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제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기존의 단독요법 중심 치료 체계가 약화되고 서로 다른 기전을 결합한 병용요법이 새로운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항암 치료제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기존의 단독요법 중심 치료 체계가 약화되고 서로 다른 기전을 결합한 병용요법이 새로운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암이 상당 부분 진행된 3차 또는 4차 치료 단계에서 후발 옵션으로 사용되던 약물이, 최근에는 병용요법 전략을 통해 단숨에 1차·2차 치료 초기 단계(front-line)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임상 치료 표준(SOC)과 시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 이중항체·ADC(항체-약물접합체) 등 플랫폼 기술이 성숙단계에서 접어들면서 병용요법은 폐암, 유방암, 방광암, 다발성 골수종 등 주요 암종에서 주요 치료 표준으로 부상했거나 부상을 준비하고 있다.
병용요법 승인에 따라 빨라야 3차 치료에 쓰이던 약물이 초기 라인으로 이동하는 배경에는 암의 복합적인 생물학적 특성이 자리한다. 암세포는 단일 기전이 아닌 종양 성장 신호, 혈관 신생, 면역회피 등이 동시에 활성화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기전을 병합하여 내성 발생을 지연시키고 전체 생존기간(OS)과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연장하려는 전략이 2020년대 들어 시장의 주류로 부상했다. <편집자 주>
폐암
렉라자, 리브라반트 병용요법으로 1차 치료 시장 안착 ... 국산 항암신약 중 최초
유한양행의 '렉라자'+얀센의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국산 항암 신약 중 최초로 글로벌 1차 치료제 시장 진입에 성공하며 치료 라인을 최전방으로 이동시켰다. 2021년 1월 국내에서 2차 치료제로 첫 허가를 받은 후, 약 2년 만인 2023년 6월 국내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한 데 이어 글로벌 표준 치료(SOC) 진입을 현실화했다.
이후 존슨앤존슨(얀센)의 이중항체 '리브라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의 병용요법을 통해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다. 2023년 말 글로벌 임상 3상인 MARIPOSA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신청을 완료했으며, 2024년 8월 20일 FDA로부터 병용요법 1차 치료제 최종 승인을 획득했다. 국내 출시 후 약 3년 반만에 글로벌 1차 시장에 진입한 성과다. '리브라반트'를 만든 존슨앤존슨은 해당 병용요법이 1차 시장에 안착할 경우, 연간 50억 달러(약 6조 7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방암
엔허투, 퍼제타 병용요법으로 1차 치료 시장 입성 ... '게임 체인저' 입증
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로슈의 '퍼제타'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는 지난해 12월 중순, 유방암 1차 치료 시장 진입에 성공하며 치료 라인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FDA는 구랍 15일, '엔허투'와 로슈의 표적항암제 '퍼제타(성분명 퍼투주맙)' 병용요법을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의 1차 표준 치료제로 최종 승인했다.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40.7개월까지 연장한 3상임상(DESTINY-Breast09) 결과가 기존 표준요법을 대체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엔허투'는 2019년 12월 전이성 유방암 3차 치료제로 FDA 첫 승인을 획득한 이후 단계적으로 적응증을 확대해 왔다. 2021년 1월 위암, 2022년 8월 폐암 분야 최초의 HER2 표적제, 2024년 4월 모든 전이성 고형암 치료 승인을 거쳐 약 7년 만에 1차 치료제 지위를 확보했다. 시장에서는 1차 치료 라인 확대로 연매출도 최대 100억 달러 이상 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방광암
파드셉, 키트루다 병용요법으로 기존 화학요법 대체하며 시장 재편
화이자의 '파드셉'+MSD의 '키트루다'화이자·아스텔라스의 ADC 항암제인 '파드셉(성분명 엔포투맙베도틴)'은 불과 4년 만에 방광암 3차 치료제에서 1차 표준 치료제로 급부상했다. 비결은 압도적인 데이터에 있다.
'파드셉'은 방광암 분야에서 30년 넘게 공고했던 기존 백금 기반 화학요법의 벽을 깨고, 글로벌 임상 3상에서 환자 생존 기간을 16개월에서 31.5개월로 2배 가까이 늘리는 혁신적인 치료 성적을 증명했다. 2021년 2차 치료 진출에 이어, 2023년 12월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의 병용 요법을 통해 모든 전이성 요로상피암 환자 대상 1차 치료제로 FDA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으면서다. 지난 2019년 12월 3차 치료제로 가속 승인을 받은 지 4년만의 성과다.
'파드셉'은 1차 치료제 승인 이후 폭발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다. 화이자의 실적 자료에 따르면, '파드셉'은 2024년 15억 88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단숨에 '블록버스터'로 직행했다. 대상 환자군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파드셉'의 시장 점유율은 당분간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관측된다.
다발성 골수종
텍베일리, 다잘렉스 병용요법으로 초기 치료 라인 진입 가속화
존슨앤존슨의 '텍베일리'+'다잘렉스'존슨앤존슨은 최근 다발성골수종 후기 치료제로 사용되던 자사의 이중항체 '텍베일리(성분명 테클리스타맙)'와 단일클론항체(mAb) '다잘렉스(성분명 다라투무맙)' 병용요법을 1·2차 초기 치료 단계로 진입시키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FDA와 유럽의약청(EMA)에 '텍베일리'와 '다잘렉스' 병용요법에 대한 적응증 확대 승인을 잇달아 신청하며 글로벌 표준 치료제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보의 근거가 된 MajesTEC-3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해당 병용요법은 기존 표준 치료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83% 낮추는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후기 단계에 머물던 이중항체 치료제를 초기 단계로 끌어올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존슨앤존슨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번 승인 신청이 통과될 경우, 재발이 빈번한 다발성골수종 치료 환경은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기전의 약물을 투입하는 병용요법 전략이 더욱 공고해지고 존슨앤존슨의 실적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 후기 치료 라인에서 초기 치료 라인으로 진입할 경우 대상 환자 수는 3~5배 증가하며, 처방 기간은 평균 2배 이상 연장되는 특성을 보인다. 제약사들이 자사 약물의 초기 치료 라인 진입에 안간힘을 쓰는 이다. 초기 치료 접근성 확대, 꿩 먹고 알 먹는 전략
제약사들이 자사 약물의 초기 치료 라인 진입에 신경쓰는 이유는 물론 기대 수익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후기 라인에서 초기 라인으로 진입할 경우 대상 환자 수는 3~5배 증가하며, 처방 기간은 평균 2배 이상 연장되는 특성을 보인다. 특히 초기 치료 옵션을 확보하면 해당 제약사는 매출 및 영업이익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령화에 따른 암 환자 수 증가세와 맞물려 제약바이오업계의 초기 치료라인 확보 경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고가 신약 병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Financial Toxicity) 문제는 향후 보건의료 체계 및 급여 정책 수립에 있어 주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