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동화약품이 인공지능(AI) 신약개발 벤처기업 심플렉스와 손잡고 기존 단일 표적 치료제의 내성과 부작용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면역질환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사가 공동 발굴한 신규 물질은 선천 면역 신호전달계의 핵심 키나아제를 이중으로 차단하는 기전으로 설계됐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겪은 한계를 극복할 게임 체인저로 기대를 모은다.
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동화약품은 심플렉스와 함께 선천성 면역 신호전달계의 핵심 매개체인 '인터루킨-1 수용체 연관 키나아제(Interleukin-1 Receptor-Associated Kinase, 이하 IRAK)' 패밀리 중 IRAK-4와 IRAK-1을 동시에 억제하는 카르복사마이드 유도체 화합물과 이를 포함하는 약학적 조성물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특허 등록 절차를 현재 진행 중이다.
인체의 선천 면역계는 세포 표면의 '인터루킨-1 수용체(IL-1R)'와 '톨 유사 수용체(TLR)'를 통해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 관련 분자 패턴(PAMP)이나 체내 손상 관련 분자 패턴(DAMP)을 인식하고 즉각적인 방어 반응을 작동시킨다.
이 같은 IL-1R/TLR 신호전달 과정에서 IRAK 패밀리는 어댑터 단백질인 MyD88과 상호작용을 해 거대한 나선형 복합체인 '미도솜(Myddosome)'을 형성하고 면역 반응을 개시한다.
미도솜 내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 것은 IRAK 패밀리 중 하나인 IRAK-4다. IRAK-4는 자가인산화를 거친 뒤 신호전달 경로의 하류에 위치한 다른 IRAK 패밀리인 IRAK-1을 직접 인산화한다. 이는 최종적으로 NF-κB와 MAPK 경로를 활성화해 대규모 염증 반응을 유도한다.
한계 드러난 IRAK-4 단일 저해제 … 글로벌 제약사도 '고배'
IL-1R/TLR 신호전달 경로가 과활성화되거나 통제력을 잃으면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폭발적으로 분비돼 전신 홍반성 루푸스,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아토피 피부염 등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 최근에는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급성골수성백혈병 등 악성 혈액암의 이상 증식 및 치료 내성 획득과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신호전달계의 최상단 스위치인 IRAK-4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1세대 단일 저해제 개발에 뛰어들지만, 실제 임상시험에서 확인한 약물의 효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가 개발하던 선택적 IRAK-4 저해제 '짐로비서팁(Zimlovisertib)'이 대표적인 사례다. 짐로비서팁은 우수한 전임상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류마티스 관절염 및 화농성 한선염 대상 임상 2상 단계에서 충분한 약효를 입증하지 못해 프로그램이 전면 중단됐다.
이 같은 실패의 원인은 IRAK-4의 활성을 차단하더라도 미도솜 복합체의 물리적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하류의 IRAK-1을 우회적으로 활성화하는 보상 기전과 적응 내성이 발현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표적단백질분해(TPD) 전문 바이오텍인 키메라 테라퓨틱스와 사노피도 IRAK-4 단백질 자체를 원천 분해하는 기전의 'KT-474'를 개발하다가 더 향상된 선택성과 안전성을 지닌 2세대 분해제 'KT-485'로 개발 파이프라인을 전환했다. 내성 극복 및 고분자 물질 특유의 생체 이용률 극대화 필요성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IRAK-1·4 동시 차단 전략 … AI로 차세대 후보물질 발굴
기존의 선택적 IRAK-4 저해제들과 달리 동화약품과 심플렉스가 발굴한 신규 카르복사마이드 유도체는 IRAK-4와 함께 내성 기전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는 IRAK-1의 ATP 결합 부위까지 틀어막는 이중 저해제로 설계됐다.
실제 양사가 발굴한 후보물질들은 생체 외(in vitro) 실험에서 우수한 IRAK-4 및 IRAK-1 효소 활성 억제 효과를 보였다. 특히 전신 염증 생쥐 모델을 이용한 생체 내(in vivo) 실험에서는 대표적인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TNF-α를 81.9%까지 억제하며 강력한 염증 감소 효과를 나타냈다.
이번 후보물질 도출은 동화약품과 AI 신약 개발 바이오텍 심플렉스의 긴밀한 오픈 이노베이션 결과물이다. 양사는 지난 2022년 3월 면역질환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심플렉스가 독자적인 AI 기술을 통해 유효 물질을 탐색 및 최적화하면 동화약품이 물질의 합성과 검증을 진행해 최종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후보물질 발굴에 쓰인 심플렉스의 AI 플랫폼 'CEEK-CURE'는 기존 딥러닝 모델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의사결정의 불투명성을 해소한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이다. 후보물질이 표적 단백질과 어떠한 물리화학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 시각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차별성을 지닌다.
글로벌 개발 추세도 '이중 저해' 전환 … IRAK 신약 경쟁 새 국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IRAK-1 및 IRAK-4 이중 저해제의 약리학적 이점과 임상적 우월성이 속속 입증되며 R&D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미국 리겔 파마슈티칼스(Rigel Pharmaceuticals)가 개발 중인 경구용 이중 저해 전구약물 'R289'는 재발 및 불응성 저위험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b상 시험에서 심각한 조혈계 독성 없이 우수한 수혈 독립성 개선 효능을 보였다.
미국 큐리스(Curis)도 IRAK-4와 FLT3 이중 저해제인 '에마부서팁(Emavusertib, CA-4948)'을 활용해 만성림프구성백혈병(CLL) 환자 대상의 2상 임상 시험을 개시하며 암세포의 다발적 생존 경로를 차단하는 우수한 항종양 성과를 지속해서 축적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추세에 맞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선천 면역 타깃 신약 개발 경쟁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대웅제약이 차세대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목표로 독자적인 IRAK-4 저해 물질에 대한 국제 특허(PCT)를 출원하며 파이프라인 개발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퓨쳐메디신은 IRAK-4와 세포의 생존, 증식 및 분화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PIM-1을 동시에 억제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FM503'의 비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빅파마들의 잇따른 임상 실패 이후 IRAK 저해제 시장은 더욱 정교한 기전 설계와 병용 요법의 시너지를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조차 고전했던 IRAK 타깃 시장에서 이중 저해 기전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동화약품이 난치성 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