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제와 경구제가 경쟁하는 비만치료제 시장을 형상화한 이미지. 실제 환자 선택에서는 제형의 편의성보다 효능과 투여 조건, 가격 접근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먹는 비만치료제가 잇따라 등장했지만 실제 신규 치료에서는 주사제가 여전히 뚜렷한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약이 주사보다 편리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경구제를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선택에서는 투여 방식보다 체중감량 효과와 투여 주기, 가격·보험 접근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루카스 몬타르체(Lucas Montarce) 최고재무책임자는 5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경구 비만약이 시장에 나온 이후에도 주사형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치료제가 신규 환자 치료 시작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시작된 미국 메디케어 비만약 시범사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일리야 유파(Ilya Yuffa) 릴리 수석부사장에 따르면 이 사업을 통해 치료를 시작한 환자의 약 80%가 경구제 대신 주사제를 선택했다.
같은 비용 조건에서도 주사제가 우세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는 7월 1일부터 '메디케어 GLP-1 브리지'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은 2027년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대상 약물은 릴리의 경구 비만약 '파운다요'(Foundayo, 오르포글리프론)와 노보노디스크의 경구·주사형 '위고비'(Wegovy, 세마글루타이드), 릴리의 주사형 '젭바운드'(Zepbound, 티르제파타이드) 퀵펜이다.
CMS 자료에 따르면 파운다요와 위고비는 모든 제형이 대상이며, 젭바운드는 퀵펜 제형이 제공된다. 자격 기준과 사전승인을 충족한 메디케어 파트 D 가입자는 한 번에 28일 또는 30일분을 받을 수 있다.
로이터는 시범사업에 포함된 비만약의 월 본인부담금이 모두 50달러로 동일하게 적용됐다고 전했다. 가격 조건이 같아지자 환자 10명 가운데 약 8명이 주사제로 치료를 시작한 셈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주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복용 편의성을 고려하면 환자가 경구제를 우선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제형의 편리함보다 약효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BMO캐피털마켓의 에번 시거먼(Evan Seigerman) 애널리스트는 티르제파타이드가 더 나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형성돼 있다며, 소비자 선택에서는 결국 효능이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주사제는 매일 복용하는 경구제와 달리 주 1회 투여한다는 점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알약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에게 반드시 더 편한 치료법은 아니라는 의미다.
마운자로·젭바운드, 릴리 매출의 64.7%
주사제의 강세는 릴리의 실적에서도 확인됐다.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 티르제파타이드)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한 99억 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비만치료제 젭바운드는 시장 예상치 47억 3000만 달러를 웃도는 49억 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두 주사제는 릴리 전체 분기 매출의 64.7%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마운자로와 젭바운드가 모두 성장했고, 미국 외 지역에서는 마운자로가 판매 확대를 이끌었다.
릴리는 판매량 증가가 가격 인하에 따른 실제 판매가격 하락을 상쇄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올해 연간 매출 전망치를 종전 820억~850억 달러에서 850억~870억 달러로 높였다.
노보노디스크의 당뇨병·비만치료제 포트폴리오는 같은 기간 593억 덴마크크로네, 약 91억 6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오젬픽과 위고비 주사제가 매출을 주도했다.
릴리의 마운자로 단일 제품 매출만으로도 노보노디스크의 당뇨병·비만치료제 전체 매출을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티르제파타이드 수요가 릴리와 노보노디스크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구제도 성장…주사 대체보다 신규 환자 유입
주사제의 강세가 경구 비만약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미국에 출시된 경구 위고비는 2분기 매출 32억 2000만 덴마크크로네, 약 4억 9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분기보다 42.6% 증가했지만 시장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다.
경구 위고비는 미국 출시 8주 만에 신규 브랜드 처방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경구 위고비 사용량의 약 3분의 2는 기존에 GLP-1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았던 환자에게서 나왔다. [자료=IQVIA]IQVIA에 따르면 경구 위고비는 미국 출시 8주 만에 신규 브랜드 처방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사용량의 약 3분의 2는 이전에 어떤 GLP-1 치료제도 사용하지 않았던 환자에게서 나왔다. IQVIA는 복용 편의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기존 주사제 환자의 전환만 유도하기보다 시장 자체를 확대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릴리가 지난 4월 출시한 1일 1회 경구 비만약 파운다요의 2분기 매출은 98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 1억 560만 달러를 밑돌았다.
출시 시점이 경구 위고비보다 약 3개월 늦었던 만큼 처방 규모에도 차이가 났다. 로이터가 제시한 도표에 따르면 7월 초 한 주간 처방은 경구 위고비가 17만 1788건으로, 파운다요의 2만 9338건을 크게 앞섰다.
파운다요의 처방도 빠르게 늘고 있다. 릴리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처방은 한 달 전보다 약 두 배 증가했으며, 최근 비만약 치료를 시작한 환자 가운데 약 4명 중 1명이 파운다요를 선택했다.
릴리는 현재 40개가 넘는 시장에서 파운다요의 허가심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7년 주요 시장에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비만약 경쟁, 제형보다 효능·접근성이 좌우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은 주사제와 경구제가 기존 수요를 나눠 갖는 단순한 제형 경쟁을 넘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IQVIA는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이 표시가격 기준 2025년 660억 달러에서 2026년 92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이후에는 1050억~20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경구제 등장과 세마글루타이드 특허 만료, 가격·접근성 경쟁 심화가 시장 확대와 재편을 동시에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으로는 주사와 알약 가운데 어느 제형이 더 편한지만으로 시장의 승패를 가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중감량 효과와 부작용, 투여 빈도, 가격, 보험 보장 여부가 환자의 실제 선택에 함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월 1회 또는 그보다 긴 간격으로 투여하는 주사제도 등장할 전망이다. IQVIA는 비만치료제 시장이 투여 경로뿐 아니라 환자의 동반질환과 치료 지속성, 내약성, 근육·뼈 보존 효과에 따라 더욱 세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경구제는 주사제를 곧바로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환자를 치료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강한 체중감량 효과와 주 1회 투여 편의성을 갖춘 주사제의 입지도 당분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알약이 주사보다 편하므로 더 많이 선택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 비만약 시장에서는 제형 자체보다 치료 효과와 투여 조건, 비용과 보험 접근성이 더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