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세계 최초의 필름형 아나필락시스 응급치료제를 노리는 '아나필름'(Anaphylm)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한때 FDA가 자문위원회 심의조차 열지 않기로 하면서 허가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예상 밖의 복병은 약효가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환자가 약을 제대로 꺼내 혀 밑에 넣을 수 없다는 '사용성 문제'였다.
미국 아퀘스티브 테라퓨틱스(Aquestive Therapeutics)는 17일(현지 시간) 제1형 알레르기 반응과 아나필락시스 치료를 위한 설하필름 '아나필름'(Anaphylm, 디부테피네프린·dibutepinephrine)의 신약허가신청(NDA)을 FDA에 다시 제출했다고 밝혔다. FDA는 재신청 자료를 검토한 뒤 심사 유형과 심사기한을 결정할 예정이다.
아나필름은 에피네프린의 전구약물인 디부테피네프린을 함유한 설하필름으로, 주사기나 자동주입기 없이 혀 밑에 놓아 투여하도록 개발된 응급치료제다. 승인되면 아나필락시스 등 중증 알레르기 반응에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비침습적 필름형 에피네프린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해 9월 FDA가 아나필름의 허가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하면서 2026년 1월 허가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그러나 예상과 달리 FDA는 올해 1월 30일 아나필름을 승인하지 않고 보완요구서한(CRL)을 발송했다. 문제가 된 것은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약효나 제조·품질 문제가 아니었다. 환자가 실제 응급상황에서 약을 얼마나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아퀘스티브의 약물전달 기술 '팜필름(PharmFilm)'. 우표 크기의 작은 필름을 입안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물이나 음료 없이도 유효성분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주사나 알약 없이 약물을 혈류로 전달할 수 있으며, 필름 포장은 방수성과 내구성을 갖춰 휴대가 편리하다. [사진=아퀘스티브 테라퓨틱스]포장 열고 혀 밑에 넣는 과정서 문제
FDA는 기존 사용성 검증시험에서 일부 참가자가 포장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필름을 잘못된 위치에 놓은 사례를 문제 삼았다. 이런 사용 오류가 아나필락시스처럼 신속한 약물 투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중대한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퀘스티브가 이후 공개한 구체적인 시험 결과를 보면 기존 시험 참가자 166명 가운데 26명이 포장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20명은 필름을 입안의 잘못된 위치에 놓았다. 이 밖에 포장을 여는 과정에서 필름이 찢어지거나 필름을 씹고, 투여한 뒤 다시 꺼내는 사례도 있었다.
FDA는 회사에 포장과 투여방법을 개선한 뒤 새로운 사용성 검증시험을 실시하도록 요구했다. 변경된 포장과 사용설명서가 약물 흡수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할 수 있도록 추가 약동학(PK) 시험도 요구했다.
반면 기존 NDA에 포함됐던 자동주입기와의 비교자료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의약품의 화학·제조·품질관리(CMC)와 관련한 결함도 지적하지 않았다. 사실상 허가를 가로막은 핵심 과제가 '약 자체'보다 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었던 셈이다.
포장 뜯는 데 17초→3초
아퀘스티브는 FDA의 지적을 받아들여 포장을 다시 설계했다. 필름이 들어 있는 파우치를 쉽게 열 수 있도록 개봉 방식을 바꾸고 사용설명서와 파우치·상자 표시도 수정했다.
지난 8월 공개한 새로운 사용성 검증시험 결과에서는 개선 효과가 뚜렷했다. 파우치를 여는 데 걸린 시간의 중앙값은 기존 17초에서 3초로 줄었다.
포장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은 참가자는 기존 166명 중 26명에서 새로운 시험에서는 105명 중 1명으로 감소했다. 필름을 입안의 잘못된 위치에 투여한 사람도 20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새로운 시험에서는 필름을 씹거나 투여 후 다시 꺼낸 사례가 관찰되지 않았다.
회사는 개선된 포장과 사용설명서를 적용한 약동학 시험도 실시했다. 환자가 스스로 투여했을 때와 의료진이 투여했을 때의 약동학 결과는 유사했으며, 시험에서는 수동 근육주사 방식의 에피네프린도 비교군으로 사용했다. 중대한 이상사례나 시험약 중단으로 이어진 이상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필름이 정확히 혀 밑에 놓이지 않는 상황도 별도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혀 위에 잘못 놓았을 때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약력학적 반응이 확인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다만 이는 회사가 공개한 시험 결과로, FDA가 재신청 심사에서 해당 자료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시 FDA 심사대에
아퀘스티브는 이 같은 사용성 검증시험과 약동학 시험 결과를 포함해 이번 NDA를 다시 제출했다. 회사는 FDA가 지난 1월 CRL에서 지적했던 사항에 대응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재신청이 곧 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FDA는 우선 제출자료가 CRL에 대한 완전한 답변에 해당하는지 검토한 뒤 심사 유형과 새로운 심사기한을 정하게 된다. FDA가 추가 자료나 시험을 요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치료가 지연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에피네프린을 신속하게 투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나필름의 개발 취지도 주사기나 자동주입기를 사용해야 하는 기존 방식의 부담을 줄이면서 응급상황에서 보다 간편하게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도록 하는 데 있다.
결국 아나필름의 두 번째 FDA 도전에서 관건은 약효 자체보다는 회사가 고친 포장과 투여방식이 실제 응급상황에서도 충분히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FDA에 입증할 수 있느냐다. 지난해 허가 직전까지 갔다가 '사용성'이라는 예상 밖의 문턱에서 멈춘 세계 최초 필름형 아나필락시스 응급치료제가 이번에는 그 문턱을 넘어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