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바스켓 임상' 개념도[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폐암·대장암·췌장암 환자가 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갑상선암 환자와 폐암 환자가 같은 약을 투여받고, 흑색종과 뇌종양 환자가 동일한 효능 데이터를 만든다. 암이 어디에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변이를 가졌느냐가 환자를 묶는 기준이 된 종양 개념 변화, 이 변화의 중심에 '바스켓 임상(Basket Trial)'이 있다.
'바스켓 임상'이란 발생 부위가 아니라 같은 드라이버 변이(Driver Mutation, 암을 일으키고 키우는 핵심 유전자 변이)를 가진 여러 암종 환자를 하나의 임상에 묶어 약효를 검증하는 임상 설계다. 표적 항암제 시대가 본격화한 201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확산했고, 지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조직 무관(Tissue-agnostic) 승인'을 뒷받침하는 핵심 임상 설계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이 KRAS G12C 변이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바스켓 임상 2상(KRAUS)을 진행 중이고, 한미약품은 EZH1/2 이중저해제 'HM97662'로 다(多)암종 글로벌 임상 1상을 가동하고 있다. 페니트리움바이오사이언스도 지난 4월 16일 5개 적응증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바스켓 임상 추진 계획을 공개했다.
변이가 같으면 한 바구니에 … 발생 부위 중심 임상의 변화
바스켓 임상은 앞에 설명한 것처럼 같은 변이를 가진 환자를 하나의 임상에 묶는다. 폐암·대장암·췌장암 환자라도 KRAS G12D 변이를 공유하면 같은 시험군에 들어간다. 변이가 같다면 약물 반응도 유사할 것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바구니(Basket)' 개념이다. 폐암·대장암·췌장암이라는 서로 다른 과일이라도 KRAS G12D 같은 동일한 라벨이 붙어 있으면 같은 바구니에 담는 구조다.
기존 임상은 정반대였다. 폐암 환자는 폐암끼리, 대장암 환자는 대장암끼리 모집했다. 같은 약물이라도 적응증마다 별도 임상을 반복해야 했다. 시간과 비용이 누적됐고, 희귀 변이 환자는 모집 자체가 어려웠다.
흐름을 바꾼 것은 정밀의료다. 암종 분류 체계가 발생 부위에서 드라이버 변이로 서서히 넘어가면서, 임상 설계도 이 축을 따라 변이 단위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분기점은 지난 2017년이었다. 그해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가 KEYNOTE-016·012·028·158·164 등 5개 단일군 임상의 통합 데이터를 근거로 FDA 최초의 조직 무관 승인을 받았다. 이전 치료에 실패한 고빈도 현미부수체 불안정성(MSI-H)·불일치 복구 결함(dMMR) 고형암 환자 149명에서 일관된 반응이 확인되면서, 발생 부위가 아닌 분자적 특성만으로 승인이 이뤄진 첫 사례다. 이후 흐름은 빠르게 확산됐다.
'비트락비(Vitrakvi, 성분명 : 라로트렉티닙·Larotrectinib)'는 2018년 NTRK 융합 양성 고형암 전반에 가속 승인을 받았다. 2019년에는 '로즐리트렉(Rozlytrek, 성분명 : 엔트렉티닙·Entrectinib)'이 같은 적응증으로 합류했다. '젬퍼리(Jemperli, 성분명 : 도스타리맙·Dostarlimab)'는 2021년 dMMR 고형암에 조직 무관 승인을 받았고, '레테브모(Retevmo, 성분명 : 셀퍼카티닙·Selpercatinib)'는 LIBRETTO-001 임상을 근거로 2022년 RET 변이 고형암 전반으로 적응증을 확장했다. 노바티스(Novartis)의 '다브라페닙(Dabrafenib)'·'트라메티닙(Trametinib)' 병용요법도 2022년 BRAF V600E 변이 고형암에 조직 무관 가속 승인을 받았다.
"표적은 늘고 환자는 한정적" … 바스켓 임상이 확산된 현실적 이유
바스켓 임상이 빠르게 확산된 배경에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희귀 변이 환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NTRK 융합은 전체 고형암의 1% 미만에서 발견된다. RET 변이도 비소세포폐암 일부와 갑상선암 일부에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특정 암종 환자만으로 임상을 채우려면 수백 개 병원을 동시에 돌려도 환자 모집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바스켓 임상은 폐암·대장암·췌장암·갑상선암 환자를 동시에 모집한다. 임상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다.
표적 항암제의 타깃이 폭증하고 있는 점도 바스켓 임상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KRAS만 해도 G12C·G12D·G12V로 세분화되고 있고, HER2·FGFR·BRAF 등 변이 단위도 빠르게 쪼개지고 있다. 표적은 늘어나는데 환자 수는 제한적이라는 구조에서 바스켓 임상은 사실상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평가받는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효율성이 높다. 하나의 임상으로 여러 암종 데이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성공할 경우 조직 무관 승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통계 개념 상 검증력은 아직 한계 ... 국내 급여 체계와도 충돌
하지만 아직은 한계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통계 개념 상 검증력이다. 여러 암종을 한 임상에 묶으면 암종별 환자 수가 줄어든다. 전체 100명을 모집해도 적응증별로는 10~20명 수준에 그친다. 이 숫자로 만든 통계는 검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주도한 대규모 정밀의료 플랫폼 임상 NCI-MATCH가 대표 사례다. 6000명 이상을 스크리닝하고 30개가 넘는 치료군을 운영했지만, 일부 치료군은 충분한 효능 신호를 확보하지 못했고 모집 한계도 드러났다. 모든 변이가 실제 약물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함께 확인됐다.
통계적 검증력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국내 급여 체계와도 충돌한다. 모든 바스켓 임상이 곧바로 조직 무관 승인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암 치료의 축이 장기에서 변이로 넘어갔다는 점과 그것이 임상시험 설계의 문법까지 다시 쓰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암 발생 부위보다 원인 변이를 분석해 내는 정밀의료 시대가 임상시험의 전통적 개념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