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Helicobacter pylori infection)[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속쓰림과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로 주로 사용돼 온 칼륨 경쟁적 위산 분비 억제제(P-CAB) 계열 치료제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치료 영역에 공식 진입했다. 최근 개정된 '한국인에서 근거 기반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진단 및 치료 임상진료지침'은 P-CAB 기반 치료를 기존 프로톤펌프억제제(PPI) 기반 치료의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판단은 대한소화기학회가 P-CAB 임상 19건을 종합한 결과다. 19건 가운데 14건은 일본 다케다의 '보신티(Vocinti, 보노프라잔·vonoprazan)', 4건은 HK이노엔의 '케이캡(K-CAB, 테고프라잔·tegoprazan)', 1건은 중국 장쑤 케어파 제약의 '베이원(倍稳·Beiwen, 케베프라잔·keverprazan)'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이 가운데 HK이노엔의 '케이캡'은 국내 4개 대학병원에서 환자 2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순응 환자 기준 90.2%의 제균율을 기록했다. 기존 PPI 기반 요법의 제균율은 82.4%였다. 이 연구는 P-CAB·항생제 병용요법을 PPI·항생제 병용요법의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됐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국내 성인의 상당수가 감염됐거나 감염 경험이 있을 만큼 흔한 세균이지만, 만성 위염과 위궤양은 물론 위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균을 항생제로 제거하는 것을 제균치료라고 하는데, 치료할 때는 위산을 억제하는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위산을 충분히 억제해야 항생제가 위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역할은 주로 PPI 계열 약물이 담당했다.
문제는 기존 제균치료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효과가 점차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제균치료에 오랫동안 사용해 온 항생제인 클래리스로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균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개정 지침에 따르면 클래리스로마이신 내성률은 2017~2018년 17.8%에서 최근 33.3%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클래리스로마이신 내성 급증…1차 제균치료 전략 변화
이에 따라 1차 치료 전략에도 변화가 생겼다. 20여 년간 표준으로 사용된 클래리스로마이신 기반 3제요법은 1차 치료에서 사실상 밀려났고,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던 맞춤치료가 중심축으로 올라섰다. 맞춤치료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환자의 항생제 내성 여부를 미리 확인한 뒤 적합한 약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항생제와 함께 사용하는 위산억제제에도 변화가 생겼다. 위산을 강하게 억제할수록 항생제가 안정적으로 작용해 제균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는데, P-CAB은 PPI보다 약효가 빠르고 위산 억제 효과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PPI는 사람마다 약물을 분해하는 속도가 달라 효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약물을 빠르게 대사하는 유전적 특성이 비교적 흔한 동아시아인에서는 치료 효과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 P-CAB은 이러한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보다 안정적인 위산 억제가 가능하다. 개정 지침이 PPI 대신 P-CAB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한 배경이다.
관건은 내성균에도 효과가 있느냐
현재까지 국내 P-CAB 연구의 중심은 일반 환자에서 PPI와 효과를 비교하는 데 맞춰져 있다. 더 어려운 문제는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내성균 감염 환자다. 이들 환자에서는 위산 억제 강도가 제균치료의 성패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같은 P-CAB 계열 안에서도 약물별 위산 억제력과 임상 근거에는 차이가 있다.
강한 위산 억제 효과를 가진 보노프라잔은 클래리스로마이신 내성균 감염 환자에서도 높은 제균율을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돼 있다. 보노프라잔은 현재 국내 급여 절차를 밟고 있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적응증은 신청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는 국산 P-CAB은 PPI에 뒤지지 않는다는 근거를 확보했지만, 내성균 감염 환자를 겨냥한 자료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개정 지침도 국내 P-CAB 자료가 더 필요하고 어떤 항생제와 얼마 동안 병용해야 하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과제를 겨냥한 연구 성과도 최근 나오고 있다. 이번 개정 지침은 2024년 11월까지 발표된 논문을 근거로 작성돼 이후 공개된 연구 결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펙수클루, 내성균 제균율 두 배…차기 지침 근거 주목
대웅제약의 '펙수클루(Fexuclue, 펙수프라잔·fexuprazan)'는 올해 미국 소화기질환주간(DDW 2026)에서 공개한 환자 461명 대상 임상 3상에서 클래리스로마이신 내성균 감염 환자의 제균율을 높였다.
클래리스로마이신 내성균 감염 환자만 따로 분석했을 때 펙수클루 기반 요법의 제균율은 54.76%로, 대조군인 란소프라졸 기반 요법의 28.57%보다 약 26%포인트 높았다. 통계적 우월성도 확인됐다(p=0.0112). 전체 환자의 제균율은 펙수클루군 83.64%, 란소프라졸군 77.93%로 비열등성을 입증했다.
대웅제약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지난 4월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펙수클루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적응증을 추가로 허가받았다. 펙수클루는 현재 해당 적응증으로 처방할 수 있지만, 연구 결과가 이번 지침의 근거 검색 기간 이후 공개돼 권고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국산 P-CAB이 국내 제균치료 성공률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향후 축적되는 임상 및 실사용 데이터로 확인될 전망이다.
학회는 이번 개정 지침에서 "한국의 높은 항생제 내성률 환경에서 1차 치료 제균 성공률 85% 이상을 달성하고, 불필요한 항생제 노출을 최소화하며, 항생제 내성 관리를 통한 적정 사용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가 주도하고 대한소화기학회 등 관련 학회가 참여해 마련한 이번 임상진료지침은 대한소화기학회 공식 학술지 '대한소화기학회지(Kore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