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피르카'는 BTK 단백질에 비공유(가역적) 방식으로 결합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단백질 변이가 발생하더라도 표적 결합 능력을 유지할 수 있어 기존 치료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 릴리(Eli Lilly and Company)의 브루톤 티로신 키나아제(BTK) 억제제 '제이피르카(Jaypirca, 성분명: 피르토브루티닙·pirtobrutinib)'가 기존 BTK 억제제의 내성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혈액암 치료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릴리는 최근 유럽혈액학회(EHA)에서 만성 림프구 백혈병(CLL)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3상 임상시험(BRUIN CLL-322)의 중간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시험은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CLL 환자를 대상으로 제이피르카 병용요법과 표준요법을 비교 평가한 연구다. 회사 측에 따르면 제이피르카 병용요법은 표준요법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45%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결과는 기존 BTK 억제제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군에서도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릴리는 2년의 고정 투약 기간만으로도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BTK 억제제는 혈액암 치료 분야에서 대표적인 경구용 표적치료제로 자리 잡아 왔다. 미국 애브비(AbbVie)와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의 '임브루비카(Imbruvica, 성분명: 이브루티닙·ibrutinib)'는 한때 연 매출 1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쟁 치료제 등장과 치료 환경 변화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실제 임브루비카의 글로벌 매출은 2021년 98억 달러에서 2025년 28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이피르카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BTK 억제제와 다른 작용 방식에 있다.
기존 BTK 억제제는 BTK 단백질에 비가역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표적 단백질에 변이가 발생하면 약물이 제대로 결합하지 못해 내성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제이피르카는 BTK 단백질에 비공유(가역적) 방식으로 결합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단백질 변이가 발생하더라도 표적 결합 능력을 유지할 수 있어 기존 치료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제이피르카의 등장이 곧바로 BTK 억제제 시장의 전성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제이피르카의 최대 매출 규모를 약 50억 달러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임브루비카의 전성기 매출에는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대신 시장에서는 BTK 치료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기존 BTK 억제제를 넘어 BTK 분해제(BTK degrader)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BTK 분해제는 단백질 기능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표적 단백질 자체를 분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론적으로는 기존 BTK 억제제에서 나타난 내성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로슈(Roche)는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누릭스(Nurix)가 개발 중인 BTK 분해제 '벡소브루티덱(bexobrutideg)'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총 23억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제이피르카의 임상 성과가 단순히 개별 제품의 성공을 넘어 BTK 치료제 시장의 세대교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 기존 억제제에서 차세대 억제제, 나아가 분해제로 이어지는 기술 진화 경쟁이 향후 혈액암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