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마카리 미 식품의약국(FDA) 국장이 4월 28일 신약 임상시험 데이터를 규제당국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실시간 임상시험(Real-Time Clinical Trial, RTCT)' 파일럿 프로그램 시행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미 식품의약국 FDA)[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신약 개발 및 승인의 패러다임을 뒤바꿀 규제당국의 실시간 임상 데이터 모니터링 시대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28일 신약 임상시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실시간 임상시험(Real-Time Clinical Trial, RTCT) 파일럿 프로그램 시행을 공식 발표했다. 여기서 파일럿이란 본격적인 제도 도입에 앞서 소규모로 시범 운영하며 시스템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점검하는 예비 단계를 뜻한다.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FDA 국장은 이날 "신약 개발에는 짧아도 10년 길면 12년이 걸린다는 통념에 도전하는 이정표적인 날"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마카리 국장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치료 경험이 없는 맨틀세포림프종 대상 2상 TRAVERSE 시험과 암젠의 제한기 소세포폐암 대상 1b상 STREAM-SCLC 시험을 RTCT 개념 증명 시범 사례로 공개했다.
RTCT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신약 시장 출시 기간, 임상 설계 방식, 나아가 글로벌 임상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짚어봤다.
전체 임상 기간 최대 40% 줄여 ... 신약의 시장 출시 기간 획기적 단축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임상시험 체계는 각 단계 사이마다 긴 공백(hiatus)이 존재한다. 1상을 마친 제약사가 데이터를 취합·분석해 제출하고, FDA의 검토가 끝나야 2상에 진입할 수 있다. 마카리 국장은 1상에서 2상으로 넘어 가는 이 공백이 임상 시작부터 승인까지 전체 임상 기간의 45%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2상이 끝나면 또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RTCT는 이 공백을 없애려는 것으로, 마카리 국장의 규제 속도전 정책의 일환이다. 임상 현장의 전자의무기록(EHR)에서 데이터를 직접 추출해 FDA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구조다. 기존의 임상 사이트→제약사→FDA 다단계 경로를 임상 사이트→FDA로 직결한다. 환자에게 발열이 생기거나 종양이 줄어들면, FDA 심사관은 CT 판독 시점에 실시간으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제약사의 중간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제러미 월시(Jeremy Walsh) FDA 수석 인공지능(AI) 책임자는 "RTCT가 상용화되면 전체 임상 기간의 20~40%를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10~12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최대 4~5년가량 줄이는 효과다.
실시간 데이터 공유로 임상 설계 정밀화 ... 위험 요인 조기 차단
RTCT 환경에서는 제약사가 임상 진입 전, 어떤 데이터를 공유할지 평가변수(endpoint)와 안전 기준을 FDA와 사전에 더 정밀하게 합의해야 한다.
RTCT 환경에서는 FDA 심사관이 임상 진행 중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본다. 따라서 제약사는 임상 진입 전에, 어떤 신호(signal)를 FDA와 공유할지 평가변수(endpoint)와 안전 기준을 더 정밀하게 합의해야 한다. 여기서 '신호'란 임상시험 중 발생하는 특정 약물의 효과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보여주는 데이터 패턴을 말한다. 종양 크기 변화나 특정 바이오마커 수치, 이상반응 발생 빈도 등이 그 대상이다.
지금까지의 임상은 이 신호들을 시험이 끝난 뒤 한꺼번에 정리해 제출했기 때문에, FDA가 문제를 발견해도 이미 수백 명의 환자가 해당 프로토콜을 거친 뒤였다. RTCT 환경은 이 신호를 발생하는 즉시 확인할 수 있어, 위험 신호에 대한 조기 대응이 가능해진다고 FDA는 설명했다. 이는 임상을 다 끝내고 데이터를 정리해 제출하는 지금까지와 달리 "무엇을 볼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임상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마카리 체제가 현재 추진 중인 일련의 정책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FDA는 지난 2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 논평을 통해 3상 핵심(피보탈, pivotal) 임상 2건을 1건으로 줄이는 '단일 임상시험 기본원칙(Single Pivotal Trial)'을 공식화했다. 피보탈 임상이란 신약 허가의 핵심 근거가 되는 대규모 확증 임상으로, 통상 이 단계를 통과해야 FDA 승인 신청이 가능하다. AI 심사 도구 엘사(ELSA)는 예정보다 한 달 앞당겨 전 부처에 배포됐다. 정책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심사 기간을 단축하되, 검증의 밀도는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기술 인프라 중심의 글로벌 임상 지형 재편
RTCT가 정착되면 임상 설계 초기 단계부터 FDA와의 정밀한 협의 없이는 시험 자체를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관련 기술 인프라를 먼저 갖춘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강점을 보일 전망이다. 이는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FDA가 아스트라제네카의 TRAVERSE 시험과 암젠의 STREAM-SCLC 시험을 RTCT 개념 증명 사례로 공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TRAVERSE' 시험에는 패러다임헬스(Paradigm Health)의 인공지능(AI) 플랫폼이 적용됐다. 이 시험에는 '칼퀀스(Calquence, 성분명 : 아칼라브루티닙·acalabrutinib)'에 '벤클렉스타(Venclexta, 성분명 : 베네토클락스·venetoclax)'와 '리툭산(Rituxan, 성분명 : 리툭시맙·Rituximab)' 병용조합이 사용됐는데, FDA는 이 시험의 신호 수신과 검증에 이미 성공했다. 암젠은 STREAM-SCLC 시험에서 '임델트라(Imdelltra, 성분명 : 타를라타맙·tarlatamab)'를 대상으로 같은 시스템을 적용 중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EHR과 실시간 전송 플랫폼을 갖춘 임상 사이트가 글로벌 제약사의 우선 선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러미 월시 책임자는 "아직 RTCT는 기존 방식과 병행되는 단계"라며 "미공개 임상 정보의 보안과 데이터 거버넌스 문제, 임상의 맹검(blinding) 유지 여부는 계속해서 면밀히 살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RTCT가 실제로 얼마나 신약 개발에 영향을 줄지는 올 하반기 파일럿 결과나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약 개발과 승인 절차가 공백없이 진행되는 흐름이 이미 현실이 됐다는 사실이다. FDA가 임상 현장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기관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도 변화된 모습이다. FDA의 새로운 정책이 60년간 유지돼 온 지금의 단계별 임상 구조에 어떤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