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거나 특정 후보물질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초기 임상 단계 후보물질까지 쓸어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보물질을 도입하는 것이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자사 약물의 특허만료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MSD가 3년 전 108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Prometheus Biosciences)가 대표적이다. 당시 핵심 자산이었던 면역질환 치료제 '툴리소키바트(tulisokibart, MK-7240)'는 최근 염증성 장질환에 이어 피부질환에서도 효과를 입증하며 개발 영역을 넓히고 있다.
MSD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임상 2b상 결과에 따르면 중등도~중증 화농성 한선염 환자에게 '툴리소키바트'를 16주 투여한 결과, 고용량군의 72%, 중간용량군의 64%가 HiSCR50에 도달했다. 위약군은 35%였다.
HiSCR50은 농양과 염증성 결절 수가 치료 전보다 50% 이상 감소하면서 농양이나 배액 누공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증상을 75% 이상 줄인 HiSCR75 도달률도 고용량군 41%, 중간용량군 40%로 위약군 15%보다 높았다.
이번 연구는 피부질환에서 항-TL1A 단클론항체의 효과를 확인한 첫 긍정적 2상 결과다. MSD는 이 결과를 토대로 화농성 한선염 3상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툴리소키바트'는 종양괴사인자 유사 사이토카인 1A(TL1A)를 차단하는 단클론항체다. TL1A 신호를 억제해 면역반응과 섬유화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MSD가 2023년 프로메테우스를 인수할 당시 가장 앞선 개발 영역은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이었다. MSD는 주당 200달러, 총 108억 달러를 지급해 회사를 인수하면서 '툴리소키바트'와 프로메테우스가 구축한 정밀의학 연구 역량, 후속 파이프라인을 함께 확보했다.
인수 3년 뒤 '툴리소키바트'의 개발 범위는 크게 넓어졌다.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은 임상 3상에 들어갔고, 질환의 개발 영역은 류마티스관절염과 건선성관절염, 방사선학적 축성 척추관절염, 화농성 한선염으로 넓어졌다.
궤양성 대장염은 올해 임상 3상 ATLAS-UC 유도요법 연구에서 1차 및 주요 2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MSD에 따르면 항-TL1A 계열 치료제가 임상 3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입한 후보물질이 꼭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전신경화증 연관 간질성폐질환(SSc-ILD)은 임상 2상에서 1차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MSD는 이 적응증의 개발을 중단했다. 현재 개발 프로그램은 6개 적응증에 집중돼 있다.
미국 뉴저지주 라웨이에 위치한 MSD(미국 머크·Merck) 본사. [사진=MSD]로슈도 TL1A 표적 약물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베팅했다. 로슈는 2023년 로이반트와 화이자가 공동 설립한 텔라반트(Telavant)를 총 71억 달러에 인수했다. 계약에는 1억 5000만 달러의 단기 마일스톤도 포함됐다.
그 대가로 로슈는 텔레반트의 핵심 자산인 TL1A 항체 'RVT-3101'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개발·제조·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당시 'RVT-3101'은 궤양성 대장염 임상 2b상을 마치고 3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로슈는 염증과 섬유화를 동시에 겨냥하는 기전을 토대로 염증성 장질환 외 여러 질환으로 개발 범위를 확대할 계획도 제시했다. 차세대 p40/TL1A 이중특이항체의 글로벌 공동개발 옵션도 계약에 넣었다.
애브비는 신경·정신질환 분야에 거액을 투자했다. 2023년 세레벨 테라퓨틱스(Cerevel Therapeutics)를 87억 달러에 인수해 조현병과 파킨슨병 등을 대상으로 개발하던 임상·전임상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당시 파이프라인에 포함돼 있던 파킨슨병 후보물질 '타바파돈(tavapadon)'은 올해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주브모(Juvmo)'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애브비가 세레벨 인수를 결정한 지 약 3년 만에 임상 단계 자산 하나가 허가 의약품으로 전환된 것이다.
특허 만료는 가장 큰 공포
특허절벽은 빅파마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는 2020년부터 2029년까지 10년 동안 독점권 상실에 노출되는 글로벌 브랜드 의약품의 매출은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빅파마들은 이 거대한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특허 만료 수년 전부터 차세대 신약 후보 확보에 나선다. 자체 연구개발과 함께 바이오기업이 발굴한 유망 후보물질을 사들이고, 필요하면 회사 자체를 인수한다. 임상 초기 단계부터 경쟁이 붙는 이유다.
MSD의 상황은 빅파마들의 조급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MSD의 전체 매출은 650억 달러였고, 이 가운데 '키트루다(Keytruda)'와 피하주사제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 매출은 316억 8000만 달러에 달했다.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특정 품목에서 나오는 셈이다.
MSD는 미국에서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2028~2029년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부에서 후보물질을 도입한 빅파마들은 하나의 적응증에 만족하지 않는다. 자체 연구개발력을 총 동원하고 원개발사와의 협력 등을 통해 새로운 적응증 발굴에 나선다. 후속 파이프라인을 통해 더 강력한 성장동력을 창출하려는 전략이다.
빅파마의 기업 인수와 기술도입은 특허 만료 이후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신약후보물질 확보를 위한 기업 간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