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현지시간) 폐막하는 '미국암연구학회 2026 연례학술대회(AACR 2026)'에서 한·중·일 삼국은 각기 다른 항암 연구 특징을 보여줬다. (AI 제미나이 제작)[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기자] 22일(현지시간) 폐막하는 '미국암연구학회 2026 연례학술대회(AACR 2026)'에서 극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의 전략이 확연히 갈려 관심을 끈다. 이번 학회에서 한국은 차세대 플랫폼 기술의 물량 공세로, 일본은 검증된 자산의 적응증 확장으로, 중국은 글로벌 빅파마의 포스터를 장악한 기술수출 자산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플랫폼의 한국, 데이터의 일본, 기술수출의 중국"이라는 구도가 학회 현장에서 뚜렷이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2만 2000명 집결한 AACR 2026 ··· 한국 역대 최대 참가
AACR 2026은 4월 17~22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렸다. 전 세계에서 약 2만 2000명의 과학자·임상의·업계 관계자가 모였다. 140여 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암 연구학회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힌다.
한국 기업의 참가 규모는 역대 최대였다. 한미약품·동아에스티 등 전통 제약사와 셀트리온·삼성바이오에피스·리가켐바이오·에이비엘바이오·지아이이노베이션 등 바이오텍을 포함해 지난해보다 약 2배 늘어난 30여 곳이 연구 발표와 부스 운영에 나섰다. 중국은 글로벌 빅파마와 체결한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앞세워 빅파마 포스터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고, 일본은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아스텔라스(Astellas Pharma)·다케다(Takeda Pharmaceutical) 등 주요 제약사가 ADC 플랫폼의 장기 임상 데이터로 승부했다.
삼국의 차이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한국이 새로운 치료 틀을 제안하는 플랫폼 혁신에 집중할 때, 중국은 기술수출 자산을 글로벌 빅파마의 발표 무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일본은 이미 검증된 자산의 적응증을 넓히는 데이터 숙성 전략으로 내실을 다졌다. AI 기반의 빠른 후보물질 도출을 앞세운 한국, 풍부한 임상 자원과 빅파마 파트너십을 결합한 중국, 검증된 타깃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본의 접근법이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韓, 차세대 모달리티 중점 ··· 한미약품 4년 연속 최다 발표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는 '새로운 판(Platform)'으로 빅파마와의 체급 차이를 메우는 전략을 택했다. 표적단백질 분해(TPD)·이중항체·mRNA·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차세대 모달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도 선두는 한미약품이 섰다. 8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9건의 비임상 연구 결과를 포스터로 공개하며 4년 연속 국내 최다 발표 기록을 이어갔다. 발표 과제에는 EZH1/2 이중저해제 'HM97662', 선택적 HER2 저해제 'HM100714', SOS1-KRAS 상호작용 저해제 'HM101207', EP300 선택적 분해제 'HM102431', STING mRNA 항암 신약 'HM99462', p53 mRNA 항암 신약 'HM99130'등 주요 파이프라인이 망라됐다. 여기에 북경한미약품(Beijing Hanmi Pharmaceutical)이 개발 중인 4-1BB×PD-L1 이중항체 'BH3120'과 B7H3×PD-L1 이중항체 ADC 'BH4601'도 공개됐다.
ADC 진영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리가켐바이오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개발 중인 B세포 성숙항원(BCMA) 표적 ADC 2종 'LCB14-2524'와 'LCB14-2516'의 전임상 데이터를 내놨다. 두 물질 모두 대조군인 GSK(GlaxoSmithKline)의 '블렌렙(Blenrep, 성분명: 벨란타맙 마포도틴·Belantamab Mafodotin)' 대비 우수한 세포 독성과 효능을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도 올해 초 미국에서 임상 1상에 진입한 이중항체 ADC 2종 'ABL206'과 'ABL209'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정밀의료와 미충족 수요 영역도 한국의 강점으로 부각됐다. 루닛은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Lunit SCOPE)'를 활용한 6건의 연구를 발표했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PARP와 탄키라제(Tankyrase)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기전 합성치사 항암제 '네수파립(Nesuparib)'의 소세포폐암·췌장암 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소세포폐암 세포실험에서 기존 PARP 저해제 '올라파립(Olaparib)' 대비 최대 133배 높은 성장 억제 효과를 보였다. 치료제가 부재한 영역을 신규 기전으로 파고드는 흐름이다.
中, 글로벌 빅파마 '재료' 역할 ··· MSD·GSK, 중국 자산 들고 출전
중국의 존재감은 자체 발표보다 글로벌 빅파마의 포스터를 통해 더 뚜렷하게 확인됐다. 빅파마가 중국 기업으로부터 기술도입(Licensing-in)한 자산을 주력 데이터로 들고 나온 것이다.
가장 주목받은 건 미국 MSD(Merck & Co.)의 'MK-2010'이다. MSD는 중국 상하이 라노바 메디슨(LaNova Medicines)으로부터 선급금 5억 8800만 달러에 기술도입한 PD-1/VEGF 이중항체 'MK-2010'의 첫 인체 대상 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특히 19일 임상시험 플레너리 세션에는 중국 CSPC 파마슈티컬(CSPC Pharmaceutical)의 EGFR 표적 ADC 'CPO301', 치루제약(Qilu Pharmaceutical)의 클라우딘6 후보물질 'QLH1121' 등이 포함돼 높은 주목을 받았다. 영국 GSK가 중국 한소제약(Hansoh Pharma)에서 선급금 1억 8500만 달러에 도입한 B7-H3 표적 ADC 'HS-20093(GSK5764227)' 역시 눈길을 끌었다.
중국 듀얼리티 바이오(DualityBio)는 그동안 일본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가 거의 독점해온 종양 관련 MUC1(TA-MUC1) 타깃에 듀얼페이로드 ADC를 붙인 'DB-2304'를 선보이며 자사의 R&D 역량을 과시했다.
日, 검증된 플랫폼에서 신규 적응증 및 타깃 만드는 '숙성 전략'
일본은 이미 구축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적응증과 신규 타깃을 계속 뽑아내는 '숙성 전략'을 선보였다. 이는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사는 이번 학회에서 TA-MUC1(종양 관련 MUC1)을 표적하는 ADC '사코미타투그 데룩스테칸(sacomitatug deruxtecan·DS-3939)'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이는 자사 DXd ADC 기술 플랫폼으로 만든 여섯 번째 ADC 자산으로, 엔허투(HER2)·다트로웨이(TROP2)·이피나타맙 데룩스테칸(B7-H3)·패트리투맙 데룩스테칸(HER3)·랄루도타투그 데룩스테칸(CDH6)에 이어 새롭게 등판한 파이프라인이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섯 개의 타깃으로 자산을 확장한 셈이다.
신규 영역 진출도 병행됐다. 아스텔라스(Astellas Pharma)는 TROP2 표적 이중페이로드 ADC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TROP2는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의 '트로델비(Trodelvy, 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Sacituzumab Govitecan)'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다이이찌산쿄의 '다트로웨이(Datroway, 성분명: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Datopotamab Deruxtecan)'가 겨냥하는 타깃이다. 기존 경쟁 구도에 이중페이로드라는 차별화된 기술로 재진입한 것이다.
정리하면, 일본은 AACR 2026에서 화려한 신모달리티 대신 하나의 검증된 플랫폼을 여러 타깃으로 넓히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이 TPD·mRNA·이중항체 등 다양한 신기술을 동시다발로 쏟아낸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한중일 삼국의 경쟁은 학회 이후에도 계속된다. 한국은 기술력을 입증한 전임상·초기 임상 데이터를 후기 임상 성과와 상업화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DXd 이후의 차세대 플랫폼을 무엇으로 가져갈지 시험대에 섰다. 중국은 빅파마 파트너십의 발표가 FDA 승인과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