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노바티스 글로벌 본사. 노바티스는 개발 중인 Lp(a) 표적 심혈관 신약 후보물질 '펠라카르센'은 최근 글로벌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진=노바티스 제공][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유전적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지질단백질(a)=[Lp(a)] 수치를 크게 낮춘 신약 후보물질이 실제 주요 심혈관 사건 감소에는 실패했다는 대규모 임상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가 개발 중인 Lp(a) 표적 신약 후보물질 '펠라카르센(pelacarsen)'이 그 주인공이다. 8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3상에서 Lp(a) 수치를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이지 못했다. Lp(a)를 직접 낮추면 실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도 감소하는지를 본격적으로 검증한 대규모 후기 임상이어서 후속 Lp(a) 치료제 개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4일(현지시간) 노바티스에 따르면 펠라카르센은 임상 3상 'Lp(a)HORIZON'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험은 높은 Lp(a) 수치와 기존 심혈관질환을 가진 환자 832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무작위·이중맹검·위약대조 글로벌 임상이다.
1차 평가지표는 심혈관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 비치명적 뇌졸중, 입원이 필요한 긴급 관상동맥 재개통술을 합친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이었다.
임상 결과, 펠라카르센 투여군에서는 Lp(a) 수치가 낮아졌지만 전체 환자군에서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안전성은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세부 결과는 향후 학술대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Lp(a) 최대 80% 낮췄던 2상…기대 컸던 이유
이번 결과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앞선 임상에서 펠라카르센이 Lp(a)를 매우 강하게 낮췄기 때문이다.
Lp(a)는 저밀도지단백(LDL)과 비슷한 입자에 아포지단백(a)이 결합된 지질단백질이다. 혈중 농도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되고, 농도가 높을수록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과 대동맥판막협착증 위험이 증가하는 독립적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펠라카르센은 간에서 아포지단백(a) 생성을 억제해 Lp(a) 생성을 줄이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계열 후보물질이다.
미국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Ionis Pharmaceuticals)가 개발한 이 후보물질은 초기에는 AKCEA-APO(a)-LRx라는 이름으로 연구됐다.
2020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임상 2상에는 심혈관질환이 있고 Lp(a)가 높은 환자 286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펠라카르센은 투여량에 따라 Lp(a)를 35~80% 감소시켰다. 가장 높은 용량군에서는 평균 80% 감소했고, 환자의 약 98%가 Lp(a)를 당시 심혈관질환 위험 기준치인 50mg/dL 미만까지 낮췄다. 주요 이상반응은 주사부위 반응이었으며 혈소판이나 간·신장 관련 안전성에서는 위약군과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펠라카르센은 "Lp(a)를 낮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상당히 강한 답을 내놓은 후보였다.
이번 3상의 목적은 그 다음 질문, 즉 "Lp(a)를 낮추면 실제 환자의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까지 줄어드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결과에서는 그 연결고리를 입증하지 못했다.
쉬리람 알라디에(Shreeram Aradhye) 노바티스 개발책임자 겸 최고 의학책임자는 Lp(a)가 낮아졌음에도 전체 환자군에서 심혈관 위험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Lp(a) 치료 전략 자체가 틀렸나
이번 실패만으로 Lp(a)가 치료 표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결론짓기는 이르다. 아직 노바티스가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펠라카르센이 Lp(a)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낮췄는지, 감소 폭과 심혈관 사건 사이에 연관성이 있었는지, 특정 환자군에서는 효과가 있었는지 등이다.
펠라카르센의 약물 특성이나 투여방식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Lp(a)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기존에 예상했던 만큼 심혈관 위험을 낮추기 어려운 것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Lp(a) 치료제 개발 분야에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
Lp(a)는 역학연구와 유전학 연구에서 심혈관질환 위험과 강하게 연관된 것으로 확인돼 왔다. 그러나 위험인자와 질병의 연관성이 강하다는 사실이 해당 위험인자를 약물로 낮췄을 때 반드시 임상적 이득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Lp(a)HORIZON은 바로 그 가설을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한 연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암젠·릴리 후속 신약 결과에도 관심
이제 관심은 후속 Lp(a) 저하제로 쏠린다.
"암젠(Amgen)은 소간섭RNA(siRNA) 계열 후보물질 '올파시란(olpasiran)'을, 일라이릴리(Eli Lilly)는 또 다른 siRNA 계열 후보물질 '레포디시란(lepodisiran)'을 후기 단계에서 개발하고 있다.
암젠은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과 높은 Lp(a) 수치를 가진 환자 7297명을 대상으로 올파시란의 심혈관 사건 감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3상 'OCEAN(a)-Outcomes'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 모집은 이미 완료됐으며 관상동맥질환 사망, 심근경색, 긴급 관상동맥 재개통술 등 주요 심혈관 사건을 직접 평가한다.
릴리도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위험이 높은 성인을 대상으로 레포디시란의 심혈관 사건 감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3상 'ACCLAIM-Lp(a)'을 진행 중이다. 계획된 환자 수만 약 1만 7300명에 달하며 심혈관 사망과 심근경색, 뇌졸중 등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 여부를 평가한다.
두 약물은 펠라카르센과 다른 소간섭RNA(siRNA) 계열로, Lp(a)를 더 깊고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후보물질이다. 그러나 펠라카르센이 Lp(a) 수치를 낮추고도 주요 심혈관 사건 감소에 실패하면서, 이들 후보 역시 Lp(a) 수치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임상 성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로이터(Reuters)도 이번 결과가 후속 Lp(a) 프로그램의 입증 부담을 키웠다고 전했다.
노바티스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Reuters에 따르면 펠라카르센은 다발성경화증 치료 후보 리미브루티닙(remibrutinib), 유전자치료제 델데시란(del-desiran)과 함께 회사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기대해온 주요 후기 파이프라인 중 하나였다. 세 후보의 승인 시 합산 최대 연매출 기대치는 100억 달러를 넘었다.
이번 실패로 Lp(a)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 경쟁은 암젠과 릴리 등 후속 후보물질의 3상 결과에 따라 다시 짜일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