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해 글로벌 시장으로 기술수출한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 신약 후보 물질 '투스페티닙(Tuspetinib)'이 항암제를 넘어 항생제 내성(AMR) 감염증 치료제로 적응증을 전격 확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도의 다중표적 인산화효소 억제제라는 이 약물의 설계상 특징이 세균의 대사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이른바 '신약 재창출'의 핵심 열쇠로 지목된다.
15일 헬스코리아뉴스 취재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 과학기술대학교 제1부속병원, 선전시 인민병원, 방부시 방부의과대학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투스페티닙이 다제내성균의 핵심 대사 효소를 억제해 '최후의 보루' 항생제로 알려진 폴리믹신 B(polymyxin B)의 활성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투스페티닙과 항균제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기하급수적인 살균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 연구 결과의 골자다.
현재 전 세계 의료계는 이른바 '조용한 팬데믹'으로 불리는 다제내성(MDR) 그람음성균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병원균은 다제내성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이다. 면역이 저하된 환자에게 치명적인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이 세균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의 거대한 저장소 역할을 하며 현존하는 항생제에 대한 강력한 방어막을 구축하는 특징이 있다.
기존 항생제가 모두 무력화된 상황에서 의료진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박테리아의 외막을 파괴하는 폴리믹신 B뿐이다. 하지만, 이 약물은 세균을 완전히 사멸시킬 만큼 충분한 용량을 투여하면 중증 감염 환자에게 심각한 신장 독성(신부전)과 신경 독성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반대로 환자의 독성 부담을 우려해 투여량을 줄이면 다제내성균은 금세 약물 공격에 저항하며 새로운 획득 내성 돌연변이를 발전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임상적 딜레마를 타개할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바로 한미약품의 투스페티닙이다.
견고한 세균 방어막 붕괴 … '살균 시너지' 폭발
중국 연구진은 생체 외(in vitro) 실험을 통해 투스페티닙이 다제내성 폐렴간균의 대사에 필수적인 효소인 'NagA(N-아세틸글루코사민-6-인산 탈아세틸화효소, GlcNAc6P deacetylase)'를 강력하게 억제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NagA는 박테리아의 아미노당 대사를 총괄하며, 견고한 세포벽 조립과 에너지 중심 대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효소다. 연구진에 따르면, 투스페티닙에 의해 이 효소가 차단되면 세균의 두터운 외막 구조와 대사 시스템에 치명적인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투스페티닙으로 인해 외막 구조가 취약해진 다제내성 폐렴간균에 폴리믹신 B를 병용 투여하자 두 약물 간에 폭발적인 '살균 시너지(Synergistic antibacterial killing activity)' 효과가 나타났다.
세균 내부로 폴리믹신 B가 더욱 쉽게 침투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의 신장에 무리를 주지 않는 극소량의 항생제 투여만으로도 이전에 치료가 불가능했던 내성 병원균을 사멸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효과를 실제 생체 내(in vivo) 환경에서 재현하기 위해 폴리믹신 B에 내성이 있는 폐렴간균을 생쥐에 감염시킨 뒤 투스페티닙과 폴리믹신 B를 병용 투여했다. 그 결과, 폴리믹신 B를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보다 감염 제거율과 생존율이 현저히 높아졌다.
암세포 '합성 치사' 기전 세균에도 통했다 … 버지니아 공대도 '항독성' 효과 확인
이번 약리학적 발견은 투스페티닙이 앞서 혈액암 임상에서 보여준 고유의 '합성 치사(Synthetic Lethality)' 기전이 감염 내과학 영역으로 교차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임상 혈액암 모델에서 투스페티닙은 암세포가 생존을 위해 가동하는 신호 경로를 차단, 병용 약물인 '베네토클락스'에 무려 1900배나 취약해지게 만드는 성과를 냈다. 이와 동일한 원리가 박테리아의 대사 방어막 붕괴와 기존 항생제의 침투력 강화에도 작용한 것이다.
투스페티닙이 항균제 내성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 소속 연구진 역시 투스페티닙이 지닌 혁신적인 '항독성 화학요법제(Antivirulence chemotherapeutic)'로서의 효과를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버지니아 공대 연구진은 광범위한 고속 스크리닝 분석을 통해 투스페티닙이 세균이 숙주에 달라붙어 감염을 일으키는 핵심 장치인 '제4형 선모(Type IV Pili)'를 강력하게 억제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세균을 직접 죽여 새로운 내성 진화를 저해하는 기존 항생제 패러다임과 달리, 세균의 정상적인 생존과 번식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오직 감염 능력만을 무장 해제시키는 항균 신약으로서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다.
본업인 백혈병 임상서도 압도적 완전관해율 … 한미약품 R&D 저력 '재조명'
투스페티닙은 한미약품이 자체 발굴해 지난 2021년 미국 파트너사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에 총 4억 200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전략 자산이다.
현재 급성골수성백혈병(AML)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1/2상 임상시험(TUSCANY)을 진행 중인데, 지난해 미국혈액학회(ASH)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데이터에 따르면 투스페티닙 삼제요법(TUS+VEN+AZA)은 치료 강도가 높은 고용량 코호트에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100%의 완전관해(CR/CRh)율을 달성했다. 특히 반응 환자의 78%가 체내 백혈병 세포가 씨가 마른 미세잔존질환(MRD) 음성 상태에 도달하며 차세대 혈액암 표준 치료제로의 도약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연구진이 새롭게 입증한 다제내성 폐렴간균 억제 효능과 폴리믹신 B의 보조제로서 역할은 향후 투스페티닙의 파이프라인 가치를 극대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본연의 강력한 항암 효능에 더해 항균 영역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무기를 장착한 투스페티닙이 글로벌 신약 시장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안티바이오틱스(The Journal of Antibiotics)'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