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 암젠(Amgen)의 다발혈관염 치료제 '타브네오스(Tavneos, 성분명: 아바코판·avacopan)'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이례적인 직권 철회 절차 착수로 시장 퇴출 위기에 놓이게 됐다. 임상 데이터 의도적 조작 의혹부터 중증 간손상 사망 사례까지 약물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결국 퇴출이라는 초강경 대응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지난 23일(현지 시간), '타브네오스'의 허가 취소를 위한 공식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약을 거두어들이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FDA가 데이터 조작과 치명적 결함을 근거로 직권 취소를 강행하는 이례적인 조치다.
FDA, 유효성 조작 및 은폐 정황 포착
이번 철회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허가 당시 제출된 3상 임상시험(시험명: ADVOCATE) 데이터의 의도적 조작 의혹이다.
원래 '타브네오스'는 위약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데이터에서 특정 환자 9명의 수치를 재평가했다. 그 결과, 치료 실패로 분류됐어야 할 환자들이 치료 성공으로 뒤바뀌면서 '타브네오스'의 유효성이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허가의 문턱을 넘었다는 것이 FDA의 판단이다.
FDA 조사 결과, 암젠은 누가 진짜 약을 먹었는지 몰랐던 맹검(Blinding) 조건하에서 유의미한 통계적 결과 도출에 실패하자, 시험 정보를 노출하는 공개(Unblinded) 방식으로 전환하고 특정 피험자 9명의 데이터를 선별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낸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업 차원의 조직적 은폐 정황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암젠과 자회사 케모센트릭스(ChemoCentryx)는 원본 분석 결과를 FDA에 고의로 누락했으며, 심사 과정에서도 허위 진술을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FDA는 암젠 측에 청문회(NOOH) 기회를 부여하며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다. 만약 암젠이 여기서도 데이터 조작 혐의를 부인하며 끝까지 버틸 경우, 공청회를 거쳐 FDA 국장이 직접 승인을 취소하는 강제 철회가 집행될 예정이다.
안전성 결함과 잇따른 사망 사례 보고
FDA가 이처럼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약물 자체의 안전성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FDA는 최근 '타브네오스'와 관련 중증 약물유발 간손상(DILI, Drug-Induced Liver Injury) 및 일부 사망 사례를 경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FDA는 '타브네오스'에 대한 안전성·유익성 재평가 과정에서 회사측에 자진 철회를 요청했으나, 암젠은 이를 거부했다.
FDA 안전성 서한에 따르면 '타브네오스'는 2021년 승인 당시부터 2024년 10월까지 약물과 인과 관계가 인정되는 DILI 이상 사례가 76건이나 보고됐다. 이러한 이상 사례는 대부분 중대한 것으로, 입원 54건과 사망 8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브네오스'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유럽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타브네오스'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 올해 초 약물 재평가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환자 방패 삼은 인질극, 결국 시장 퇴출로 막 내릴 듯
통상적으로 FDA 등 규제기관이 유효성이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할 경우,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행정적 리스크를 고려해 자발적 허가 철회를 선택하는 것이 관행이다. 규제 기관과 정면으로 충돌해 얻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젠은 달랐다. '타브네오스'가 가진 독점적 지위를 등에 업고 배짱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타브네오스'가 타깃으로 하는 다발혈관염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혈관 벽을 공격하고, 이로 인해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 난치성 자가면역 질환이다. 현재로서는 스테로이드 제제외에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형국이다.
이를 빌미로 암젠 측은 "'타브네오스'가 퇴출되면 사투를 벌이는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대안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실상 환자의 생존권을 볼모로 FDA를 압박해 온 셈이다.
이러한 행보는 과거 조산 예방제인 스위스 코비스(Covis)의 '마케나(Makena, 성분명: 하이드록시프로게스테론 카프로에이트·hydroxyprogesterone caproate)' 사례와 궤를 같이한다. 코비스 역시 '마케나'가 유일한 조산 방지 약물이라는 특수성을 방패 삼아, 유효성 논란 속에서도 수년간 시장에서 버티는 뭉개기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굳이 따지자면, 코비스 측은 '마케나'의 유효성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치료 대안의 부재라는 윤리적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암젠은 한 발 더 나아가 조직적인 '타브네오스'의 임상 데이터 은폐와 조작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이 차이점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대안 없는 희귀질환 치료제라는 독점적 지위가 기업의 이윤 추구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칼날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환자의 생존권을 방패 삼아 데이터를 조작하고 규제 기관을 기만한 암젠의 행보는, 제약 바이오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타브네오스'는 국내에서도 허가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식약처는 지난 2023년 9월 21일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다발혈관염 치료제로 '타브네오스'를 품목허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