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료실' 넘어 '혁신 창업'의 주역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진료실'이 이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 창업'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안정적인 전문직의 상징이었던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 '가운'을 벗고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격돌하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최신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최근 10년 사이 의사 창업 기업이 폭발적으로 급증하며, 누적 투자유치 금액이 무려 2조 원을 돌파했다는 통계는 의사들이 단순한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음을 증명한다.
본지는 진흥원의 '의사 창업 현황 분석' 보고서를 심층 분석해, 의사 창업의 화려한 성공 이면과 여전히 가시밭길인 재무적 실태 등을 [상·중·하] 3부작으로 집중 조명했다. 1편(상)에서는 자본시장을 사로잡은 의사 창업의 양적 성장과 성공 사례를, 2편(중)에서는 '죽음의 계곡' 앞에 선 의사 사장님들의 고군분투와 재무적 실태를, 마지막 3편(하)에서는 예비 의사 창업가들을 위한 실무적인 성공 전략과 정책적 과제를 다루었다. <편집자 주>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진료실'이 이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 창업'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안정적인 전문직의 상징이었던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 '가운'을 벗고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격돌하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기자] 환자를 진료하던 의사가 '가운' 대신 '경영'을 선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단순한 개원을 넘어 의료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에 뛰어든 의사들이 바이오헬스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용자 혁신가'로 변신한 의사들 … 창업 생태계 지형도 변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의사 창업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의사 창업 기업 263개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76.4%가 지난 2015년 이후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육성 사업과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TIPS, 이하 팁스) 프로그램 등이 본격화되면서 병원 내 기술사업화 환경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결과로 풀이된다.
의사 창업은 일반적인 임상 개원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임상 현장에서 느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혁신 주도형 창업(Innovation-driven Entrepreneurship)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의사 창업가를 자신의 임상 경험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용자 혁신가(user innovator)'로 정의했다.
#연구개발업 비중 압도적 … '공동 창업'이 투자 흥행 보증수표
의사 창업 기업의 업종은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분석 대상 기업의 45.2%가 의학 및 약학 연구개발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17.1%)과 의료기기 제조업(14.4%)이 뒤를 이었다. 특히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라 AI 기반 진단 솔루션이나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 분야로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자본시장의 관심도 매우 뜨겁다. 이들 기업의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2조 1302억 원에 달하며, 기관당 평균 231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흥미로운 점은 창업의 형태에 따라 투자 규모가 크게 갈렸다는 것이다. 의사가 단독으로 창업했을 때보다 경영이나 공학 전문가와 손을 잡은 공동 창업 형태일 때 투자 유치 금액이 평균 100억 원 이상 높았다. 이는 의료적 전문성에 비즈니스 노하우가 결합될 때 사업화 성공 가능성이 더 크게 평가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세대 마크로젠부터 에임드바이오까지 … 상장 릴레이 지속
가시적인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유전체 분석 분야의 '마크로젠(Macrogen)'을 필두로 '지니너스(Geninus)', '이엔셀(ENCell)', '에임드바이오(AimedBio)' 등 총 17개 기업이 기술력을 인정받아 코스닥 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의 '에임드바이오'는 지난해 기술특례 상장 과정에서 최고 공모가를 기록하며 시장의 큰 기대를 모았다. 이 외에도 '넥스트바이오메디컬(NextBiomedical)', '엔젤로보틱스(Angel Robotics)' 등 의사가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창업한 기업들이 속속 자본시장에 안착하며 의사 창업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진흥원 관계자는 "의사 창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철저한 '사업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의사는 임상적 유효성을 증명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시장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기업가 정신을 갖춘 경영 전문가와의 파트너십을 조기에 구축하는 것이 실패 리스크를 줄이는 핵심"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