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기존 항체약물 접합체(ADC)의 세포독성 항암제 대신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를 탑재한 '분해제 항체 접합체(Degrader Antibody Conjugate, DAC)'가 차세대 항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항체는 외부 항원의 자극에 의해 면역계에서 생성되는 물질로,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표적 특이성이 매우 높다. 항체 치료제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기존 저분자 화합물로 공략하기 어려웠던 질병 타깃을 정밀 타격하며 신약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하지만 항체의 단순 결합 및 억제 방식은 암처럼 병리적 특성이 복잡한 질환에서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혁신 기술이 바로 ADC다. ADC는 항체와 세포독성 항암제를 화학적 링커(Linker)로 연결해, 정상 세포는 보호하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킨다. 이를 통해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의 전신 부작용을 낮추고 치료 효능을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존 ADC의 독성과 표적 한계 극복
그런데 기대를 걸었던 ADC 역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세포독성 항암제를 유도미사일처럼 국소 전달하더라도, 약물 자체의 강력한 독성 기전으로 인해 주변 건강한 조직에 영향을 주는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확장성이다. 암을 유발하는 병리 단백질 중 80% 이상은 약물이 결합할 만한 활성 부위가 없는 평평한 구조를 지녀, 기존 항체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공격 불가능(Undruggable) 타깃으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현재 상용화된 ADC의 표적 단백질이 HER2, TROP2 등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이는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 두 가지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항체에 세포독성 항암제가 아닌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를 결합한 DAC를 고안해 냈다.
원인 단백질 자체를 완전 파괴하는 촉매 기전
DAC는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필수적인 타깃 단백질을 세포 내 자체 폐기 시스템인 프로테아좀(Proteasome)으로 이송해 원천 분해하는 기술이다.
특히 DAC의 유효 물질인 분해제는 타깃 표면과의 일시적 결합만으로도 이를 붙잡을 수 있어, 과거 ADC로는 공략할 수 없었던 평평한 구조의 타깃까지 모두 무력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DAC는 항체의 우수한 표적 선택성 덕분에 암세포 내부에서만 특이적으로 작동하므로 전신 독성 우려가 현저히 낮다. 표적 단백질의 기능을 단순히 일시 억제하는 기존 치료제들과 달리, 원인 단백질 자체를 완전 파괴하는 촉매 기전을 지녀 약효 지속성이 높고 암세포의 돌연변이로 인한 약물 내성 유발 가능성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국내 벤처 기술력 입증 … 'ORM-6151' 임상 결과 주목
본지 취재 결과,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개발 단계에 있는 '분해제 항체 접합체' 후보물질은 총 44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파이프라인 대부분은 아직 비임상(동물실험) 단계에서 효능 검증을 진행 중인 초기 단계이나, 유일하게 미국 BMS의 'ORM-6151'은 현재 1상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이 약물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세포 표면에 과발현되는 CD33 항체를 표적하는 동시에, 세포 내 GSPT1 단백질 분해제를 탑재한 혁신 신약이다. 암세포 표면의 CD33 항원에 결합해 세포 내로 침투한 뒤,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GSPT1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분해하도록 설계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ORM-6151'이 당초 우리나라 바이오 벤처 기업인 오룸(Orum)이 개발하던 DAC 후보물질이었다는 것이다. BMS는 지난 2023년 11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ORM-6151'의 전 세계 독점 권리를 확보했으며, 이듬해인 2024년 9월 1상 임상시험에 본격 착수했다.
해당 1상 임상시험은 오는 2030년 최종 종료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차세대 항암제 기술로서 새로운 DAC의 유효성과 상용화 가능성은 2030년 이후 판가름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