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이 빠른 신약개발과 기술수출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글로벌 임상·허가·상업화를 이끌 전문인력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이 빠른 임상개발과 대규모 기술수출을 앞세워 세계 신약개발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자체 개발한 의약품을 해외에서 직접 허가받아 판매하는 글로벌 상업화 역량은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중국 내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능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규제당국과 협의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현지시간 15일 중국 대형 제약사들이 글로벌 임상개발과 해외 허가, 상업화를 담당할 국제 경험 보유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쑨퍄오양(Sun Piaoyang) 헝루이제약(Jiangsu Hengrui Pharmaceuticals) 회장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다기관 임상시험과 해외 품목허가, 상업화를 추진하려면 국제 신약개발과 규제, 다문화 조직 운영 경험을 갖춘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중국 제약업계에는 이러한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국 백신기업 칸시노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의 위쉐펑(Yu Xuefeng) 최고경영자도 "해외 임상시험 운영과 국가별 허가자료 작성, 국제 마케팅을 담당할 숙련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 규모는 세계 1위권…글로벌 임상 경험은 제한적
중국의 신약개발 외형은 이미 세계 최상위권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주도한 임상시험은 2009년 세계 전체의 2%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32%까지 확대됐다.
중국의 대규모 환자 기반과 상대적으로 빠른 환자 모집, 정부의 신약개발 지원정책이 임상시험 증가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도 혁신 신약의 임상시험계획을 30일 이내 심사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글로벌 동시개발과 국제 다기관 임상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기업이 수행하는 임상시험의 지리적 편중이다.
중국 기업이 2025년 진행한 임상시험 가운데 88%는 중국 내에서만 수행됐다. 미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은 전체의 5%에 그쳤다.
중국 기업의 임상개발 규모는 빠르게 커졌지만, 여러 국가의 환자를 동시에 모집하는 다지역 임상시험(MRCT) 경험과 해외 연구기관 관리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미다.
중국 환자 자료만으로 해외 허가받기 어려워
신약의 해외 허가에서는 임상시험 규모뿐 아니라 환자의 인종적·지역적 다양성과 현지 의료환경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중요하다.
리처드 파즈더(Richard Pazdur)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종양학센터장은 다지역 임상시험을 실시하면 국가별 결과를 비교해 치료 효과나 안전성의 차이가 데이터 품질, 인종적 특성 또는 의료관행에서 비롯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환자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의 경우 그 결과를 미국 환자와 의료환경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규제당국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도 대부분의 신약을 허가할 때 중국인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임상자료에 의존하기보다 일본인 환자가 포함된 임상자료를 요구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중국 정부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임상시험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NMPA는 글로벌 동시개발 품목과 중국 연구자가 주도하거나 공동 주도하는 임상 3상 다지역 시험을 신속심사 대상에 포함했다.
최근에는 임상시험 데이터 관리와 윤리심사, 품질관리 기준을 강화한 새로운 의약품 임상시험관리기준(GCP)을 마련했다. 임상시험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국 임상자료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인재 부족, 단순한 채용 문제 아니다
중국 제약업계가 겪는 인재 부족은 단순히 연구원을 더 채용하는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신약의 글로벌 상업화를 위해서는 국가별 규제제도와 임상관행을 이해하고, FDA·유럽의약품청(EMA)·PMDA 등과 개발 초기부터 협의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임상시험 이후에도 품질관리와 생산시설 실사, 약가·보험등재, 현지 유통과 마케팅 전략까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임상시험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이러한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짧다.
인도는 오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과 임상시험수탁산업을 통해 국제 경험을 갖춘 인력을 축적했고, 일본은 다국적 제약사와 글로벌 신약개발 경험을 가진 성숙한 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산업의 성장 속도가 인력 양성 속도를 앞지르면서 인재 확보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진출, 직접 상업화보다 기술수출에 무게
글로벌 인재 부족은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외 임상시험과 허가, 판매망 구축을 추진하기보다 글로벌 제약사에 후보물질을 이전하거나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당분간 더 선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과 글로벌 제약사 간 기술이전 계약의 잠재 규모는 2016년 3억 1800만 달러에서 2025년 약 1380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신약 후보물질의 기술적 가치는 크게 높아졌지만, 해외 개발과 상업화는 경험과 인프라를 갖춘 다국적 제약사에 맡기는 구조가 확대된 셈이다.
실제로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해외 파트너와의 협력이나 현지 조직 구축에 나서고 있다.
상하이 헨리우스바이오텍(Shanghai Henlius Biotech)은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에 자체 임상·규제 조직을 구축해 해외 임상시험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칸시노바이오도 해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내부 임상·허가 조직의 경험을 축적하는 중이다.
중국 신약의 다음 시험대는 '상업화 역량'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은 이제 신약 후보물질을 얼마나 많이 개발하느냐보다, 이를 얼마나 많은 국가에서 허가받고 실제 매출로 연결하느냐를 평가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국 정부의 신속한 임상시험 승인과 대규모 환자 모집 능력은 개발 속도를 높이는 강점이지만, 중국 내 임상자료만으로는 글로벌 규제당국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해외 다기관 임상과 규제대응 경험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임상시험의 시작과 허가자료 제출, 현지 출시 일정이 지연되고 해외 파트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재 부족이 중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 자체를 좌절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독자적인 해외 상업화보다는 기술수출과 공동개발 중심의 진출 구조를 장기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 신약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빠른 개발과 대규모 기술수출을 넘어, 세계 각국의 규제와 의료환경을 이해하는 인적·조직적 기반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