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제약업계의 의약품 규제 환경이 허가 완화와 사후 관리 강화라는 뚜렷한 양극화 양상을 보이며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의약품 품목 허가 및 심사 규제는 완화하는 추세지만, 약가 산정,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전사적 공시 등 시장 진입 이후의 기업 수익성과 직결되는 규제는 대폭 강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정부가 최근 확정·발표한 제도 개편안들을 종합하면, 제네릭의 수익성 하락과 기업의 연구개발 의무 투자 부담 증가라는 명확한 신호가 감지된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은 파이프라인 자산 가치를 재평가하고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는 등 전사적 차원의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제네릭에 적용되는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대폭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개정안을 시행한다. 계단식 약가 제도하에서 동일 제제로 등재 가능한 품목 수 기준도 기존 20개에서 13개로 축소해 시장 진입 시기를 놓친 후발 주자들의 진입 장벽을 한층 높였다.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를 14년 만에 전면 개편했다. 기업들이 충족해야 할 자본 투자 역량의 잣대 또한 엄격해졌는데, 의약품 매출액 대비 의약품 연구개발비 비율 기준을 기존 대비 2%포인트 상향 조정해 제약사들의 직접적인 자본 투입 확대를 강제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리베이트 결격사유 심사 기준 시점 역시 기존 '행정처분일'에서 '위반행위 종료일'로 변경해 장기간 이어진 불법 영업 관행에 대한 제재 실효성을 높였다.
자본 시장에서의 자산 가치 평가와 직결되는 제약·바이오 기업 공시 기준도 금융감독원의 종합 개선 방안에 따라 현미경 잣대가 적용된다.
앞으로 제약사들은 기술이전 계약 체결 시 수령 여부가 불확실한 전체 계약 규모가 아니라 계약금, 마일스톤, 로열티 등 세부 현금 흐름 내역을 명확히 분리해 공시해야 한다. 특히 과거에 추진 중이라고 밝혔던 모든 제품군에 대해서도 임상 실패에 따른 개발 중단부터 기술 반환, 허가 여부까지 전체 자산 수명 주기 이력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현재 식약처를 비롯한 규제 당국의 의약품 허가 절차 및 심사 규제는 산업 육성 차원에서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시장 진입 이후 사후 규제에 대한 대응력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프라인 재편·컴플라이언스 강화 … 생존 셈법 복잡해진 제약사들
규제 당국의 전방위적인 제도 변화에 직면한 제약사들은 단순 제네릭 중심의 영업 구조에서 탈피해 파이프라인 전략을 새롭게 짜는 등 전면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무한 경쟁에 직면한 단순 제네릭 개발 대신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시점에 맞춘 조기 특허 소송전과 개량신약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약가 산정률 감산과 등재 품목 수 축소로 단순 제네릭의 시장성이 급감하자, 다수 제약사가 항궤양제 등 주요 블록버스터 약물을 겨냥해 동시다발적으로 특허 도전에 나서는 등 치열한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네릭 대신 저용량 복합제나 서방형 제제 형태의 개량신약 개발에 R&D 자금을 집중 투입하는 제약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초기 복합제 모델 등 개량신약은 차별화된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네릭 대비 높은 약가 우대를 기대할 수 있고, 시장 선점 효과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화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기준을 사수하기 위한 R&D 지출 구조조정도 본격화하고 있다.
매출액 대비 R&D 비율 기준이 2%포인트 상향된 데 따라, 3년의 유예기간 내에 임상 성공률이 낮은 후보물질은 조기 탈락시키고 유망 파이프라인에 회사의 역량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나아가 기업 데이터 관리 및 공시 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한 내부 통제 시스템도 대대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금감원의 공시 기준 강화로 기술이전의 실질적인 현금 흐름과 임상 중단 이력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상위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재무 보고서의 공식 분류와 자사의 파이프라인 공시 데이터를 명확히 교차 검증하는 전담 인력을 속속 확충하고 있다.
리베이트 규제 강화에 대응해 영업 대행사(CSO) 관리를 포함한 전사적 공정경쟁규약(CP) 지표를 혁신형 제약기업 심사 배점 기준에 맞춰 재설계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제네릭 약가 개편 규정 중 양도·양수 상한금액 승계 제한 규정 등 일부 제도의 시행 시기가 내년 8월로 1년 유예되면서, 해당 기간 내에 품목 거래나 사업 구조 재편을 서두르려는 기업 간 합종연횡 움직임도 포착된다.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한 규제 격변기 속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R&D 경쟁력과 투명한 컴플라이언스를 무기로 체질 개선을 완수하고 새로운 산업 지형도에 완벽히 적응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