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슬로 호머, '이글 헤드, 매사추세츠 맨체스터(만조)',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및 제공 오늘날 여름휴가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바다와 백사장. 하지만 사람들이 바닷가에 누워 햇볕을 쬐고 수영을 하며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일찍이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안데르스 소른,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시그리드 혜르텐, 조지아 오키프, 로버트 카파 등 여러 시대와 지역의 작가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해변을 바라보고 이를 미술 작품으로 남겼다.
도시화, 철도의 발달 '대중 해수욕'의 탄생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 해수욕'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어업의 현장이거나 일부 상류층이 즐겼던 유럽의 해안은 철도가 연결되고 시민의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점차 휴양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클로드 모네, '생타드레스의 레가타(Regatta at Sainte-Adresse)', 1867, 캔버스에 유채. /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및 제공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로 당시 현대인이 '일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나며 도시민은 바다에서 수영하고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새로 생긴 호텔에 머물며 휴가를 즐겼다.
특히 프랑스 노르망디가 철도 개통과 함께 해안 관광이 빠르게 성장했다. 이에 따라 '새 풍경'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향했다.
대표적으로 인상주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는 접근하기 쉬운 바닷가를 단숨에 달려가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풍경과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스카겐 해변의 안나 안케르와 마리 크뢰위에르’, 1893. / 독일 알커줌·푀어 서해안미술관, 브뢰레 자선재단 컬렉션 영구대여 및 제공 노르망디와 더불어 덴마크 최북단의 스카겐(Skagen)에서도 비슷한 붐이 일어났다. 심지어 1880년대 이 지역은 예술가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른바 ‘스카겐 화가들’은 긴 모래사장과 독특한 북유럽의 빛에 매료됐다.
이들이 만든 독특한 풍경과 작품은 당시 유럽에서 불티나게 전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카겐의 긴 해변은 일반 관광객들로 붐볐다. 물론, 스카겐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해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몸'
20세기에 접어들며 미술가들은 바다와 함께 사람, 특히 남성의 '아름다운 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1900년대 첫 10여년 동안 남성의 나체와 신체를 표현한 그림들이 대거 나왔다.
J.A.G. 아케(J.A.G. Acke), '외스트라살트(Östrasalt)', 1906. / 스톡홀름 잭슨스(Jacksons) 소장 및 제공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단련되고 건강한 남성의 몸은 어떤 '이상성'이 있어왔다. 20세기 초기는 '해수욕의 발견'과 함께 이 남성성의 재발견이 이뤄졌던 것이다.
특히 근대 스포츠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바다에서의 수영은 곧 몸과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강한 활동으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J.A.G. 아케, 외젠 얀손, 에드바르 뭉크 등의 작가들이 바다에 이 남성성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들은 짙푸른 물과 강렬한 햇빛 속에서 수영하는 남성들을 화면에 담았다.
이들에 의해 해변은 휴양의 장소이자 한편으로는 건강한 신체와 현대적인 남성상을 표현하는 공간이 됐다.
뉴욕의 붐비는 해변은 독특한 미술 소재
해변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며 완전한 대중화를 이룬다.
미국 작가들과 스웨덴에서 바다를 체험한 미술가들은 뉴욕 인근 해변을 가득 메운 수많은 피서객이라는 독특한 풍경을 포착하고 당연하게도 이를 그림에 담았다.
해리 로즈랜드(Harry Roseland), '코니아일랜드', 1933. / 테라 미국미술재단, 대니얼 J. 테라 컬렉션 제공 당시 미국 뉴욕의 해변은 유럽의 조용함과는 달리 도시에서 빠져나온 대중이 한꺼번에 몰리는 피난지 같은 곳이었다.
스웨덴 서해안에서 활동한 화가들은 이 이색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그들은 뉴욕 해수욕장의 거대한 인파와 강렬한 풍경을 활력이 넘치는 그림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이를 통해 해변을 삶의 기쁨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로서의 해변
어떤 작가들은 19~20세기 '휴양지로서의 해변'을 발견했는가 하면 어떤 작가들은 모더니즘적인 새 미술 사조와 함께 이를 또 다른 공간으로 파악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목욕하는 소년들(Bathing Boys)', 1897~1899. / 오슬로 뭉크미술관 소장 및 제공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해변은 일종의 '모호함'이 있는 곳이었다. 이들 작가들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해변이라는 공간 자체를 서로 다른 세계 사이의 경계로 해석하는가 하면, 깨어 있음과 꿈,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연결하는 장소로 보기도 했다.
뭉크와 같은 화가들은 이 해변에서 일어나는 파도를 끊임없이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지우고 다시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는 한편, 해변 공간 그 자체를 인간의 현실과 내면세계가 맞닿는 영역으로 상징지었다.
세계 전쟁이 파괴한 '낭만적 해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낭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친 도시인이 철도를 타고 찾아가는 휴양지였던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아픈 기억이 가득한 전쟁의 유적이 된다.
예술가들은 한때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던 이 바다를 전쟁과 죽음의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위지(Weegee), '전쟁 중', 1944년경. /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소장 및 제공 예술가들의 눈에 전쟁 속 노르망디의 해변은 술과 담배를 들고 다니는 거친 군인들, 총기와 탱크 등이 가득한 삭막한 곳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이 해변은 언제든 죽음이 가득한 피바다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처럼 작가들의 시야 속 해변은 19세기 대중들이 낭만을 찾아가는 장소이자 20세기 중반 전쟁의 유적이 되는 등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해변의 변화라는 과정 속에서 예술가들은 이곳을 즐거움과 건강의 공간, 꿈과 무의식, 전쟁의 기억 등으로 파악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은 이 해변의 독특한 변화상을 고찰하는 전시 ‘바다로! 해변, 경계지대이자 여름의 꿈(To the Sea! The beach as borderland and summer dream)’을 오는 9월 24일부터 2027년 2월 7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1870년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해안관광과 해수욕 문화가 어떻게 등장하고 확산됐는지를 약 200점의 회화와 사진, 관광 광고포스터, 역사적인 수영복 등을 통해 확인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