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이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학 연구가 가장 먼저 고르는 방법은 무작위배정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다. 환자를 무작위로 나누면 두 집단의 평균적 특성이 비슷해져 치료 외 요인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만큼 결과 차이를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임상시험은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의료 현장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러한 차이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실사용증거(Real-World Evidence, RWE)다.
현실 진료 현장에서 쌓이는 자료는 실사용데이터(Real-World Data, RWD)라고 한다. 보험 청구자료, 전자의무기록(EMR), 질환 레지스트리(특정 질환 환자의 진단과 치료 경과를 모은 자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RWD를 분석해 도출한 근거가 바로 RWE다. 중요한 것은 이 RWE가 인과관계를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다.
# RWE의 숙제, '교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RWE 데이터의 원천인 병원은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이 때 환자들은 저마다의 기저 질환이나 건강 상태 등이 출발선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가 나타났을 때 그것이 약물에 의한 것인지, 환자의 원래 상태 때문인지 즉각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다.
예를 들어 중증 환자에게 특정 약을 더 많이 투여했다면, 이후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그것이 약효 때문인지, 환자의 중증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처럼 환자 특성과 치료 방법이 결과에 함께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교란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현실 데이터 분석에서는 두 집단을 최대한 비슷한 조건으로 맞추는 통계적 보정 작업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성향 점수(Propensity score)와 확률가중치(Inverse probability weighting, IPW)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연령이나 중증도처럼 기록으로 남은 정보를 활용해 최대한 유사한 환자군끼리 비교하는 기법이다. 가령 나이가 70세이고 중증도가 비슷한 환자들을 선별해 비교함으로써 약물의 순수한 효과를 보다 정밀하게 측정하는 식이다.
# 데이터 한계 넘기 위한 '목표 임상시험 모사' 주목
다만 통계적 보정 역시 기록된 정보에만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다. 환자의 생활 습관이나 미세한 병세 변화처럼 기록에 남지 않는 차이까지는 완전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연구 설계 단계부터 RCT의 장점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바로 목표 임상시험 모사(Target trial emulation, TTE) 기법이다. 이 방법은 현실 데이터를 단순히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대신, 실제 임상시험을 수행한다면 어떤 기준을 세웠을지를 먼저 설계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처음 약물을 복용한 날을 연구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그로부터 특정 기간(예: 1년) 동안 발생한 결과만 분석 대상으로 삼는 식이다. 사후에 통계로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초기 단계부터 동일한 출발선과 관찰 기간을 설정해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 양보다 질, 정교한 설계가 RWE 가치 결정
RWE는 태생적으로 무작위배정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 설계와 분석 방식이 결과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설계가 느슨할 경우 현실 데이터가 지닌 불규칙성이 결과의 왜곡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반면 연구 목적을 분명히 하고 비교 대상, 치료 시작 시점, 추적 기간을 명확히 설정한다면 RWE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진료 환경에서의 실질적인 효과나 장기 안전성 등 기존 RCT가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서 독보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RWE의 가치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어떤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어떤 기준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그 정교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