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정부가 국산 원료의약품 생산을 장려하겠다며 약가 우대 혜택을 확대했지만, 정작 국내에서 원료를 생산하는 전문기업들은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회사가 원료까지 직접 합성해야 약가 가산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정했기 때문이다. 원료와 완제의약품 생산을 전문기업들이 분담하는 제약산업의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문제는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에서 다시 불거졌다.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은 "원료 직접생산 인정 범위를 완제의약품 품목허가권자의 제조소로 지나치게 제한했다"며 "보건은 국가 안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올해 약가제도를 개편하면서 일반 제네릭 의약품의 기본 산정률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5%로 낮췄다. 대신 원료를 직접 생산하는 의약품에는 68%의 우대 산정률을 적용하고, 우대 기간도 종전 1년에서 기본 5년으로 확대했다. 지난 8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고시에 따른 조치다. 이는 국내 원료 생산을 늘리겠다는 취지지만,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은 산업 현장의 생산구조와 거리가 멀다.
현행 기준은 완제의약품 품목허가권자가 자신의 제조소에서 화학적 변형 단계를 포함해 원료를 합성해야 직접생산으로 인정한다. 국내 원료 전문기업이 생산한 원료는 물론, 같은 제약그룹의 계열사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원료도 직접생산 인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유한양행의 유한화학, 한미약품의 한미정밀화학, 종근당그룹의 경보제약과 종근당바이오처럼 원료 생산을 별도 법인에서 담당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부의 산업정책과 약가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구조다. 대웅제약·대웅바이오·대웅테라퓨틱스는 2024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에 선정돼 고지혈증 치료제 원료의약품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8년 12월까지 18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비가 지원되는 사업으로, 원료부터 중간체와 완제의약품까지 국내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현행 기준대로라면 사업이 완료된 뒤 약가 가산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지원한 국산화 생산구조를 약가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설령 계열사 생산을 직접생산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국내 제약기업들은 계열사뿐 아니라 독립적인 전문기업에서도 원료를 공급받는다. 원료의약품 생산에는 별도의 합성기술과 제조시설, 품질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전문성을 높이고 생산 효율을 확보하기 위해 역할을 나눠 온 것이다. 정부가 국내 원료 생산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려 한다면 기업 간 지배관계보다 국내 생산 여부와 공급 실적을 기준으로 우대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국산 원료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높은 약가를 보장할 수는 없다.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제도 악용을 막을 장치는 필요하다. 실제 국내 생산 비중과 공급 안정성, 생산시설 투자 및 유지 실적을 검증해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가산 요건을 위반한 기업에는 혜택을 중단하고 부당하게 지급된 금액을 환수하는 등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건강보험 재정을 보호하는 원칙을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선희 의원이 제안한 생산 실태조사와 2년 주기 자진신고 의무화는 검토할 만한 대안이다.
원료의약품 공급망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해외 생산과 물류 차질로 의약품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국내 생산 기반의 필요성이 확인됐다. 값싼 수입 원료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국제 공급망이 흔들릴 때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렵다. 국내 원료 생산시설을 유지하려면 기업이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부가 약가 우대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내년 4월 기등재 의약품의 단계적 약가 조정이 시작되기 전에 원료 직접생산 인정 기준부터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