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네론의 '아일리아HD' (사진=리제네론)[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안구 유리체강에 반복적으로 주사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더 오래 유지하는 '지속성(Durability)' 기술이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의 새로운 경쟁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사제의 용량을 높여 투여 간격을 늘리는 고용량 제형부터 안구에 삽입하는 약물 저장장치, 한 번의 투여로 장기간 치료 단백질을 생성하게 하는 유전자치료까지 접근법은 다양하다. 기술적 원리는 서로 다르지만 반복 주사 횟수를 줄여 환자가 치료를 장기간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는 같다.
표준치료 자리 잡은 항-VEGF…남은 과제는 투여 부담
항혈관내피성장인자(anti-VEGF) 치료제는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nAMD)의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 주요 치료제들은 망막 내 비정상적인 혈관 생성을 억제해 시력 저하를 늦추거나 시력을 개선하는 효과를 입증했다.
치료 효과가 확립되면서 시장의 경쟁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약효 자체뿐 아니라 얼마나 적은 횟수로 효과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황반변성 환자들은 수년간, 일부는 장기간에 걸쳐 일정한 간격으로 안구 주사를 반복해야 한다. 치료 간격을 놓치거나 중단하면 질환이 다시 진행될 수 있어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약효와 함께 치료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신약 개발 경쟁도 새로운 작용기전의 발굴을 넘어 기존 치료 효과를 더 오래 유지하고 투여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용량으로 투여 간격 연장…아일리아 HD 최대 20주 효과 유지
치료 효과를 오래 유지하는 첫 번째 접근법은 한 번에 투여하는 약물의 용량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리제네론(Regeneron)의 '아일리아 HD(Eylea HD, 성분명 애플리버셉트·aflibercept)'다.
아일리아 HD는 기존 아일리아 2mg 제형보다 1회 투여량을 4배 높인 8mg 제형이다. 약물의 안구 내 노출을 늘려 기존 제품보다 긴 투여 간격을 확보하도록 개발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4월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과 당뇨병성 황반부종(DME) 환자가 1년간 성공적인 치료 반응을 보인 경우 아일리아 HD의 투여 간격을 최대 20주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20주는 현재 허가된 주사형 항-VEGF 치료제 가운데 가장 긴 투여 간격이다.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환자의 치료 반응과 질환 상태에 따라 투여 간격을 조정해야 한다.
삽입형 저장장치 부활…서스비모, 유럽 시장 재도전
로슈(Roche)는 약물의 용량보다 전달 방식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서스비모(Susvimo, 성분명 라니비주맙·ranibizumab)'는 안구에 삽입한 재충전형 저장장치가 약물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도록 설계된 치료제다. 반복적인 유리체강 주사를 대신해 일정한 간격으로 저장장치에 약물을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서스비모는 2021년 미국에서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로 처음 승인됐다. 그러나 이듬해 임플란트의 격막 이탈(septum dislodgement) 문제가 확인되면서 제품과 삽입장치가 자발적으로 회수됐다.
로슈는 임플란트와 리필용 바늘의 부품을 개선한 뒤 2024년 미국 시장에 제품을 다시 출시했다. 이후 미국에서 2025년 2월 당뇨병성 황반부종, 같은 해 5월 당뇨망막병증(DR) 적응증을 추가로 승인받았다.
유럽 진출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로슈는 미국 리콜이 진행 중이던 2023년 유럽의약품청(EMA)에 제출했던 서스비모의 허가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EMA는 지난 24일 산하 인체용의약품위원회(CHMP)가 기존 유리체강 내 VEGF 억제제 치료에 반응해 질환이 안정된 성인 습성 황반변성 환자를 대상으로 서스비모의 허가를 권고했다고 공개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허가 권고안에는 개선된 재충전형 '콘티뷰(Contivue)' 안구 임플란트가 적용됐다. 임플란트에 저장된 서스비모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며, 원칙적으로 24주마다 다시 충전한다.
EMA에 따르면 415명이 참여한 임상 3상시험에서 서스비모는 4주 간격 라니비주맙 유리체강 주사와 비교해 시력과 해부학적 결과를 유사하게 유지했다. 서스비모는 임플란트를 6개월마다 리필하는 방식으로, 잦은 유리체강 주사에 따른 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최종 허가 여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결정한다.
로슈의 또 다른 황반변성 치료제 '바비스모(Vabysmo, 성분명 파리시맙·faricimab)'는 약물의 분자 구조를 차별화해 투여 간격을 늘린 사례다.
바비스모는 VEGF-A와 안지오포이에틴-2(Ang-2)를 동시에 표적으로 하는 이중특이항체다. 별도의 삽입장치 없이 두 신호경로를 함께 억제하는 방식으로 최대 16주 간격 투여를 구현했다.
지속성 경쟁 종착점은 유전자치료?
지속성 경쟁의 종착점으로 거론되는 기술은 유전자치료다. 기존 치료제가 투여한 약물을 안구 안에 오래 유지하는 방식이라면, 유전자치료는 망막세포가 치료 단백질을 직접 생산하도록 한다.
리젠엑스바이오(REGENXBIO)와 애브비(AbbVie)가 공동 개발 중인 '수라브진 로파르보벡(surabgene lomparvovec, 수라벡·ABBV-RGX-314)'이 대표적이다.
수라벡은 아데노연관바이러스 8형(AAV8) 벡터를 이용해 망막세포에 유전자를 전달하고, 세포가 VEGF를 억제하는 항체 절편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반복적으로 약물을 주입하는 대신 안구 내부에서 치료 단백질이 만들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현재 습성 황반변성을 대상으로 두 건의 핵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주요 결과는 올해 4분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반복적인 유리체강 주사를 줄이거나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유전자 전달의 정확성과 장기 안전성, 제조 비용, 규제 기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약효' 넘어 '치료 지속 가능성'이 경쟁력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의 경쟁 기준은 단순한 약효에서 환자의 치료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투여 간격과 편의성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용량 제형은 기존 주사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투여 간격을 늘리고, 삽입형 장치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방출해 주사 횟수를 줄인다. 유전자치료는 안구 세포가 치료 단백질을 스스로 생성하도록 해 반복 투여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 기술은 안전성과 정밀 전달, 제조비용, 규제 및 의료현장 적용 측면에서 서로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특정 기술 하나가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환자의 질환 상태와 치료 반응에 따라 다양한 지속성 치료 전략이 병존할 가능성이 크다.
반복적인 안구 주사로 인한 치료 부담을 줄이려는 기술 경쟁은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글로벌 안과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