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2019년 본지가 '100세 시대 한국 노인의료' 특집을 기획했을 때,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오래 사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던 곳에서 일상을 유지하게 돕는 것이 의료의 마지막 책임"이라는 그의 외침은 당시 미비했던 노인 의료 체계에 경종을 울렸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26년 4월, 다시 이은주 교수를 찾았다. 당시의 목표가 현장에서 얼마나 실현됐는지, 그리고 노년 의료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노년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고 실행 중이라고 평가받는 서울아산병원이기에 이 교수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교수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그사이 '의료·요양 등 지역사회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통합지원법)'이 시행됐고,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고의 노인 의료 모델인 '위드원(WithONE)'을 안착시켰지만,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커 보였다. 23일 서울아산병원 본관 진료실에서 이은주 교수를 만나 대한민국 노인 의료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보았다.
ACE전담간호사의 환자 스크리닝 인터뷰 장면 (사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집으로의 회귀", 통합돌봄법은 징검다리가 됐나?
서정필 기자(이하 서): 교수님, 7년 전 인터뷰 당시 '집으로의 회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후 여러 논의를 거쳐 '지역사회 통합돌봄법'이 만들어졌고 최근 전면 시행됐는데, 기대대로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은주 교수(이하 이): 아쉽게도 현실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생기고 지자체마다 통합지원센터는 들어섰지만, 아직 병원과 지역 사이에는 '서류'라는 벽이 있더라고요. 최근 저희가 환자분의 퇴원 후 관리를 거주 지역 통합지원센터로 이관하려고 연락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센터 측에서 복잡한 서류를 요청해 와서 저희 병원 통합돌봄지원팀의 담당 사회복지사 혼자서는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알리려고 다시 연락했더니 이번엔 "적당히 써달라"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정밀하게 작성하라고 해서 어렵게 시작했더니, 막상 진행 단계에서는 형식만 채워달라는 식이니 난감했고, 결국 원활하게 연계되지 못한 채 마무리된 케이스였습니다.
더 심각한 건 행정 관련 승인이 나기까지 최소 3주가 걸린다는 점이에요. 당장 퇴원해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 환자가 그 시간을 병원에서 어떻게 버팁니까? 결국 갈 곳 없는 환자들만 고생하게 되고,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ACE팀 영양사의 환자 교육장면 (사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일본은 '한 지붕' 구조, 한국은 '복지부-지자체' 분리
서: '통합지원센터'는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Integrated Community Care System)'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시행 초기라 그런지 장점을 다 흡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그 지적에 동의합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일본은 의료와 복지를 하나의 구조로 묶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계획만 세우고 실무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합니다. 주체가 분리되니 현장에서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치료가 아닌 행정 처리에 진을 다 뺍니다. 복지부와 지자체, 병원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시스템 없이는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현장에선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서울아산병원 위드원 프로그램 (사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아산병원 '위드원(WithONE)'… 입원 순간 알고리즘 가동
서: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선제적인 노인 의료 모델을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노년 의료 분야를 가장 앞장서서 이끌고 계신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습니까?
이: 출발점은 분명한 인식이었습니다. 시니어 환자는 호소 증상이 많고 복잡하고, 다약제 복용에 취약하며 섬망이나 합병증도 흔합니다. 그래서 '질병명만으로 고위험군을 분류하고 개별 서비스 요구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시니어, 그것도 중환자의 특성이 반영된 조기 위험 평가 시스템과 관리 모델이 따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위드원(WithONE)'입니다. '함께(With)'와 '한 사람(ONE)'의 결합, 다학제 전문가들이 함께 협력해 노년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집중한다는 철학을 담았습니다.
위드원은 입원 초기, 입원 중, 퇴원 후라는 세 단계로 짜여 있어요. 그 첫 단계가 바로 CFS(임상허약척도) 측정입니다. CFS는 환자의 보행 능력, 신체 기능, 일상생활 수행 기능을 간단한 그림과 평가지를 통해 아주 빠르게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도구입니다. 환자의 거동 상태를 관찰한 뒤 1~9단계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단 한 문항짜리 평가예요. 판단이 모호하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한두 가지만 추가로 물어보면 됩니다. 그래서 시니어 환자의 전반적 컨디션을 한눈에 보여주는 표준 의사소통 도구로 의료진 사이에서도 두루 활용됩니다.
이 도구를 저희가 선별 도구로 선정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전 세계 200여 편이 넘는 논문에서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됐고, 진료과나 질병의 종류, 급성·만성 여부와 관계없이 두루 잘 맞습니다. 특히 저희 같은 상급종합병원급의 중증 환자에서는 65세 이상 시니어뿐 아니라 19세 이상의 젊은 환자에게도 우수한 예측력을 보입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9세 이상 ICU 입실 환자 22만 명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CFS 점수가 올라갈수록 사망률, 섬망 발생률, 요양병원 전원율, 욕창 발생률이 일제히 증가했어요. 특히 5점 이상부터는 급성 악화와 합병증 위험이 급격히 치솟습니다. 단순히 주민등록상 나이로 환자를 선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노쇠 정도'를 빠르고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도구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5점 이상 고위험군이 잡히면 시스템은 즉각 비상 신호를 보냅니다. 이때 개입하는 핵심 조직이 'ACE(Acute Care for Elders)' 팀입니다. 노년 전담 간호사와 노년내과 의사로 구성된 ACE 팀은 '조기 선별과 선제 중재(Early screen and preemptive intervention)'를 총괄합니다. 단순한 질환 치료를 넘어 노인에게 치명적인 섬망, 낙상, 욕창 등을 예방하기 위한 병동 환경을 즉각 재설계하고, 약제·재활·퇴원 후 계획·복지 서비스를 4M 중재팀과 연결해 조정·모니터링합니다. 저희는 이 작업을 '종합 병원의 입원을 기능 저하의 원인이 아닌, 기능 개선의 기회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게 ACE의 존재 이유입니다.
CFSCFS(Clinical Frailty Scale, 임상허약척도) 평가등급표 (자료=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약 10알을 3알로… '디프레스크라이빙'이 바꾼 환자의 일상
AMCS 시니어환자위원회 장면 (사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이은주 교수에 따르면 위드원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는 다학제 협진(AMCS)이다. 이곳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노년 전담 약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가 결합해 환자 한 명을 밀착 관리한다. 운영의 축은 IHI의 Age-Friendly Health System이 제시한 4M 프레임워크죠. 4M은 ▲What Matters(환자 고유의 건강 목표와 돌봄 선호 파악, 임종기 돌봄 포함) ▲Medication(노인친화 약물 사용으로 What Matters·Mobility·Mentation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 ▲Mentation(치매·우울·섬망의 예방·진단·치료·관리) ▲Mobility(매일의 안전한 거동 보장)로 구성된다. 시니어 환자의 복잡한 문제를 질환이 아닌 핵심 건강 기능별로 구역화해 고유의 돌봄 요구와 잠재적 악화 가능성을 동시에 파악하는 방식이다.
위드원은 이 4M을 그대로 팀 단위로 운영한다. What Matters(돌봄·영양)팀은 사회복지사 면담을 통해 돌봄 고위험군에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영양 불량 고위험군을 선별해 선제적 영양 중재로 상태를 개선한다. Medication팀은 다제약물 위험도 스크리닝과 퇴원 약물 관리, 다제약물 관리 시범사업에 적극 참여해 투약 안전성을 강화하고, AMIS 고도화 프로그램인 약물관리창도 자체 개발했다. Mobility팀은 자동의뢰시스템을 가동해 조기 재활 치료 건수를 전년 대비 96% 늘렸고, 새로 도입한 인지 재활 프로그램은 환자·보호자 만족도 95% 이상을 기록했다. Mentation팀은 대표 보호자 지정 시범사업과 노인 환자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해 환자 중심 의사결정 역량과 시니어환자 전문 간호 역량을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전담 약사가 개입하는 '디프레스크라이빙(Deprescribing, 약물 조정)'은 위드원 시스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인들이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수십 알의 약 중 상호작용을 일으키거나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선별해 조정하는데, 이 과정만으로도 환자의 보행 능력과 정신 맑음 정도가 눈에 띄게 개선되는 사례가 많다.
서: 단순히 차트를 꼼꼼히 보고 조금 더 신경 쓰는 수준이 아니군요.
이: 맞습니다. AMCS에서는 의사만 보는 게 아닙니다. 노년 전담 약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으로 움직이죠. 특히 전담 약사가 개입하는 '디프레스크라이빙(약물 조정)'이 핵심입니다. 노인들이 습관적으로 먹는 수십 알의 약 중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만 조정해도 보행 능력과 정신 맑음 정도가 눈에 띄게 개선됩니다.
지표로도 증명됩니다. ACE팀의 중재 건수는 2021년 164건에서 2025년 3951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자동 타과의뢰 시스템 덕분에 조기 재활 시행률은 77%에 달하고, 인지 재활 프로그램 만족도는 95%가 넘습니다. 이렇게 관리된 환자들은 퇴원 후 재입원율이 현저히 낮고 회복 속도도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재입원율 낮추고 회복은 빨라졌지만… 수가는 여전히 '0원'
실제 위드원의 5개년 누적 성과는 가파르다. ACE팀의 중재 건수는 2021년 164건에서 2025년 3,951건으로 약 24배 늘었고, 2024년(2,959건) 대비로도 33.4% 증가했다. 2025년에는 약물관리 904건, 조기재활 1,299건, 퇴원계획 상담 710건이 시행됐다. 같은 해 9월 도입된 재활의학과 자동 타과의뢰(RM) 시스템은 자동 의뢰 발생률 98%, 의뢰까지 평균 0.6일이라는 운영 성과를 기록했고, 입원 3일 이내 의뢰 비율이 62%, 평균 1.9일 안에 치료가 연계되며 실제 재활 시행률은 77%에 달했다.
ACE팀 사회복지사의 환자와 보호자 면담 장면 (사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서: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여전히 이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이: 예. 문제는 이 모든 고도의 전문적인 행위에 대한 정부 수가가 여전히 '0원'이라는 점입니다. 한 명의 노인 환자를 위해 CFS를 측정하고, 다학제 팀이 수십 분을 회의하고, 약사가 한 시간씩 약력을 검토해도 병원이 받는 보상은 일반 외래 환자와 똑같은 진찰료뿐입니다.
지난 7년 동안 저희는 데이터로 성과를 증명해왔습니다. 합병증이 줄고 재원 기간이 짧아지면 결국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도 이득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기존 진료비에 포함된 업무'라며 보상을 외면합니다. 병원이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내며 사명감으로 버티는 시스템이 어떻게 초고령사회의 표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아산 같은 대형 병원조차 언제까지 이 '선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담 인력 절벽' 현실화… '가치 기반 수가' 도입 절실
최근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거점 병원들이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노년내과 신설 및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 이면에는 이 시스템을 실제로 운용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력 절벽'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내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몇 년간 회복세를 보이며 100%를 상회하고 있지만, 그중 노년내과를 세부 전공으로 선택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노년내과 분과 전문의는 수백 명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수도권 대형 병원에 편중되어 있어 지방의 노인 의료 공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노인 환자는 일반 환자보다 진료 시간이 3~4배 더 소요되지만, 이를 감당할 전담 인력이 부족해 현장의 피로도는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이 문제와 함께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필요한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는 이은주 교수의 얼굴이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대한민국 노인의료를 맨 앞에서 개척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그녀였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던 것 같다.
ACE팀 물리치료사의 재활치료 장면서: 거점 병원들도 노년 의료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을 지킬 젊은 의사들이 충원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장 절실한 정책적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현실적인 보상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MZ세대 전공의들은 솔직합니다. 노인 환자는 진료 시간이 3배 더 걸리고 보호자 상담도 훨씬 까다로운데 수가는 내과 중 최하위권입니다. 사명감만으로 인생을 걸라고 할 수 없는 시대예요. 서울성모병원 등에서 노년내과 신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수급되지 않는다면 결국 간판만 걸어놓은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7년 전에 말씀드린 것과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결국 '가치 기반 수가(Value-based Reimbursement)'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노인 환자가 먹던 약 10알을 정밀하게 분석해 3알로 줄여 부작용을 막았다면, 그 '줄이는 행위'의 전문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검사를 더 하고 약을 더 지어야 수익이 나는 상황에서는 박수 받기 힘든 행위입니다. 현장의 전문성에 정당한 값을 매기지 않는 한 같은 논의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