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무균주사제와 일반의약품을 생산하는 미국 제약사 2곳에서 현행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CGMP) 위반을 확인하고 잇따라 경고장을 발부했다.
무균 충전구역의 환경 모니터링 과정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생물과 곤충 유충이 발견됐는데도 충분한 원인 조사 없이 에피네프린 주사제를 출하하거나, 제조용수에서 반복적으로 미생물·화학적 이상이 확인됐음에도 재검사에서 적합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생산에 사용한 사례다.
FDA는 두 업체의 제조방법과 시설 또는 관리체계가 CGMP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해당 시설에서 생산된 의약품을 미국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상 '불량 의약품(adulterated drugs)'으로 판단했다. 이번 경고장은 미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FDA가 완제품 시험 결과뿐 아니라 제조환경의 오염 가능성, 반복되는 고객 불만, 일탈 조사와 시정·예방조치(CAPA)의 적정성까지 품질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균구역서 미생물·곤충 유충…"오염 위험 낮다"며 제품 출하
FDA가 최근 공개한 경고장에 따르면, 인터내셔널 메디케이션 시스템스(International Medication Systems Limited, IMS)는 지난해 12월 9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엘몬테 소재 의약품 제조시설에 대한 FDA 현장실사를 받았다.
IMS는 원료의약품과 무균주사제를 생산하는 업체로, 미국 나스닥 상장 제약사 암파스타 파마슈티컬스(Amphastar Pharmaceuticals)의 자회사다.
FDA는 IMS가 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설명되지 않은 이상이나 기준 이탈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에피네프린주사액 0.1mg/mL의 특정 제조번호(EA038A5)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심각한 환경 오염 사례를 문제 삼았다.
경고장에 따르면 무균 충전이 이뤄지는 ISO 5 구역의 생균 공기 환경 모니터링 배지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생물이 자랐고, 다수의 곤충 유충도 발견됐다. 같은 날 인접한 ISO 7 구역에서 작업자를 검사한 모니터링 배지에서도 다량의 미생물과 곤충 유충이 확인됐다.
그러나 IMS는 밀봉된 모니터링 배지가 충전구역 외부에서 우발적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다른 위치의 환경 모니터링 결과가 대부분 적합했고 완제품 무균시험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품 오염 위험을 낮게 평가했다.
회사의 품질부서는 별도의 시정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해당 에피네프린주사액의 출하를 승인했다.
FDA는 이러한 결론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접한 두 구역에서 같은 날 심각한 오염이 확인된 것은 무균 제조공정의 오염 통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데도, 회사가 근본 원인을 규명하거나 재발 방지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DA는 곤충 유충과 광범위한 미생물 오염이 발견된 것은 오염관리 프로그램의 중대한 실패를 보여주며, 이런 환경에서 제조된 제품을 출하한 결정은 품질부서가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바이알 균열 등 불만 90건 넘어…근본 원인 못 찾고 조사 종결
IMS의 품질관리 문제는 환경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았다.
FDA에 따르면 IMS는 2021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균 의약품의 오염 문제와 관련해 3건의 현장경보보고서(Field Alert Report)를 제출했다. 2023년 12월 이후에는 유리 파손과 바이알 균열 등 용기·밀봉체계 결함을 포함해 90건이 넘는 고객 불만을 접수했다.
그러나 상당수 조사는 명확한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종결됐다. FDA는 고객 불만과 일탈, 시험기준 이탈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품질 위험을 추적하는 회사의 조사체계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FDA는 IMS에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조사시스템 전반의 평가와 개선을 요구했다. 일탈과 고객 불만, 시험기준 이탈 결과에 대한 조사 역량을 높이고, 근본 원인 분석과 CAPA의 효과를 검증하며, 품질부서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라는 주문이다.
무균 제조공정과 시설에 대한 독립적인 위험평가도 요구했다. 작업자의 ISO 5 구역 개입, 제조장비의 적합성과 배치, 공기 흐름, 시설구조, 작업자와 원부자재의 이동 동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무균 충전라인과 청정구역의 설계를 개선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FDA는 회사가 시설을 장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만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제품 품질 위험을 충분히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각적인 위험 저감조치 없이 향후 시설을 개조하겠다는 계획만 제시해서는 시정조치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FDA 회수 권고…4월 해당 에피네프린 자진 회수
FDA는 이번 경고장 발부에 앞서 현지시간 3월 26일 IMS와 전화회의를 열고 에피네프린주사액 0.1mg/mL의 해당 제조번호(EA038A5)를 미국 시장에서 회수할 것을 권고했다.
IMS는 4월 1일 무균성 보증 부족을 이유로 해당 제품의 자진 회수에 착수했다. FDA는 완제품 무균시험에서 적합 결과가 나왔더라도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FDA에 따르면 완제품 무균시험은 무균 제조공정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종 품질관리 수단이지만, 개별 제조단위의 출하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미생물 오염은 모든 제품에서 균일하게 발생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시료의 최종 시험 결과만으로 제조단위 전체의 무균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최종 시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무균 제조공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장기간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암파스타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에서 IMS가 해당 시설에서 생산과 제품 공급을 계속하면서 시정계획을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FDA 경고장이 해당 시설의 생산 중단이나 제품 공급 제한을 지시하지 않았으며 추가 회수를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회사의 설명은 제3자 확인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파스타는 FDA가 IMS의 답변과 시정조치에 만족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으며, 지적사항이 해결될 때까지 별도의 사전 통지 없이 추가적인 규제 또는 법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번 경고장이 사업 운영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제조용수 이상 51건에도 재검사 후 계속 사용
FDA는 이와 별도로 미국 일반의약품 제조사 스파 드 솔레이유(Spa De Soleil)에도 CGMP 위반 경고장을 발부했다.
FDA는 올해 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선밸리 소재 제조시설을 점검한 결과, 회사가 일반의약품 생산에 사용하는 제조용수의 미생물·화학적 이상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스파 드 솔레이유는 2024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제조용수 검사에서 총 51건의 관리기준 초과 또는 규격이탈 결과를 확인했다. 전도도와 총유기탄소 수치가 기준을 초과했고, 여러 사용 지점에서는 그람음성 미생물이 검출됐다.
하지만 회사는 검출된 미생물의 속과 종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재검사를 실시했고, 이후 적합 결과가 나오면 해당 제조용수를 계속 사용했다. 일부 사용 지점에서 이상이 확인되면 해당 밸브만 일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동일한 용수시스템에 연결된 다른 밸브는 계속 사용했다.
FDA는 제조용수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오염은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기 때문에 한 지점의 적합 결과만으로 시스템 전체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지점에서 미생물이 확인되면 동일한 시스템 전체의 용수 품질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용수시스템의 설계와 유지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FDA는 미생물막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정체구간과 나사식 연결부, 테플론 테이프, 볼밸브 등 비위생적 구성요소가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제조 일정에 맞춘 충분한 빈도의 모니터링도 이뤄지지 않았다.
FDA는 회사에 시험기준 이탈 및 관리기준 초과 결과를 조사하는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품질부서의 감독과 근본 원인 분석, 조사 범위 설정, CAPA 수립 절차를 개선하도록 요구했다.
제조용수시스템의 설계와 통제, 유지관리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계획도 제출하도록 했다. 시스템의 온도, 재질, 배관 기울기, 정체구간, 비위생적 연결부, 유속 등 잠재적인 취약요인을 평가하고 발견된 결함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라는 요구다.
"완제품 시험 적합만으로 제조공정 결함 덮을 수 없어"
두 경고장의 공통점은 제조 과정에서 심각한 이상 신호가 확인됐는데도 업체들이 재검사 결과나 완제품 시험 결과에 의존해 제품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FDA는 완제품 무균시험이나 제조용수 재검사에서 적합 결과가 나오더라도 제조환경에서 확인된 오염과 품질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상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검사 결과가 적합하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오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며,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근본 원인 조사와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고장은 미국 수출을 추진하거나 현지 생산시설·자회사·위탁생산업체를 운영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도 경고음이 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환경 모니터링에서 이상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개별 사건으로 축소하지 말고 인접 구역과 작업자, 제조설비, 원부자재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불만과 일탈도 개별적으로 종결하기보다 장기간의 발생 추세를 분석해 품질시스템 전반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해외 자회사나 위탁생산시설에서 발생한 품질 문제도 허가권자와 제품 공급기업의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지 파트너에 품질관리를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정기적인 현장 감사와 원자료 검토를 통해 환경 모니터링, 불만 처리, 일탈 조사 및 CAPA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FDA 경고장이 곧바로 모든 제품의 회수나 공장 폐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적사항을 정해진 기간 안에 충분히 시정하지 못할 경우 압류·금지명령 등 추가 규제 또는 법적 조치와 신규 허가 지연, 수출증명서 발급 보류,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 진출 확대에 앞서 제조시설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품질관리 체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