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료실' 넘어 '혁신 창업'의 주역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진료실'이 이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 창업'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안정적인 전문직의 상징이었던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 '가운'을 벗고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격돌하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최신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최근 10년 사이 의사 창업 기업이 폭발적으로 급증하며, 누적 투자유치 금액이 무려 2조 원을 돌파했다는 통계는 의사들이 단순한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음을 증명한다.
본지는 진흥원의 '의사 창업 현황 분석' 보고서를 심층 분석해, 의사 창업의 화려한 성공 이면과 여전히 가시밭길인 재무적 실태 등을 [상·중·하] 3부작으로 집중 조명했다. 1편(상)에서는 자본시장을 사로잡은 의사 창업의 양적 성장과 성공 사례를, 2편(중)에서는 '죽음의 계곡' 앞에 선 의사 사장님들의 고군분투와 재무적 실태를, 마지막 3편(하)에서는 예비 의사 창업가들을 위한 실무적인 성공 전략과 정책적 과제를 다루었다. <편집자 주>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진료실'이 이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 창업'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안정적인 전문직의 상징이었던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 '가운'을 벗고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격돌하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의사 창업이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했지만,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바이오 업종 특성상 대다수 기업이 재무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상장 뒤에 가려진 '재무적 불안' … 영업손실 세 배 급증
보건산업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 기업의 평균 매출은 2020년 45억 원에서 2024년 72억 원으로 성장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평균 영업손실은 9억 원에서 30억 원으로 세 배 이상 커졌으며, 당기순손실 역시 평균 37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제품 개발 성공까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지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분석 기업의 절반 이상인 54.4%가 신용등급 C등급 이하에 머물러 있어 재무 안정성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도 50%를 상회해 일반 창업 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재무적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 '선순환 투자' vs 연세 '특화 기술지주' … 병원별 지원 각양각색
이에 따라 선도 병원들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창업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창업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초기 투자(Seed)를 지원하고, 기업 상장 후 보유 지분을 매각해 얻은 수익을 다시 신규 창업 기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연세대학교의료원은 국내 최초로 바이오헬스 특화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전문적인 경영 지원 체계를 갖췄다. 의료진이 경영보다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투자 연계를 돕는 방식이다. 서울대학교병원과 고려대학교의료원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스파크(SPARK)'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교육 과정을 통해 예비 창업자의 역량을 강화하며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진료와 연구 병행 한계" … 인건비 보전 및 규제 완화 시급
현장의 의사 창업가들은 실질적인 인력 지원과 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진료 업무와 회사 운영을 병행하면서 겪는 업무 과부하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보고서는 국가 R&D 연구비로 창업자의 인건비를 보전해 주는 '국가 R&D 연구비 인건비(Buy-out)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신기술의 임상시험이나 기술사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업자의 이해상충 문제 해결과 병원의 기업 지분 보유 제한(5%) 완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병원 지주회사 설립 허용과 같은 거버넌스 체계의 변화도 주요 과제로 꼽혔다.
진흥원 관계자는 "의사 창업이 단순한 영리 행위를 넘어 의료 혁신을 이끄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으로 정착해야 한다"며 "범부처 차원의 의사 창업 특화 R&D 프로그램과 실무형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