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해외 원료의약품 공급망이 중국과 인도 등 특정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의약품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해외 의약품 공급망이 중국과 인도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특정 국가에 제조소가 몰리면 생산 차질이나 품질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체 공급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국내 의약품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본지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등 해외 제조소 등록 정보'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의 해외제조소 등록은 총 1만 3448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중국이 4486건(33.4%)으로 가장 많고 인도가 3313건(24.6%)으로 뒤를 이었다. 두 나라의 등록 건수는 무려 58%를 차지했다. 10건 중 6건이 중국 아니면 인도인 셈이다. 이어 독일 740건(5.5%), 이탈리아 669건(5.0%), 일본 639건(4.8%), 미국 610건(4.5%) 순이었다.
중국·인도 등 특정 국가에 집중…상위사도 편중
기업별로는 종근당, 유한양행, 동아제약의 중국 의존도가 높았다. 종근당은 160건 가운데 중국 49건(30.6%)·인도 36건(22.5%)이었고, 유한양행은 139건 가운데 중국 46건(33.1%)·인도 28건(20.1%)이었다. 이어 동아제약은 90건 중 중국이 45건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인도는 15건(16.7%)이었다.
반면 한미약품은 인도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체 77건 가운데 인도가 31건(40.3%)으로 중국 15건(19.5%)의 두 배를 넘었다. 이밖에 제일약품은 총 67건 중 중국과 일본이 각각 15건(22.4%)을 차지했고 동아에스티는 47건 중 일본이 18건(38.3%)으로 가장 많았다.
해외제조소는 국내 수입업체가 들여오는 완제의약품이나 원료의약품 등을 생산하는 해외 제조시설을 말한다. 해외제조소 등록 신고는 업체별로 하기 때문에 같은 공장이라도 국내 업체 열 곳이 등록하면 열 건이 된다. 겹치는 것을 제외한 실제 공장 수는 3165곳이다. 이 가운데 1616곳(51.1%)은 국내 업체 두 곳 이상이 등록했다. 이들 제조소는 국내 업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거래하는 해외 공급처다.
국내 업체 등록 1위는 中 노스이스트제약그룹
국내 업체가 가장 많이 거래하는 업체는 중국 노스이스트제약그룹(Northeast Pharmaceutical Group)이었다. 종근당, 대웅제약, 한미약품, 보령, JW중외제약, 동아제약, 휴온스, 일동제약, 동국제약, 광동제약, 동화약품, 부광약품, 삼진제약, 셀트리온제약 등이 이곳을 제조소로 두고 있다. 등록 건수로는 100건에 달한다.
1946년 설립돼 랴오닝성 선양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화학합성·발효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을 함께 생산하는 대형 종합 제약기업으로, 항생제와 소화기·순환기계 원료를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중국 거래 업체는 저장메디슨 신창공장(Zhejiang Medicine Co., Ltd. Xinchang Pharmaceutical Factory)으로 80건이 등록됐다. 이어 중국 텐진텐야오(Tianjin Tianyao Pharmaceuticals) 77건, 인도 아미라이프사이언스(Ami Lifesciences Private Limited) 76건, 중국 장시텐신(Jiangxi Tianxin Pharmaceutical)과 허베이화룽(Hebei Huarong Pharmaceutical) 각 65건, 말레이시아 심바이오티카(Symbiotica Speciality Ingredients Sdn. Bhd.)와 중국 후베이광지(Hubei Guangji Pharmaceutical) 각 62건, 인도 수프리야라이프사이언스(Supriya Lifescience) 59건, 대만 신텍(Syn-Tech Chem. & Pharm) 56건 순이었다.
국내 기업의 전체 해외제조소 등록 건수 최상위권은 완제의약품 생산사가 아니라 원료의약품 수입·제조사가 차지했다. 삼오제약 201건, 대신무약 198건, 화일약품 198건, 파마피아 185건, 에이스바이오팜 163건 등이었다. 이는 종근당(160건) 등 완제의약품 생산사보다 많은 것이다.
이들 회사는 원료를 들여와 국내 제약사에 공급하거나 자사의 2차 원료 생산에 사용하는 것이 본업이어서 이처럼 많은 해외 공급처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 공급망 흔들리면 대체 생산 비상
문제는 공급처가 특정 국가와 제조소에 집중될수록 한 곳에서 발생한 문제가 여러 의약품의 공급 차질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제조시설의 품질 문제나 생산 중단은 실제 의약품 부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조 과정의 품질 문제를 의약품 부족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생산 지연이나 원료·부품 공급 차질 역시 주요 원인이다. 해외 제조 의존도가 높은 미국은 이 같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근 자국 내 의약품 생산시설 확충과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 특정 제조소 의존이 장기간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에 따르면 안과질환 치료제 '비수다인(Visudyne)'은 원료의약품 생산을 미국의 단일 제조소에 의존하다 생산능력 저하로 2020년부터 공급 부족이 이어졌다. 유럽 규제당국은 새로운 제조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했고, 현재 2027년 완전한 공급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품질 문제가 곧바로 여러 국가의 공급 차질로 번진 사례도 있다. 화상 치료제 '넥소브리드(NexoBrid)'는 2025년 제조 과정에서 무균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에 문제가 발견되면서 유럽 내 유통이 일시 중단됐다. 이에 따라 독일·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 등 다수 국가에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
한국은 더 취약한 구조, 생산기반 확충 시급
국내 상황은 이 같은 해외 생산 차질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 두 나라에 해외제조소 등록의 58%가 몰린 데다, 실제 해외 제조소의 절반 이상을 복수의 국내 업체가 함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제조소에서 품질 문제나 생산 중단이 발생하면 동일 제조소에 의존하는 여러 업체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셈이다.
그렇다고 국내 생산으로 공백을 메울 여지도 충분하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 2023년 25.6%였다. 이어 2024년에는 31.9%까지 올라갔지만, 해외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단기간에 국내 생산으로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
정부도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2024년 10월부터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에 약가를 최대 68% 가산하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2025년 10월까지 신청한 제약사와 품목은 없었다.
필수의약품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국산 원료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약가 가산만으로 수입 원료를 국산으로 전환할 유인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국가필수의약품 중 신규 등재 약제로 한정했던 우대 대상을 이미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올라 있는 약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인도 중심으로 구축된 공급망을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운 만큼 공급처 다변화와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