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치료 효과는 확실하지만, 유독 미국 시장에만 갇혀있는 반쪽짜리 블록버스터가 있다.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다.
방사성이란 무겁고 불안정한 원소가 스스로 안정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방출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때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는 암세포의 유전자(DNA)를 타격해 파괴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방사선 요법은 항암 치료의 한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방사성 의약품은 방사선을 쬐는 방식이 아닌, 방사선을 주사제 형태로 몸속에 집어넣는 의약품이다. 이 가운데 RLT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표적을 찾아가는 리간드에 방사성 물질을 링커로 연결해 투여하는 방식의 항암제다. 주변 건강한 조직까지 무차별 손상시키던 기존 방사선 요법의 치명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오직 암세포만 골라 사멸시켜 부작용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같은 원리는 현재 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매우 유사하다. 타깃에 세포 사멸 무기를 매달아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구조적 유사성 덕분에, RLT 역시 ADC와 함께 차세대 항암제 시장을 이끌 핵심 기술로 주목을 받았다.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는 RLT와 '플루빅토'의 성공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의 '플루빅토(Pluvicto, 성분명: 루테튬 비피보타이드 테트라크세탄·lutetium vipivotide tetraxetan)'가 대표적이다. '플루빅토'는 전립선 특이 막 항원(PSMA) 양성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mCRPC) 성인 환자의 2차 치료제로 지난 2022년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취득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유럽 집행위원회(EC)의 허가까지 받았다.
이후 '플루빅토'는 해당 적응증의 확실한 표준 치료제로 자리 잡으며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랐다. 2025년 기준 연간 매출액만 19억 달러(한화 약 2조 8000억 원)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업계의 RLT 개발 열기는 ADC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파이프라인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개발 중인 ADC 후보물질은 600여 개에 육박하는 반면 RLT 후보물질은 100여 개 수준에 불과하다. 이중 절반은 전임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한부 물류망과 인프라 한계에 발목 잡힌 상용화
RLT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저조한 이유는 바로 RLT 특유의 기형적인 상용화 방식 때문이다.
ADC를 비롯한 일반적인 항체 기반 항암제는 성분을 동결 건조해 창고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전 세계로 배송하면 그만이다. 반면 RLT의 핵심인 방사성 동위원소는 제조 직후부터 약효가 떨어지는 반감기 타이머가 작동한다. 유통기한이 고작 5일 안팎에 불과해 제조부터 환자 투여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한부 물류망을 가동해야 한다.
여기에 병원 내 납 차폐 설비와 핵의학과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결국 약을 개발해도 운송에 제약이 많고 공급처도 제한적이다 보니 기업들이 선뜻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ADC와 RLT 비교표약가 규제 낮은 미국 시장에 편중된 기형적 구조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는 역설적으로 약가 규제가 느슨한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플루빅토'의 미국 내 1회 투약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7000만 원 선에 달한다. 업체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물류 비용을 쏟아붓더라도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압도적인 마진을 보장받는 유일한 무대인 셈이다.
실제로 '플루빅토' 매출의 90%가 미국 시장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RLT가 보편적인 의약품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미국의 특수한 생태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RLT가 미국 시장의 문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ADC의 대항마로 올라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