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최근 체중 감량 기전의 항염증제들이 다양한 적응증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하며 '만병통치약'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질병의 결과물인 염증을 근본 원인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염증은 크게 '만성 저강도 염증'과 '급성 염증'으로 나뉜다. 이 중 만성 저강도 염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없으나 체내에서 만성적으로 활성화되어 조직의 기능을 서서히 저하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통상적으로 만성 염증은 질병으로 발전해 외적 증상이 나타난 뒤에야 치료가 시작되지만, 최근 등장한 체중 감량 기반 항염증제들은 발병 이전 단계에서 만성 저강도 염증을 직접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약물은 GLP-1 작용제다. 당초 포만감 유도를 통한 혈당 조절 및 체중 감량제로 개발된 이 약물은, 최근 강력한 염증 반응 조절 능력까지 확인되며 만성 저강도 염증 관련 질환의 핵심 치료제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지난 2024년,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GLP-1 작용제인 '위고비(Wegovy, 성분명: 세마글루티드·semaglutide)'는 심혈관질환 치료 적응증을 추가로 허가받으며 그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NLRP3 억제제 역시 유망한 후보군으로 꼽힌다. NLRP3은 염증 반응을 촉진해 지방 축적을 유도하는 물질로, 이를 차단할 경우 체중 감량과 염증 조절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현재 NLRP3 억제제는 자가면역질환과 대사질환을 넘어 호흡기·신경퇴행성·심혈관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열광 뒤에는 과학적 근거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기대를 모았던 '위고비'의 알츠하이머병 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2025년 11월, 위고비가 알츠하이머 임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GLP-1 작용제나 NLRP3 억제제가 질병의 근본 원인을 직접 타격하기보다는, 체중 감량의 결과로 나타나는 2차적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즉, 체내 지방 감소가 만성 염증 수치를 낮춰 질병 악화 환경을 개선할 뿐, 질병 자체를 소멸시키는 기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나이젤 그레이그(Nigel Greig) 박사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체중 감량 기반 약물들이 혁신적인 것은 맞지만,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