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종근당이 자사의 블록버스터 고혈압 복합제 '텔미누보'의 제네릭 출시를 준비 중인 제약사들을 상대로 특허 심판에 나섰다. 통상 후발 제약사들이 특허를 회피하기 위해 원개발사를 상대로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종근당은 선제적으로 특허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심판을 청구하며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구축했다.
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종근당은 최근 지엘팜텍, 경보제약, 바이넥스, 대웅바이오 등 4개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각각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제기했다.
이들 제약사가 허가받은 텔미누보 제네릭이 자사의 '텔미사르탄 또는 그의 약제학적으로 허용가능한 염을 포함하는 인습성 및 용출률이 향상된 제제(이하 텔미누보 제제 특허)' 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서다.
텔미누보는 안지오텐신 II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의 텔미사르탄과 칼슘채널차단제(CCB) 계열의 에스암로디핀을 결합한 복합제다. 지난 2013년 국내 허가를 획득한 이후 연간 처방액 500억~600억 원대를 유지해 온 종근당의 대표적인 주력 품목으로 꼽힌다.
텔미누보는 주성분인 텔미사르탄의 강한 인습성과 에스암로디핀과의 배합 안정성 문제로 인해 제제화 난도가 매우 높은 약물이다. 종근당은 이들 성분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이층정 설계와 규산칼슘 등 특정 첨가제 배합 기술을 적용해 제제 특허를 등록하고, 오는 2037년까지 독점권을 구축했다.
과거 일부 제약사가 이러한 텔미누보 제제 특허 회피를 시도해 제네릭 허가를 받은 바 있지만, 까다로운 제제 기술과 품질 균일성 확보 문제 등으로 실제 상업적 출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엘팜텍이 독자 제제 연구를 거쳐 지난 7월 텔미누보 제네릭인 '텔미엘탄정'의 품목허가를 취득하면서 시장 진입이 가시화됐다. 지엘팜텍은 위탁개발생산(CDMO) 방식을 통해 바이넥스의 '트윈스핀에스정', 대웅바이오의 '트윈베타에스정', 경보제약의 '텔미로핀에스정' 제조까지 맡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 정보에 따르면 이들 4개 사의 제품은 모두 동일한 처방과 첨가제 조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공동생동 1+3 규제'에 규정된 최대 제한선인 총 4개 사(개발사 1곳, 위탁사 3곳)의 제네릭 라인업이 최종 확정됐다.
지엘팜텍과 위탁사들은 이르면 이달 안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절차를 마치고 제품 출시를 계획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종근당은 제네릭사들의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특허권자로서 직접 침해 여부를 따지는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번 심판에서 눈에 띄는 점은 피청구인에 종근당그룹 계열사인 경보제약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경보제약은 텔미누보를 생산하는 종근당의 생산 시설이 아닌 지엘팜텍에 생산을 위탁해 제네릭 허가를 받았고, 종근당은 그러한 경보제약을 심판 대상으로 지목했다.
종근당이 계열사인 경보제약까지 피청구인으로 지정한 것은 법적 리스크를 고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피청구 대상 간의 차별적 배제는 상대방 측에 권리남용 항변의 단초를 제공해 특허권 행사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종근당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경보제약을 포함한) 종근당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청구는 주관사(지엘팜텍)의 비침해 주장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의 일환"이라며 그룹사 간 전략적 충돌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경보제약의 위탁 참여 자체도 제네릭 진입을 제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경보제약이 '공동생동 1+3 규제'의 마지막 위탁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른 대형 제약사가 지엘팜텍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종근당은 심판 승패와 관계없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종근당이 심판에서 이기면 지엘팜텍을 포함한 후발 제약사의 제네릭 시장 진입이 저지돼 오리지널 독점이 유지된다. 반대로 심판에서 지더라도 시장에 진입한 계열사 경보제약이 제네릭 처방을 흡수하면서 그룹 차원의 매출 손실을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다.
결국 종근당은 피청구 대상에 경보제약을 포함해 특허권 행사의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그룹의 실익을 챙기는 치밀한 '헤징(Hedging, 위험 회피)'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단일 품목의 연간 원외처방액이 600억 원대에 달하는 대형 품목인 만큼, 이번 특허 심판의 결과는 텔미누보의 장기 독점 수성과 후발 제네릭 군의 조기 시장 안착 여부를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원개발사인 종근당이 선제적으로 던진 적극적 심판 카드가 텔미누보의 철옹성을 지켜내는 묘수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