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사옥[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지난해 매출 4조 5569억 원의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Samsung Biologics)가 창사 15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위기를 맞고 있다. 노동조합이 오는 5월 1일을 기점으로 전면 파업을 예고하면서, 업계의 시선은 배치(Batch) 공정 오염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숙련 인력이 현장을 이탈할 경우 경제적 손실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대외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사 임단협 평행선 … 95% 압도적 찬성으로 쟁의 가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동조합은 3월 24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투표 권한이 있는 선거인 3678명 중 95.38%인 3508명이 참여해 이 중 95.52%인 3351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노조 가입자 수는 3689명으로 전체 임직원의 약 75%에 달한다.
노사는 지난해 2025년 12월부터 총 13차례에 걸쳐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노조는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 2조 692억 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쟁점은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 산정 방식이다. 노조는 평균 14%(기본 9.3% + 성과 4.7%) 인상과 영업이익의 20%를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사측은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등 그룹 주요 계열사 기준에 맞춘 6.2% 인상안과 영업이익 10% 또는 경제적부가가치(EVA) 20% 기준안을 고수하고 있다. 이 외에도 1인당 3000만 원 규모의 노사상생격려금 지급, 주 36시간 근무제 도입, 정년 65세 연장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배치(Batch) 공정 오염 리스크 … CDMO 사업의 아킬레스건
숙련 인력이 현장을 이탈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배치' 공정의 안정성이다. 배치는 살아있는 세포를 일정 기간 배양해 의약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온도와 산소, 영양 조건을 정밀하게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 공정이다. 단 한 순간의 관리 공백도 전체 생산분의 오염과 폐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공정은 설비 자동화나 단순 대체 인력 투입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세포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즉각 조치하는 숙련 인력의 판단이 오염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실제 파업이 강행되어 공정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수천억 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생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노조는 이 점을 협상 레버리지로 삼고 있고 사측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무형의 손실인 '신뢰도'다. CDMO 기업에게 배치 오염 사고는 사업 적격성 자체를 의심받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화이자(Pfizer)나 모더나(Moderna) 같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공정 안정성을 이유로 거래선을 재검토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들여 쌓아온 수주 파이프라인은 단기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생물보안법 수혜 기대 시점에 터진 악재
이번 파업 결의는 시점도 공교롭다.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간), 중국 바이오 기업들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포함된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이 트럼프 대통령 서명을 거쳐 공식 발효됐다. 이에 따라 우시앱텍(WuXi AppTec)과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 등 규제 대상에 포함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퇴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두고 글로벌 수주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간 안정적인 배치 공정 운영 능력을 앞세워 가장 강력한 대안이자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혀왔다. 바로 그 결정적인 시점에 파업 리스크가 터졌다. 배치 공정의 안정성을 파트너 선정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이번 사태는 일반적 노사 갈등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라는 불안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남은 한 달… 타결이냐 파국이냐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5월 1일까지는 이제 꼭 한 달이 남았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 자체가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점은 노사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이다.
현재 상황은 노사 양측이 CDMO 기업의 제1가치인 '신뢰'를 담보로 서로의 요구안을 관철시키려 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존림 대표 귀고 후 진행될 비공식 협상에서 극적인 합의점이 도출될지, 아니면 창사 이래 첫 전면 파업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지 전 세계 바이오산업계의 시선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쏠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31일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갑', 회사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회사"라며, "그러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리스크를 노사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5월 1일 이전에 적정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