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보건의료 현장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하다. 특히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평생 복용하는 항혈소판제 처방에서 '아스피린'은 수십 년간 난공불락의 성역과도 같았다. 저렴한 가격과 오랜 임상 경험을 무기로 아스피린은 '불멸의 약물'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세계 표준 치료 지침의 정점을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발표한 장기 추적 관찰 결과는 기존의 처방 관행에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환자 54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 끝에 내려진 결론은 하나다.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클로피도그렐은 아스피린 대비 혈전 재발 위험을 31%, 출혈 발생 위험을 27%나 낮췄다. 항혈소판제 복용 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인 출혈 위험까지 동시에 잡았다는 점은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위장 장애 등으로 인한 복용 중단 비율까지 낮아 환자의 삶의 질 측면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이번 성과가 더욱 값진 이유는 관성적인 처방에 의문을 던지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끈질기게 매달려 '독보적인 임상 근거'를 완성해냈다는 점에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최선이 아닌 차선을 관행처럼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진정한 의학의 진보는 철저한 데이터와 근거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이제 공은 전 세계 치료 지침을 만드는 전문가들에게 넘어갔다. 란셋이 이례적으로 이번 연구 결과를 연이어 게재한 것은 그만큼 데이터의 가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 진료 지침의 수정은 시간문제일 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수십 년간 '불멸'로 추앙받던 약물조차 데이터 앞에서는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의학의 숙명이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지가 무엇인지 새로운 근거에 기반해 스스로의 처방 체계를 냉정하게 점검해야 봐야 한다. 그것이 이번 연구가 일궈낸 값진 승리를 환자에게 돌려주는 길이다.
이번 연구는 대한민국 의료의 저력을 세계 무대에 알린 또 하나의 쾌거다.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병원과 서울보라매병원 연구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