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캬아마시의 옛 찻집을 표현한 모습. /챗GPT로 만든 이미지. '찻집의 왕국'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 5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고, 오래된 가구를 손질하며, 단골손님과 이야기를 나눠온 찻집들이 조명되고 있어 화제다.
일본인들은 오래된 찻집이 많은 곳이라고 하면 오사카나 나고야를 떠올리기 쉽지만 와카야마는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난카이에 따르면 와카야마현의 인구 1000명당 찻집 수는 일본 전국 3위다.
3대가 운영하는 커피하우스 노티 파인. /난카이 제공 이 도시의 찻집 운영 형태는 특이한데, 전체 찻집 가운데 개인경영 점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92.3%로 전국 1위에 이른다.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개인 혹은 가족이 오랫동안 운영하며 자신들만의 메뉴와 인테리어, 손님맞이 방식을 지켜온 가게가 많다는 의미다.
와카야마시가 '찻집의 왕국'이 된 데에는 도시 중심부의 성장 과정에 있다.
전후복구와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 '찻집 문화'
이 도시는 에도시대부터 와카야마성을 중심으로 성장한 상업도시였다. 그러나 1945년 대공습으로 도심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을 전후해 도로와 시가지가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현대적인 지방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와카야마시 도시 모습. /챗GPT로 만든 이미지. 이후 도시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이 쉴 곳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찻집 또한 우후죽순 생겨났다. 쇼핑객이나 직장인 등 도시인들은 이곳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사업을 논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카야마시의 '찻집 문화'는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 발전하게 되었고, 지역 주민을 단골로 둔 개인 가게를 중심으로 뿌리내렸다.
여기에 가족이 가게를 이어받으며 맛과 인테리어는 보존하되 새로운 메뉴를 더하는 식의 세대교체가 지속되어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가게는 하나의 도시 역사가 된 것이다.
난카이가 소개하는 6곳의 찻집
오사카와 와카야마현을 근거지로 두는 회사 난카이는 이러한 '찻집 문화'를 오랫 동안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창업 50년 이상의 찻집 6곳을 2일 소개했다.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내부가 특징인 '준킷사 히스이'. /난카이 제공 ‘준킷사 히스이’는 마치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내부가 특징이다.
오랫동안 가게 내부의 장식과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곳은 마치 오늘날 새롭게 만든 만드는 ‘레트로 쇼와풍 카페’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준킷사 히스이'의 파르페. /난카이 제공 이곳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는 일본 전통 찻집을 상징하는 디저트인 초콜릿 파르페다. 현재의 수제푸딩 역시 단골손님의 요청을 계기로 만들었다.
준킷사 히스이는 특유의 '쇼와풍' 공간과 메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동안 손님과 주인이 오랫동안 주고받은 대화까지 가게의 역사로 남겨 전해오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점주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카페 보헤미안의 사이폰. /난카이 제공 '카페 보헤미안' 또한 세대를 넘어 전해져오고 있는 찻집이다.
이곳의 현재 점주인 딸은 아버지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아 오래된 내부와 집기, 커피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선대부터 사용해온 사이폰을 사용하며 창업 당시의 맛인 블렌드커피를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다.
카페 보헤미안 점주가 새로운 시도로 판매하고 있는 스콘. /난카이 제공 물론 전통만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 점주는 수제 스콘 등 디저트 메뉴를 강화하면서 젊은 여성 고객층과도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메뉴 가운데 하나는 창업 당시부터 거래해온 빵집의 식빵에 직접 만든 팥소와 버터를 올린 토스트 등이 있다.
고딕풍의 가게 내부(카페 레스토 토모다치). /난카이 제공 '카페 레스토랑 도모다치'는 묵직한 고딕풍 인테리어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앤티크풍 소품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게 주인은 이 오래된 소품들을 매일 관리하며 원래의 특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카페 레스토랑 도모다치의 인기 메뉴 '철판 나폴리탄'. /난카이 제공 현재 가게를 운영하는 2대 점주는 나고야의 음식점에서 경험을 쌓은 뒤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행사도 열면서 새 손님들과 소통 중이다. 대표 메뉴로는 가는 면을 사용하는 '철판 나폴리탄'이 있다.
인근 극장에서 가져온 대중연극 엽서가 벽면 가득 빼곡하게 붙어 있는 모습(커피숍 나카무라). /난카이 제공 ‘커피숍 나카무라’를 방문하면 인근 극장에서 수십년 동안 가져온 배우들의 엽서들에 압도당할 수 있다. 이 가게의 주인은 대중연극 배우들에 심취, 그들의 엽서를 모으는 취미를 수십년 째 유지 중이다.
찻집의 벽 자체가 지역 극장문화와 손님들의 취향을 기록하는 아카이브가 된 셈이다.
커피숍 나카무라의 대표 메뉴인 돼지고기 생강구이 정식. /난카이 제공 엽서 만큼 음식도 오랜 시간 가게의 특징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돼지고기 생강구이 정식은 찻집의 전신이었던 식당 시절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내부에 소나무가 가득한 '커피하우스 노티 파인'. /난카이 제공 ‘커피하우스 노티 파인’은 이름 그대로 가게 내부에 소나무가 가득하다. 나무가 주는 온기와 오래된 찻집 특유의 차분함이 공간 전체를 매우고 있는 '힐링 스팟'이다.
이곳은 3대째 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3대가 운영하는 '커피하우스 노티 파인'. /난카이 제공 난카이에 따르면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가족들의 여유롭고 편안한 손님 접대로 ‘고향집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
'커피하우스 노티 파인'의 대표 메뉴인 카레. /난카이 제공 이 가게의 대표 음식으로는 자체적으로 조합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카레 등이 있다. 음식은 '3대의 맛'을 계승하며, '새 세대'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카페 알프스의 테이블형 마작 게임. /난카이 제공 ‘알프스’에는 한때 일본 찻집과 오락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테이블형 마작게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바라봤던 세대에게는 그 자체로 쇼와시대의 기억을 불러오는 물건인 셈이다.
알프스를 운영하는 자매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오므라이스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난카이 제공 이곳은 부모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은 자매가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메뉴인 데미글라스 소스를 듬뿍 올린 오므라이스는 그때의 맛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자매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쇼와 레트로 열풍과 오래된 찻집
난카이 관계자는 "이처럼 오래된 찻집을 다시 조명한 데에는 최근의 쇼와 레트로 열풍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날로그 물건의 온기와 오래된 디자인, 다소 불편하지만 느린 생활방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SNS에서도 옛날식 파르페와 크림소다, 나폴리탄, 목재 가구와 조명 등이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 찻집들의 미래 전망이 마냥 밝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건물 노후화와 점주의 고령화, 후계자 부족 등으로 문을 닫는 곳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난카이가 무료로 배포하는 잡지. /난카이 제공 그러나 난카이는 이 반세기 이상을 살아남은 가게의 핵심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 과거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두고 있다.
어떤 곳은 선대의 사이폰과 인테리어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외지에서 요리를 배운 2대 점주가 새로운 메뉴와 행사를 만들어 젊은 손님을 끌어들인다. 반대로 오랫동안 손님들에게 사랑받아온 테이블형 마작게임이나 대표 메뉴는 그대로 남겨둔다.
결국 난카이는 반세기를 살아남은 이유는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도, 모든 것을 새롭게 했기 때문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난카이는 이 찻집들의 지속성은 가게의 정체성을 이루는 맛과 공간, 나아가 손님과의 관계를 지키며 시대에 필요한 부분을 분명히 변화시켜온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커피를 내리는 가게 점주. /챗GPT로 만든 이미지. 난카이는 이번 와카야마시의 찻집 6곳을 무료 잡지 'Natts 특별호 vol.2 반세기 찻집을 시작하는 법-와카야마편'을 통해 2일 발행했다.
이번 기획은 지난해 12월 오사카의 난바·신세카이 지역의 오래된 찻집을 다룬 1편에 이은 두 번째 ‘반세기 찻집’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