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초고령사회에서 늙음과 죽음은 더 이상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후 소득과 주거, 돌봄, 연명의료, 고독사, 장례와 유산 등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이 갈수록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내놓은 '늙음과 죽음은 왜 국가의 일이 되었는가'라는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이 보고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5년간 다뤄온 늙음과 죽음 관련 연구를 질적으로 분석해, 노년의 삶부터 죽음 이후까지 국가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짚었다.
과거에는 부모를 모시고 임종을 지키며 장례를 치르는 일이 가족의 몫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가족구조가 달라졌다. 혼자 사는 노인이 늘고 가족 구성원이 흩어져 살면서 돌봄을 제공할 사람 자체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제적 취약성과 사회적 고립까지 겹치면 노년의 어려움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인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거나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디에서 누구와 살아갈 것인지, 거동이 어려워졌을 때 어떤 돌봄을 받을 것인지, 생애 말기에 어떤 의료를 선택할 것인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고독사는 우리 사회가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금까지 정책은 주로 위험군을 찾아 사망 자체를 막는 데 집중해왔다. 물론 예방이 우선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사람이 홀로 세상을 떠난 이후다. 시신을 누가 인수할 것인지, 장례는 누가 치를 것인지, 남겨진 유품과 재산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온라인에 남은 계정과 디지털 흔적은 누가 정리할 것인지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이라고 해서 죽음 이후의 존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장례와 사후처리까지 방치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제도의 공백이다. 국가는 고독사 예방뿐 아니라 사망 이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절차까지 마련해야 한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돌봄을 다시 가족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초고령사회를 버틸 수 없다. 지역사회에서 의료와 요양, 복지서비스가 연결되고 필요할 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삶과 죽음의 모든 선택을 대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디에서 살고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생애 말기 의료를 어디까지 받을 것인지는 가능한 한 개인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돌봄을 포기하고, 곁에 사람이 없어서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생을 마치고, 가족이 없어서 사후까지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긴 노년을 살아가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돌봄과 임종, 죽음 이후의 문제를 경험하는 사회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제는 어떻게 늙고, 어떻게 돌봄을 받으며,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좋은 죽음을 국가가 정해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누구도 빈곤과 고립 때문에 존엄한 노후와 죽음을 포기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