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노사 갈등이, 노조 측의 파업 돌입 시한을 보름 남짓 남긴 시점에서도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옥[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파업 예고까지 남은 기한은 보름 남짓,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박재성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동조합 위원장은 13일 오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회사에서 교섭 의지를 보여주거나 일정을 잡자는 제안이 전혀 없다"며 "투쟁 계획에 변동 사항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측이 가처분 신청으로 법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노조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22일 집회, 5월 1일 총파업은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박 위원장의 답변은 짧고 단호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하루 6400억 전량 폐기" vs "실제 손실 128억" ... 손실 규모 놓고 정면충돌
노조 "삼성전자 임금 가이드라인 적용은 독립 상장자 자율 교섭권 침해"
당초 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임금 인상 수준이었다. 사측은 삼성전자 그룹 가이드라인에 따른 6.2% 인상안을 고수하고 있고, 노조는 평균 14% 인상에 영업이익 20% 성과급, 자사주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7.8%포인트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13차례의 교섭은 모두 빈손으로 끝났다.
노조의 불만은 단순히 임금 인상률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56.6%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음에도, 모회사 삼성전자의 임금 가이드라인이 그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에도 적용되며, 독립 상장사임에도 자율적 교섭권이 사실상 차단되어 있다는 점을 노조는 지적하고 있다.
대화가 막히자 사측은 법원으로 향했다. 지난 1일 인천지방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다. 바이오 공정 특성상 단 하루라도 멈추면 배양·정제 중인 100여 개의 배치(Batch)를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지난 9일 열린 심문기일에서 사측 변호사는 "공정 중단 시 하루 최소 6400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환자들의 치료제 공급 차질 우려를 강조했다.
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달랐다. 박 위원장은 이날 심문기일에서 "사측 논리대로라면 해당 공정 노동자들은 사실상 파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며, 이는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손실 규모에 대해서도 노조 측은 "실제 직접 손실은 하루 매출 수준인 128억 원 규모"라며, "6400억 원은 사측이 공정 특수성을 이용해 부풀린 숫자"라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바이오 공정의 특수성과 가처분 법리 성립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며 "그 논리라면 정유·제철 등 연속 공정 산업 어디서도 파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손실이 걱정된다면, 사측은 법적 소송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파업 예고까지 남은 기한은 보름 남짓,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사진은 AI를 이용해 제작한 가상의 이미지임.)소송전으로 번진 노사 갈등, 낮아진 타협 가능성
작금의 상황을 보면 사측의 가처분 신청이 오히려 갈등을 키운 꼴이 됐다. 교섭 대신 법적 수단을 선택한 순간 노조의 강경 대응도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노조는 즉각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으로 맞불을 놓았고, CEO 명의 이메일을 통한 여론 조성 시도까지 문제 삼으며 전선을 넓혔다. 의도는 달랐을지 몰라도, 가처분 신청이 출구가 아닌 서로의 퇴로를 막는 결과가 된 셈이다.
물론 사측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개월을 공들인 세포 배양물이 폐기될 경우 재가동까지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고, 납기 차질은 천문학적 배상과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러한 법적 안전장치 확보 노력이 오히려 양측의 퇴로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거버넌스 문제, 해외 언론도 우려의 시선
"글로벌 고객사 공급망 직접적 위협" 경고
극적 타협을 위해서는 이른바 '거버넌스 문제'도 넘어야 한다. 노조 측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중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가 노사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임금 싸움을 넘어 경영권 자율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언론도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제약 전문지 피어스파마(Fierce Pharma)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례적이고 공개적인 난기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으며, 글로벌 조달·물류 전문지 서플라이체인브레인(SupplyChainBrain)은 "이번 사태가 글로벌 고객사들의 공급망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지역 생명과학 정보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의 파미웹(PharmiWeb)은 실무 협상 담당자의 자율권이 삼성전자 측의 영향력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다는 점을 비중 있게 다뤘다. 로이터와 야후 파이낸스 등 주요 경제 매체들 역시 이를 단순 노사 분쟁이 아닌 투자 결정에 치명적인 '거버넌스 리스크'로 규정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타전했다.
인접국인 일본과 중국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후지필름(Fujifilm) 등 자국 CDMO 기업들의 상대적 안정성을 부각하며 삼바의 노동 리스크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중국의 경제일보 등은 미국의 생물보안법 압박을 받는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빈자리를 삼바가 차지하려던 계획이 내부 갈등으로 발목 잡힐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위험한 질주 계속 ... 4월 22일 노조 집회가 분수령 될 듯
"회사 태도 변화 없으면 투쟁 멈추지 않을 것"
세계 최대 CDMO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미국의 생물보안법 추진 등에 따른 반사이익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공급 안정성은 파트너 선택의 핵심 기준이다. 한번 흔들린 신뢰는 회복에 수년이 걸린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운명의 첫 분수령은 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4월 22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회사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법원의 가처분 판단과 22일 집회 이후의 결집력이 막판 협상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멈춰 세울 브레이크가 보이지 않는 위험한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