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소비자경제] 이동윤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는 이번 방한을 단순한 고객사 방문이 아닌 AI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엔비디아의 미래 전략을 구체화하는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해 온 엔비디아는 이제 반도체 기업을 넘어 AI 인프라 기업으로의 변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젠슨 황 CEO가 최근 가장 강조하는 것도 GPU 판매를 넘어 AI 팩토리(AI Factory)와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이다.
엔비디아의 성장 전략은 과거 GPU 판매 중심에서 현재 AI 서버, AI 데이터센터, AI 클라우드 사업으로 확장됐다. 앞으로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AI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젠슨 황 CEO는 AI 데이터센터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에 비유하며 AI 팩토리를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규정해 왔다. 엔비디아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이 아닌 'AI 시대의 전력회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회동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 같은 비전 속에서 한국은 엔비디아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젠슨 황 CEO는 SK그룹, 네이버, LG그룹, 두산그룹, 현대차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잇따라 만나 AI 인프라와 로보틱스, 미래 모빌리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엔비디아가 그리고 있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생태계의 핵심 축들이 모두 한국 기업들과 연결된 셈이다.
7일 저녁,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치킨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및 양사 경영진이 저녁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눴다. 사진 왼쪽부터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 니코 카프레즈 엔비디아 부사장, 정석근 SKT AI CIC장, 곽노정 SK 하이닉스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재헌 SKT CEO, 김주선 SK 하이닉스 AI Infra 사장, 제프 피셔 엔비디아 수석 부사장. (SK그룹 제공)AI 팩토리의 심장, SK와 손잡다
가장 눈길을 끄는 협력은 SK그룹과의 AI 인프라 동맹이다.
SK하이닉스는 8일 엔비디아와 AI 팩토리용 차세대 메모리 공동 개발을 위한 장기 기술 파트너십 강화를 발표했다. 양사는 차세대 AI 슈퍼컴퓨터와 로보틱스 플랫폼에 적용될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AI 기반 반도체 설계 및 제조 환경 구축에도 나선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옴니버스(Omniverse) 기반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자율형 반도체 팹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는 AI 클라우드 사업을 공동 추진한다. 양사는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칩부터 데이터센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2027년 한국에서 첫 AI 팩토리를 가동한 뒤 이를 기가와트(GW)급 규모로 확대해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1784 사옥을 방문해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네이버와 초대형 AI 팩토리 구축
네이버와의 협력은 엔비디아가 추진하는 글로벌 AI 팩토리 전략의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네이버는 8일 양사가 기가와트(GW)급 초대형 AI 팩토리 구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27년 55MW 규모로 시작해 100MW, 200MW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GW급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과 엔비디아의 차세대 DSX 플랫폼을 결합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동 시장까지 AI 인프라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네이버의 공간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월드 모델 '코스모스(Cosmos)'를 결합한 '서울 월드 모델' 구축도 추진된다.
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구광모 ㈜LG 대표(왼쪽)와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오른쪽)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LG 제공)LG·두산과 피지컬 AI 생태계 확장
LG는 젠슨 황 CEO의 8일 LG트윈타워 방문을 계기로 '미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며 피지컬 AI 분야 협력 범위를 대폭 넓혔다.
양사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전방위 협력에 나선다. LG전자는 엔비디아의 로봇 플랫폼 아이작(Isaac)과 그루트(GR00T)를 활용해 휴머노이드 및 물류 로봇 개발을 추진하고, LG CNS와 LG유플러스는 DSX 기반 AI 팩토리 구축에 참여한다. LG전자와 LG이노텍은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하이페리온(DRIVE Hyperion)'을 활용해 차세대 모빌리티 시스템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마친 뒤 시타자로 나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함께 인사하며 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두산그룹과의 협력 역시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피지컬 AI 전략과 맞닿아 있다.
두산은 피지컬 AI, 로보틱스, AI 팩토리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전방위 협력에 나선다. 두산에너빌리티는 AI 팩토리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와 발전 설비 구축을 지원하고,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Isaac Sim), 코스모스, 젯슨 토르(Jetson Thor) 등을 활용해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다.
두산밥캣은 건설·물류 장비에 피지컬 AI 기술을 접목해 자율 작업 장비 개발을 추진하며, ㈜두산은 AI 데이터센터용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 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회동을 마친 뒤 사족보행 보안로봇(왼쪽), 이동형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AI의 다음 물결은 모빌리티와 피지컬 AI"
현대차그룹과의 만남은 엔비디아가 미래 모빌리티와 피지컬 AI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8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난 젠슨 황 CEO는 양재사옥에 전시된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둘러보며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관수 로봇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을 살펴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고, 기아의 목적기반차량(PBV) 'PV5'와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엔비디아와 현대차그룹은 미래에 함께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모빌리티 기업이고 엔비디아는 AI 기업이다. 양사의 역량을 결합해 미래를 바꾸고 로보틱스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AI의 다음 물결은 모빌리티와 피지컬 AI"라며 "AI가 세상을 이해하고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을 위해 생산적인 일을 수행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 바로 현대차의 시간"이라고 평가하며 현대차그룹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한국, 엔비디아 AI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의 핵심 키워드를 'AI 팩토리'와 '피지컬 AI'로 보고 있다.
AI 산업이 단순한 생성형 AI 경쟁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전력, 반도체, 로봇, 자율주행을 아우르는 인프라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엔비디아 역시 칩 공급 기업에서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젠슨 황 CEO가 이번 방한을 통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사업 협력이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와 제조, 통신, 로보틱스, 모빌리티 역량을 결집해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시대를 함께 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이 한국을 엔비디아의 핵심 AI 인프라 거점이자 로봇·미래 모빌리티 혁신 허브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