 환자 안전성 자료뿐 아니라 비임상 독성, 대사체, 규제기관의 추가 요구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이번 사례는 신약 도입 직후의 낙관적 가치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임상과 규제 리스크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파칼림에 수천억 원부터 3조 원이 넘는 신약가치를 반영하고 목표주가를 잇달아 높였던 증권사들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SK바이오팜이 내세운 '안전성·내약성 승부수'가 틀렸다고 결론 내릴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 경쟁력은 회사나 증권사의 기대가 아니라 FDA가 요구한 추가 비임상 자료와 RISE2·RISE3 결과를 통해 입증해야 할 문제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K바이오팜은 11일 오전 8시 30분 온라인 설명회를 열어 이번 부분 임상 보류의 배경과 임상 진행 상황, 추가 비임상시험 및 향후 대응 계획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