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미국에서 니만-피크병 C형(NPC) 최초 치료제로 허가된 희귀질환 신약이 유럽에서는 유효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가 거절 권고를 받았다.
같은 핵심 임상시험을 두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글루스타트 병용 환자군 분석을 근거로 치료 효과를 인정했지만, 유럽의약품청(EMA)은 전체 시험대상자에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고 자료 처리와 분석 방법에도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EMA 산하 인체의약품위원회(CHMP)는 현지시간 7월 23일 제브라 테라퓨틱스(Zevra Therapeutics)의 니만-피크병 C형 치료제 '메플리파(Meplyffa, 성분명 아리모클로몰·arimoclomol)'에 대해 판매허가 거절을 권고했다.
제브라는 앞서 '미플리파(Miplyffa)'라는 이름으로 유럽 허가를 신청했으나 2022년 3월 신청을 철회했으며, 제품명을 다시 '메플리파(Meplyffa)'로 바꿔 신청했으나 EMA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미플리파(Miplyffa)'라는 이름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회사가 신청한 적응증은 2세 이상 니만-피크병 C형 환자에게 기존 치료제인 '미글루스타트(miglustat)'와 메플리파를 병용하는 것이다.
니만-피크병 C형은 'NPC1' 또는 'NPC2' 유전자 변이로 세포 내부의 콜레스테롤과 지방 운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 유전성 신경퇴행질환이다. 지방이 뇌와 여러 장기의 세포에 쌓이면서 보행·운동·연하·언어·인지 기능이 점차 악화되며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리모클로몰은 세포 내 전사인자인 'TFEB'와 'TFE3'의 활성을 높여 NPC 단백질과 세포 내 지방 제거에 관여하는 단백질 생성을 촉진하도록 설계된 경구용 치료제다.
유럽의약품청(EMA)이 공개한 메플리파 허가 심사 현황. EMA는 이번 신청 제품명을 '메플리파(Meplyffa)'로 표기했으며, 2022년 철회된 이전 신청은 '미플리파(Miplyffa)'라는 이름으로 제출됐다고 설명했다. [사진=EMA 홈페이지 갈무리]CHMP "전체 환자군에서 임상적 유익 충분히 입증 안 돼"
제브라는 2~18세 니만-피크병 C형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년간의 무작위·위약대조 임상시험 결과를 허가 근거로 제출했다. 환자들은 기존 표준치료에 메플리파 또는 위약을 추가로 투여받았으며, 대부분은 미글루스타트를 함께 사용했다.
EMA는 보행, 연하, 인지, 언어, 미세운동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된 니만-피크병 임상중증도척도(NPCCSS)를 토대로 질환 진행 억제 효과를 평가했다.
심사 결과, EMA는 메플리파의 유효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제출 자료를 처리하고 결과를 분석한 방법 때문에 연구 결과의 신뢰성과 견고성을 확신하기 어렵고, 보행과 인지 기능에서는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글루스타트를 병용한 일부 환자군에서는 메플리파에 유리한 치료 효과가 관찰됐다. 그러나 EMA는 전체 시험대상자에서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하위집단의 분석 결과만으로 치료 효과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CHMP는 메플리파의 유익성이 위험성을 웃돈다고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허가 거절을 권고했다. 제브라는 CHMP 의견을 전달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FDA는 미글루스타트 병용군 재분석 근거로 승인
FDA는 앞서 2024년 9월 같은 성분의 미플리파를 미글루스타트와 병용해 2세 이상 소아와 성인 니만-피크병 C형 환자의 신경학적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로 승인했다. 니만-피크병 C형 치료제가 미국에서 허가된 것은 미플리파가 처음이었다.
FDA가 평가한 핵심 시험 역시 환자 50명을 2대 1로 나눠 미플리파 또는 위약을 투여한 12개월 임상이었다. 전체 환자의 78%인 39명이 미글루스타트를 병용했다.
FDA는 미글루스타트 병용 환자들의 보행, 언어, 연하, 미세운동 등 4개 영역을 다시 평가한 임상중증도척도 분석에서 미플리파가 위약보다 질환 진행을 늦춘 것으로 판단했다. 인지 영역은 FDA가 활용한 4개 영역 분석에서 제외됐다.
FDA와 EMA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배경에는 전체 환자군과 미글루스타트 병용 하위집단 가운데 어느 분석을 허가 판단의 중심에 놓을 것인지, 사후 재분석 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규제당국의 시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제브라, CHMP 재검토 요청…환자 지원 프로그램 유지
제브라는 CHMP의 부정적 의견에 대해 재검토를 요청할 방침이다. 회사는 재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각국 규제당국과 협의해 기존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고, 실제 진료환경에서 축적되는 추가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닐 맥팔레인(Neil F. McFarlane) 제브라 최고경영자는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아리모클로몰을 유럽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적절한 경로를 계속 모색할 것"이라며 "전체 임상자료가 환자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NPC 분야 권위자인 독일 뮌스터대학교 토르스텐 마르카르트(Thorsten Marquardt) 교수는 "아리모클로몰은 치료 수요가 큰 NPC에서 질환을 안정화하고 진행을 늦추는 의미 있는 효과를 보여줬다"며 "실제 진료환경에서 축적되는 임상경험은 초희귀 진행성 질환의 치료를 이해하는 데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제브라가 재심사를 요청하지 않으면 이번 CHMP 의견은 최종 의견으로 확정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최종 결정 절차로 넘어간다. 하지만 재심사를 요청할 경우에는 CHMP가 재심을 거쳐 최종 의견을 다시 채택한 뒤 EC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