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이미지 생성][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석유 패권에 의지해온 중동 국가들의 번영이 지정학적 파고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포스트 오일' 시대를 향한 최후의 보루로 바이오테크를 낙점하고 국가적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사우디의 파격적인 변신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최근 사우디의 국가 바이오 기술 전략인 '비전 2040' 정책을 집중 조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네이처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바이오 허브로 도약하려는 사우디의 야심 찬 청사진을 상세히 분석했다.
이 전략의 로드맵은 사우디가 국부펀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2030년까지 서남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고, 2040년에는 전 세계적인 바이오 허브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책의 핵심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비석유 부분을 국산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노출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해결하고, 사우디를 단순한 의약품 소비국에서 전 세계 바이오 산업의 능동적인 참여자로 탈바꿈시키려는 의지가 반영됐다.
사우디의 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백신 분야다. 사우디는 백신의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 수출 역량을 갖추기 위해 개발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엔드 투 엔드'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둘째는 바이오 제조 및 현지화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의약품 제조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유전학이다. 사우디는 오랜 기간 특정 부족 중심의 사회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로 인해 유전적 변이가 단순하고 일관성이 높아,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속도가 서구권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사우디 정부는 이러한 인구의 독특한 유전적 프로필과 특정 질환의 높은 유병률을 연구해 맞춤형 정밀 의료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넷째는 농업 기술 최적화다. 농업 바이오 기술을 통해 식량 안보와 환경 적응력을 높이는 연구가 포함된다.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인 척박한 건조 기후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작물 최적화 기술을 고도화고 식수 및 식량의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이러한 투자가 일시적 현상을 넘어 선순환 생태계로 안착할 수 있느냐다. 바이오 산업은 자본 투입보다 고도의 전문 인력이 핵심인 지식 집약적 영역이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수십 년간 축적된 두터운 연구 인력 덕분이다.
반면 사우디는 현재 고숙련 연구원 및 전문 인력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비전 2040을 실현하려면 해외 우수 인력 유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싱가포르와 같은 개방적인 기업형 도시국가 모델을 성공적으로 이식해 자생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바이오 의약품 산업은 민간 부문의 활발한 연구개발 투자가 선행되어야 성숙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전제 군주국인 사우디는 이 부분이 취약하다. 모든 정책은 여전히 정부의 하향식 지시에 의존하고 있으며 민간 부문의 초기 단계 바이오 투자 의지는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결국 사우디의 바이오 산업 육성 정책은 정부 주도의 정책적 동력이 민간 부문의 자생적 생태계 구축에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성패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