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본사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 원외처방 시장의 절대 강자 한미약품이 포화 상태에 이른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 '프레가발린' 시장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이미 수백 개의 제네릭이 난립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시장에서, 아직 어느 제약사도 선보이지 않은 구강붕해정 개발을 추진하며 차별화 전략 마련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프레가발린 성분의 구강붕해정(ODT, Orally Disintegrating Tablet)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현재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본격적인 임상 시험 단계에 진입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기술적 난제로 꼽히던 원료의 쓴맛을 해결한 만큼, 개발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프레가발린은 뇌전증, 신경병증성 통증, 섬유근육통 등에 쓰이는 블록버스터 약물이다. 오리지널 제품인 '리리카'의 특허가 만료된 2017년 이후, 국내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제약사가 제네릭을 쏟아냈다. 현재 시장은 리리카의 방어와 제네릭의 저가 공세가 맞물려 치열한 점유율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이번 프레가발린 구강붕해정 개발 추진은 철저히 계산된 틈새시장 전략이다. 회사는 프레가발린을 처방받는 환자의 약 65%가 고령 환자라는 점에 주목해 구강붕해정 기술 확보에 나섰다.
이들 고령 환자는 노화나 뇌졸중 후유증 등으로 음식이나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기존 캡슐제는 부피가 커 삼키기 힘들고, 가루로 만들면 프레가발린 특유의 강한 쓴맛 때문에 복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구강붕해정은 물 없이 입안에서 30초 이내에 녹여 먹을 수 있는 제형이다. 단순히 먹기 편하다는 장점을 넘어, 약을 삼키지 못해 치료를 중단하는 고령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근 공개된 출원 명세서를 살펴보면, 이번 구강붕해정 개발의 핵심은 쓴맛 차폐 기술에 있다. 프레가발린은 원료 자체가 혀에 남는 불쾌한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 구강붕해 제형으로 개발하기 까다로운 약물로 꼽힌다.
한미약품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분자 코팅 대신 이중 감미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분자 코팅은 원료의 불편한 맛을 환자가 감지하지 못하게 막아 주지만, 빠르게 약효를 발휘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설탕의 600배 단맛을 내는 수크랄로스로 초기 쓴맛을 잡고, 뒤이어 올라오는 잔여 쓴맛과 텁텁함은 천연 감미료인 '토마틴'으로 덮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회사가 제조한 프레가발린 구강붕해정은 입안에서 30초 이내에 붕해되고, 3분 이내에 약물의 85% 이상이 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캡슐제나 일반 정제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돌발 통증을 잡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빠른 약효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미약품이 구강붕해정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일반 환자에게는 캡슐을, 연하곤란이 있는 노인 환자에게는 구강붕해정을 권하는 맞춤형 마케팅을 펼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는 수익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이미 포화된 제네릭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는 대신, 고난도 제제 기술이 적용된 제품으로 틈새시장 공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약품이 '로수젯', '아모잘탄' 등으로 증명해 온 '개량신약의 명가' 다운 시장 전략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프레가발린 구강붕해정 개발을 본격화하면 관련 시장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제품 상용화까지 이어질 경우 요양병원이나 신경과를 중심으로 빠르게 기존 캡슐 처방을 대체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