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경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면, 이제는 누가 먼저 보험급여목록에 이름을 올리느냐가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 제미나이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경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면, 이제는 누가 먼저 보험급여목록에 이름을 올리느냐가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Pharmacy Benefit Manager)가 있다. PBM은 보험사의 처방집을 설계하고 제약사와 약가 및 리베이트를 협상한다. 실제로 환자가 어떤 의약품을 쓰게 될지는 사실상 PBM 손에 달려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승부처가 연구개발(R&D)에서 보험·유통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시장 접근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PBM은 미국 의약품 시장 진입의 관문
PBM은 보험사와 제약사, 약국 사이에서 처방약 급여 관리를 전담하는 중간 사업자다. 단순한 행정 대행 기관이 아니라 보험사가 우선 보장할 약물을 선정하고, 제약사와 약가 및 리베이트를 협상하며, 환자의 본인부담금 구조까지 설계한다.
현재 미국은 CVS 케어마크(Caremark),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xpress Scripts), 옵텀Rx(Optum Rx) 등 3개 대형 PBM이 전체 처방약 시장의 약 80%를 관리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가 FDA 허가를 받아도 이들 PBM의 급여목록에 오르지 못하면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쉽다.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처방집 등재
따라서 바이오시밀러가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BM은 약가뿐 아니라 리베이트 규모, 공급 안정성, 계약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방집을 구성한다.
그러다 보니 동일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라도 어떤 제품은 빠르게 처방이 확대되는 반면, 어떤 제품은 시장 진입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약물이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Adalimumab)' 시장이다. 미국에서는 2023년 이후 10개 이상의 '휴미라'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됐지만, 상당수 PBM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계속 처방집에 유지하거나 일부 제품만 우선 등재하면서 초기 처방 전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24년이다. CVS 케어마크가 주요 상업보험 급여목록에서 '휴미라'를 제외하고 바이오시밀러를 우선 급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CVS 케어마크는 산도스의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인 '하이리모즈(Hyrimoz)'를 자체 브랜드 형태로 급여목록에 포함시켰다.
이후 CVS 케어마크 가입자의 아달리무맙 처방 가운데 97%가 우선 지정된 바이오시밀러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PBM의 처방집 결정이 실제 처방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바이오시밀러 채택 확대 나서는 PBM
최근 들어서는 PBM들의 전략 변화도 감지된다. 과거에는 오리지널 의약품과의 계약을 유지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비용 절감 효과를 고려해 바이오시밀러 채택을 확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CVS 케어마크는 올해 처방집을 개편하면서 '휴미라'와 '스텔라라(Stelara, 성분명: 우스테키누맙·Ustekinumab)'를 비롯한 여러 바이오시밀러를 우선 적용하기 시작했다. 보험 재정 절감과 환자 접근성 개선을 동시에 노린 접근법이다.
국내 기업도 PBM 공략 가속화
국내 기업들도 PBM 처방집 등재를 통한 미국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셀트리온은 최근 전이성 직결장암·유방암 치료제 '아바스틴(Avastin, 성분명: 베바시주맙·bevacizumab)' 바이오시밀러 '베그젤마(Vegzelma)'를 미국 대형 PBM인 익스프레스 스크립츠와 옵텀의 처방집 선호의약품(preferred product)으로 등재했다.
선호의약품은 PBM이 우선적으로 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품목으로,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낮아지고 보험 적용 범위도 확대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처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익스프레스 스크립츠의 처방집 개편 과정에서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 '솔리리스(Soliris, 성분명 에쿨리주맙·eculizumab)'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Epysqli)'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피즈치바(PYZCHIVA)'를 선호의약품 명단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오리지널 의약품과 일부 경쟁 바이오시밀러는 오히려 처방집에서 빠졌는데, 이는 PBM의 결정 하나가 시장 점유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는 FDA 허가와 제품 출시가 경쟁의 끝이 아니다. 어떤 PBM의 처방집에 등재되고, 얼마나 많은 보험 가입자에게 처방 기회를 확보하느냐가 시장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경쟁의 중심이 연구개발과 생산 역량을 넘어 보험·유통을 아우르는 시장 접근 전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