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 도구로 제작한 이미지. [사진=제미나이][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국내 제약업계에 연구개발(R&D)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는 바람이 거세다. 모기업의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신약 개발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하는 'R&D 정예부대'를 꾸리는 것이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종근당이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 아첼라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투입되는 신약 개발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외부 투자 유치를 통해 R&D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경쟁사들이 각기 다른 생존 전략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후발주자인 아첼라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종근당 '아첼라', 1조7천억 '잭팟' 업고 출격 … NRDO 모델로 승부
종근당은 최근 신약개발 전문회사 아첼라를 자회사로 신설하고 창립식을 개최했다. 아첼라는 연구(Research) 단계를 제외하고 임상 개발(Development)에만 집중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모델을 채택했다. 모기업인 종근당이 발굴한 유망 신약 후보 물질을 넘겨받아 후기 개발, 상업화, 기술이전 등을 전담하는 구조다. 향후 새로운 파이프라인 발굴과 임상시험 진행, 기술수출과 상용화 등 신약 개발 업무를 추진한다는 목표다.
아첼라의 출범 배경에는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체결한 1조 7300억 원 규모의 HDAC6 저해제 'CKD-510' 기술수출 성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잭팟'을 통해 R&D 역량을 입증한 종근당은 CKD-510의 뒤를 이을 차세대 핵심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문 개발 조직을 꾸렸다.
회사는 우선 세 개의 파이프라인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CETP 저해제 'CKD-508',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작용제 'CKD-514',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HDAC6) 저해제 'CKD-513' 등이다.
아첼라의 첫 수장은 종근당 연구소 출신 이주희 박사가 맡았다. 이주희 아첼라 대표이사는 "종근당의 핵심 파이프라인에 집중해 신약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대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각양각색 성공 방정식 … 먼저 길 닦은 선발주자들
아첼라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R&D 자회사들은 이미 다양한 성공 모델을 제시하며 길을 닦아 놓았다.
제일약품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자체 상업화 모델의 길을 개척했다.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자큐보'를 직접 개발해 상업화에 성공,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186억 원, 영업이익 27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코스닥 상장까지 마치며 독자 생존의 발판을 완벽하게 마련했다.
일동제약은 아이디언스와 유노비아라는 두 자회사를 통해 이원화 전략을 구사 중이다. 아이디언스는 PARP 저해 항암제 '베나다파립'을 유라시아 및 걸프 지역에 약 7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유노비아는 P-CAB 후보물질을 국내 소화기 강자인 대원제약에 기술이전해 개발 리스크는 분담하고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는 실리적인 전략을 택했다.
자회사 이뮨온시아는 최초의 국산 면역항암제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PD-L1 타깃 항체 신약 'IMC-001'은 최근 2상 임상시험에서 객관적반응률(ORR) 79%, 완전관해(CR) 58%라는 인상적인 결과를 보이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뮨온시아는 IMC-001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아 상용화를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항암제 명가 보령이 설립한 리큐온은 세계 최초(First-in-Class) 기전의 림프종 치료제 'BR101801' 1상 임상시험에서 완전관해를 확인했으며,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 메타비아를 통해 GLP-1 계열 비만치료제 'DA-1726'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 먹거리 찾아라" … R&D 자회사, 왜 대세 됐나
국내 제약사들이 앞다퉈 R&D 자회사를 설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인 기존 사업과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고위험·고수익의 신약 개발 사업을 분리하는 것이다.
독립 법인으로 출범한 R&D 자회사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외부 투자 유치에도 훨씬 유리하다. 모기업의 여러 사업부에 묻혀 저평가됐던 유망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효과도 있다.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는 유망 파이프라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모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해 R&D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CKD-510의 성공이 만들어 낸 종근당 후광 효과는 아첼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다만, 모기업의 성공으로 높아진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이관받은 파이프라인들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