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대한약사회가 비대면진료 후 의약품 배송 확대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국민건강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민관협의체 참여를 거부한 데 이어 오는 20일에는 전국 약사 궐기대회까지 예고했다. 의약품 배송 확대 저지가 이제 약사사회의 조직적 투쟁 과제가 된 모양새다.
대한약사회가 내세우는 명분은 환자 안전이다. 배송 과정에서 의약품이 변질되거나 오배송·분실·도난될 가능성이 있고, 처방받은 환자가 직접 수령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대면 환경에서는 충분한 복약지도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든다. 약사회는 현재 제한적으로 허용된 배송부터 검증한 뒤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확대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약사회의 문제 제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약품은 일반 상품과 다르고, 배송 과정에서 별도의 안전관리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국민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약사회의 행동이다. 환자 안전이 정말 가장 큰 걱정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협의 테이블에 앉아 안전기준을 만들고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는 것이 전문가단체가 할 일이다. 그런데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1일 공식 성명을 통해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민관협의체 참여는 전면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환자 안전을 이유로 들면서 정작 안전기준을 논의할 협의체 참여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모순이다.
그렇다면 약사회가 실제로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약사회가 환자들의 편익보다 약사들의 밥그릇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런 의심을 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약사회는 약 배송 확대가 '약국과 약사직능의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회원들의 우려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약 배송과 약사 직능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약사가 처방을 검토하고 의약품을 조제하며 복약지도를 하는 전문적 역할은 사실 배송과는 별개의 문제다. 환자가 약국에서 직접 약을 받든 안전한 배송을 통해 전달받든, 조제와 복약지도, 약물 상호작용 확인 등 약사의 전문적 기능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처방권은 의사에게 있고, 약사는 처방 이후 의약품을 안전하게 조제하고 환자가 올바르게 복용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기능은 비대면 환경에서도 충분히 수행 가능하다. 그런데도 약 배송 확대를 '약국과 약사직능의 위축'으로 연결하면 공연한 오해를 자초할 수 있다. 환자의 약국 방문이 줄면서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 부가적인 판매 기회가 감소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약사회의 대응 방식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비대면진료 후 약 배송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시도지부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정부 투쟁에 돌입했다.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비대위 발대식을 열고 대정부 총력투쟁을 공식 선포했고 오는 20일에는 전국 약사 궐기대회까지 예고했다. 정책의 문제점을 근거와 대안으로 설득하기보다 조직적인 집단행동으로 돌파하려는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환자 안전보다 직역 수호가 앞선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직역단체가 회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대한약사회는 약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건강권'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국민의 안전과 편익을 우선하고 있다는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의약품 접근성 문제를 바라보는 약사회의 시각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생긴다. 약사회는 의료 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약 배송보다는 공공심야약국 확대와 공공약국 설치 등 약국 중심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약국을 추가 개설하는 것과 환자가 처방약을 배송받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환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두고 대안처럼 제시한 것은 옳지 않다.
국민건강권은 특정 직역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 때나 끌어다 쓸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 국민의 선택과 편익을 존중하지 않는 국민건강권은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포장하는 또 다른 변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