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헬스코리아뉴스 D/B). 중국시장[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은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안보의 핵심 분야로 규정하고 중국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바이오 디커플링(Biotech Decoupling)'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중국 바이오의 숨통을 죄려던 미국의 '바이오 빗장'은 오히려 중국의 '홀로서기'와 '글로벌 영토 확장'을 돕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약·바이오 견제 강화
현재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중국의 '바이오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입법과 행정명령을 동원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25년 말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은 미국 정부 기관이나 예산을 지원받는 기업이 중국의 '우려 바이오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조치다. BGI, MGI, Complete Genomics, WuXi AppTec, WuXi Biologics 등 중국의 주요 바이오 기업 5곳은 이미 '우려 기업' 명단에 올라있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의약품 허가 및 임상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중국산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FDA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중국 내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한 허가 신청 시 규제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또 국가 안보를 이유로 헬스케어 및 바이오 분야의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고, 아세트아미노펜 등 필수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Onshoring)을 강제하여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이른바 미국 우선 투자 정책(America First Investment)의 시행이다.
그런데 미국의 바람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제약바이오 영향력은 더 확대되는 역설적 현상을 낳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정책과 시사점
정책목표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내 영향력 차단 및 공급망 분리
주요 수단
생물보안법, 중국산 임상데이터 규제, 대중국 투자 제한
결과
중국의 신흥 시장 장악, 독자적 공급망 완성, 혁신신약 기술 입증
'생물보안법'에도 끄떡없는 중국 바이오 ... 미국 덕분에 세 마리 토끼 잡아
① '글로벌 남부(Global South)' 시장의 지배력 강화
미국 시장이 막히자 중국 제약사들은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이른바 '글로벌 남부'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은 저렴한 가격과 기술 이전을 무기로 이들 국가의 보건 인프라를 장악해 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국 기업들은 동남아(인도네시아, 베트남)와 중동(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건설하며 '미국 없는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바이오 표준(Regulatory Harmonization)이 형성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②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의 양적·질적 성장
미국의 견제가 무색하게 중국의 신약 개발 역량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컨대 중국은 지난해 전체 신약 허가 건수에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추월하는 이변을 낳았다. 12월 집계가 포함되지 않은 2025년 11월 말 현재 중국(NMPA)의 신약허가 건수는 68건으로, 지난해 총 46개의 신약을 승인한 미국(FDA)를 20건 이상 따돌렸다.
특히 기술 수출(Licensing-out) 분야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미국 빅파마들이 규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ADC(항체약물접합체) 등 첨단 바이오 자산에 대한 러브콜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중국 제약사들의 기술 수출 규모는 660억 달러(한화 약 96조 원)를 기록하며 전년도 전체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국 GSK가 장쑤 헝루이 제약과 체결한 125억 달러(한화 약 18조 원) 규모의 계약은 중국 바이오 산업의 체질이 '복제약'에서 '혁신 신약'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최근 "올해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을 기존 30%에서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며 제약·바이오 산업의 육성 의지를 더 확고히 했다.
③ 공급망 자급자족 및 내수 시장 고도화
미국의 규제는 중국이 원료의약품(API)부터 완제의약품(FDF)까지 '완전 자급형 공급망'을 구축하는 촉매제로도 작용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내수 시장이 혁신 신약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가 오히려 중국 바이오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고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8일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생물보안법은 중국 CDMO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신흥 시장으로 거점을 옮기며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우리 기업들은 이 틈새에서 반사이익을 찾는 동시에, 재편되는 글로벌 표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 데이터도 최근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시장 다변화를 촉발했으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신흥 시장 내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이오 양극화 시대, 중국에 대한 관심 더 높아져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이 '미국 중심'과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바이오 양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국 의약품 시장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구글 트렌드를 통해 확인한 결과, 'China Pharma', 'China Bio' 등 관련 키워드의 검색 관심도는 2025년 이전까지 한 자릿수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후 두자릿수 이상 급격히 치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색어 관심도 현황 [사진=구글 트렌드]실제로 2025년 들어 주요 글로벌 제약·바이오 매체들은 중국 관련 소식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데이터(GlobalData)에서 발행하는 파마슈티컬 테크놀로지(Pharmaceutical Technology)다. 해당 매체는 지난 2일(현지시간) 2025년 중국 국가의약품감독관리국(NMPA)의 국민건강보험(NRDL) 목록을 심층 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과거에는 중소규모 전문매체들이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NRDL 관련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쳤으나, 파마슈티컬 테크놀로지와 같은 주요 글로벌 매체가 이번에 처음으로 중국 NRDL을 주제로 한 기사를 발행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과거 중국의 태양광 산업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기업들은 2010년대 초반 태양광 시장에 본격 진출했으나, 미국과 유럽은 반덤핑 관세 등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로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은 중국 산업의 기술 고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 기업들이 전세계 태양광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