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약품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제일약품이 기존 '포스포디에스터라제-4(PDE-4)' 억제제의 고질적 한계인 위장관계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PDE-4B 저해제 기반 차세대 특발성 폐섬유화증(IPF) 치료제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최근 세계 최초의 PDE-4B 저해제를 선보이며 관련 시장의 문을 연 가운데, 제일약품이 그 뒤를 잇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신약 도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2일 헬스코리아뉴스 취재에 따르면, 제일약품은 디하이드로티오피라노피리미딘 유도체를 기반으로 하는 선택적 PDE-4B 저해제 기술에 대한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PDE-4는 주로 면역세포, 상피세포 및 뇌세포에 존재하며 염증반응과 상피조직의 완전성을 조절하는 세포 내 비수용체 효소로 A부터 D까지 4개의 아형이 존재하는데, 회사는 그중에서도 PDE-4B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저분자 화합물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PDE-4 억제제는 항염증 및 항섬유화 효과가 탁월해 '꿈의 신약' 후보군으로 꼽혀왔으나, 구토와 오심, 설사 등 심각한 위장관계 부작용이 신약 개발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기존 PDE-4 억제제들이 4가지 아형 중 뇌 등에 분포하는 PDE-4D까지 함께 억제하면서 발생하는 '온-타겟(On-target)' 부작용이다.
제일약품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 PDE-4 아형 중 염증과 섬유화를 조절하는 PDE-4B만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화합물을 확보했다.
최근 공개된 출원명세서에 따르면, 회사는 149개 이상의 방대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PDE-4 억제 효능을 분석했는데, PDE-4D 대비 압도적으로 적은 용량으로 PDE-4B를 억제하는 다수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PDE-4D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PDE-4B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화합물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일약품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베링거인겔하임의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 신약 '자스케이드'(Jascayd, 성분명: 네란도밀라스트)가 PDE-4B 저해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하며 관련 시장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스케이드 역시 임상 3상 과정에서 약 31~41%의 환자가 설사를 경험하는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적지 않아 완벽한 선택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제일약품이 방대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높은 선택성은 보이는 PDE-4B 저해제 후보물질들을 발굴해, 자스케이드의 부작용을 개선한 신약을 도출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커진다.
제일약품은 자사가 발굴한 PDE-4B 저해제의 쓰임새를 특발성 폐섬유증 등 폐 질환은 물론, 아토피 피부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 염증 질환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PDE-4B 선택적 저해제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라며 "제일약품이 독자적인 화학 구조를 통해 경쟁사 대비 부작용 발생률을 유의미하게 낮춘 데이터를 제시한다면 글로벌 기술수출 시장에서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폐 조직이 만성적으로 굳어 호흡 부전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32억 9000만 달러(약 4조 7593억 원)을 기록했고, 2034년에는 약 60억 7000만 달러(약 8조 7809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특발성 폐섬유화증 치료에 쓰이는 피르페니돈이나 닌테다닙 성분 제제는 질환 진행을 늦출 뿐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워 내약성이 우수한 신약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